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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Nov 15. 2018

베스트셀러, 이 필승 카드의 양면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콘체르탄테

지휘 프란체스코 란찌롯따Musikalische Leitung Francesco Lanzillotta

합창지휘 틸만 미하엘 Chor Tilman Michael

비올렛타 브렌다 래 Violetta Valéry Brenda Rae

알프레도 마리오 창 Alfredo Germont Mario Chang

제르몽 체리코 루칙 Giorgio Germont, sein Vater Željko Lučić



베스트셀러는 이유가 있다.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퀄리티가 꼭 비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중성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는 것, 대중으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페라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일까? 일단 한국 오페라계에서는 <카르멘>이라고 한다. 이는 웬만한 한국의 오페라 무대는 다 섭렵하신 어느 테너 선생님의 전언이다. 먼저 음악이 지루할 틈을 안 준다. 하바네라나 투우사의 노래 같은 유명한 아리아도 간간히 나오니 청중은 신이 난다. 집시가 소재이니만큼, 이국적인 볼거리도 풍부하다. 사랑과 유혹, 치정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또 얼마나 자극적인가.  


여기 독일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모차르트다. 독일의 2018/19 시즌 중 모든 베르디 오페라를 다 합쳐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번 시즌만 해도 마술피리가 올라가는 극장은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을 비롯하여 대략 30여 곳에 이른다. 반면, 우리가 잘 아는 <나비부인>, <리골렛토>, <카르멘> 등은 대략 10~15개 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다. 만약 모차르트 오페라 작품 전체, 가령 <피가로의 결혼>, <돈 죠반니>나  <코지 판 투테>까지 합치면, 그 수는 어쩌면 이태리 오페라 작곡가들 작품수의 합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만큼 독일은 모차르트를 사랑한다.


하지만 전 세계 오페라 극장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라 트라비아타>가 단연 1위일 것이다.(자료를 찾아보다가 너무 많은 곳에서  공연이 올라가길래 조사를 포기했다.) 일단 음악도 스토리도 유명하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 주인공인 비올렛타 역은 소프라노라면 한 번쯤은 꿈꾸는 그런 역이다. 얼마나 많은 소프라노들이 그 역을 하고자 노력하고 준비했을까.  비올렛타는 어려운 역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소프라노들의 경력에 한 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 말인즉슨, 주역가수가 불상사가 생겨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생겨도 어떻게든 누군가 데려와서 사태를 수습하기가 용이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페라 업계 종사자부터 대중에 이르기까지 친숙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지난 주말,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콘체르탄테 버전으로 보고 왔다. 콘체르탄테란, 오페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하는 것이다. 무대 장치나 의상, 혹은 분장 없이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기에 그 음악을 깊이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프랑크푸르크 극장은 꽤나 괜찮은 극장이다. 도시의 경제력이 그 도시의 문화의 수준을 좌지우지하듯이 프랑크푸르트라는 경제적으로 탄탄한 도시의 대표적인 극장으로서 독일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올해의 오페라 극장>으로 선정되기도 한 것만도 4번에 이른다. 내가 프랑크푸르트 극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레퍼토리의 분배에 있어서 리딩 극장으로서 책임감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으로 고루 분포되는 것은 물론, 매 시즌 콘체르탄테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지만 오페라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도니젯티의 <로베르토 데브뢰>를 콘체르탄테로 공연했는데, 이 작품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간 소프라노 마리엘라 데비아나 에디타 그루베로바 같이 벨칸토 마에스트라가 없이는 잘 공연되지 않는다. 벨칸토 창법의 정수이기 때문에, 그 테크닉이 부재할 경우 세상 지루하고 괴로운 오페라가 돼버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흔하게 상연되는 작품이 아니어서 부를 수 있는 가수 찾는 것 부터가 난관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런 오페라를 집 근처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귀한 일이기에 일치감치 예매하고 영접할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시즌에는 프랑크푸르트가 베르디의 오페라 <해적>을 콘체르탄테로 준비했다. 이 역시 용감한 소프라노들이 콩쿠르나 연주 때 들고 나오는 아주 어려운(그렇지만 매우 아름다운) 아리아만 알려져 있을 뿐, 공연으로 올려지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해적>이 <라 트라비아타>로 변경되었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유인즉슨 주역 가수 두 명이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 것이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그것도 치료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단다. 이런 경우 대타를 구해야 하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렇게 자주 상연되지 않는 작품은 대타 구하기가 너무나 곤란하다.


그래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급변경됐다고 한다. 이제까지 숱하게 봤던 <라 트라비아타>를 콘체르탄테로?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아 망설였다. 그러다가 관람을 결심한 이유는 제르몽 역으로 나오는 바리톤 체리코 루칙(이 세르비아 가수의 이름은 도대체 어떻게 읽는 것인가!) 때문이다. 어느 지인이 말하길, 그 바리톤이 자기 친구인데, 지금 세계에게 돈 가장 많이 받는 바리톤 3위 안에 든다고, 이번에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공연하니 꼭 보라며 강력추천을 한 덕분이다. 검색해보니, 메트로폴리탄, 코벤트가든을 누비며 노래하는 가수다. 프랑크푸르트에 가족이 살지만 본인은 늘 연주 때문에 전 세계를 누빈다고. 프로필을 읽어보니 프랑크푸르트에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솔리스트로 일했고, 그 이후 세계 정상급 바리톤이 돼서 이번에 마치 친정집 들리듯이 프랑크푸르트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제르몽 역의 체리코 루칙(좌)와 비올렛타 역의 브렌다 래(우), 출처-프랑크푸르트 오페라 www.oper-frankfurt.de


그러고 보면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세계적인 성악가로 발돋움한 경우가 많다.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도 여기 출신이었고, 오늘 비올렛타를 노래한 브랜다 래도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현재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난번 <로베르토 데브뢰>에서 사라 역을 노래한 메조소프라노 앨리스 쿠트도 프랑크푸르트에서 경력을 쌓은 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우다. 우리나라에는 테너 김재형이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현재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금은 베이스 심기환이 솔리스트로 있으면서 메트 무대까지 밟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잘 키워서 더 넓은 바다로 보낸 뒤 회귀하는 연어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들 가수와 관객들이 느끼는 연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오페라 콘체르탄테 무대의 의미는 비단 잘 상연되지 않는 귀한 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은 오페라 슈퍼스타가 된 출신 가수들을 데려와, 친정집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비올렛타 역을 노래한 브랜다 래는 이 날의 주인공으로서 관객을 매혹시켰다. 기량이 출중한 나머지 어떻게 저렇게 부르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감동을 받을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알프레도 역의 마리오 장의 노래는 지난번 <로베르토 데브뢰> 콘체르탄테에 이어서 두 번째로 들어보게 되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가창을 들려줬다.(로베르토 데브뢰 역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실감을 했다.) 알프레도 역은 아주 많이 불러본 듯 노련하였다. 다른 베르디 오페라에서도 그렇듯이 <라 트라비아타>에서도 바리톤의 비중은 꽤나 묵직하다. 백전노장 체리코 루칙은 이런 제르몽 역을 맡아 중심을 잡으며 완급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대가의 풍모를 보였다. 보여주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그 존재감이 이미 무대 위를 압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프레도 역의 마리오 창(좌), 비올렛타 역의 브렌다 래(우), 출처-프랑크푸르트 오페라 www.oper-frankfurt.de

이 날 가수들과 긴밀한 호흡으로 최상의 음악을 선사한 지휘자 프란체스코 란찌롯따와 오케스트라에도 큰 박수 보내고 싶다. 콘체르탄테가 아니었으면, 비올렛타의 아리아에서 클라리넷 주자가 얼마나 혼신을 다해 비올렛타와 교감하며 연주하는지 평생 몰랐을 것이다.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하며 오케스트라와 가수가 만들어내는 화음을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건 새로운 희열이었다.


관객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그들의 노고에 답했다. 소확행이 별건가. 17유로(약 2만 원)로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졌다니... 유독 잘 풀리지 않았던 그 날의 고단함도 보상받은 것 같았다. 다만 이번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적>을 취소하고 이렇게 대중적인 작품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 한편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크푸르트 극장이 그동안 가고자 했던 새로운 레퍼토리의 발굴이라는 목표는 아무나 할 수도 없고, 쉬운 길도 아니다. 다음 콘체르탄테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이왕이면 그 작품이 나를 비롯한 오페라 팬들의 관람 욕구를 마구마구 불 지피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크푸르트여...제발 그 어려운 길로 계속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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