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 Jul 01. 2020

[28회] 남자의 純情 - 브람스의 사랑이야기

사랑의 노래 왈츠, 알토 랩소디, Von ewiger Liebe

http://www.podbbang.com/ch/1769003?e=23026704


독일 후기 낭만 음악의 대표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여러분은 브람스를 어떻게 알고 계세요?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작곡가? 아니면 14살 연상의 클라라 슈만을 일평생 짝사랑했던 순정의 음악가? 그런데요. 브람스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브람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사실 브람스는요,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의 대척점에 서있었고, 당시 독일 음악계는 바그너 파와 브람스 파로 나눠서 마치 조선시대 당파싸움하듯이 서로를 죽어라고 물어뜯었답니다. 물론 브람스가 바그너를 직접 공격했다기보다는, 소위 ‘브람스파’라고 하는 사람들과 바그너 추종자들 간의 다툼이었긴 하지만요. 브람스파와 바그너 파의 대전쟁은 다음 기회에 여러분께 소개하도록 할게요. 아무튼 정말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과 음악에만 온 인생을 헌신한 순정, 그 자체였을까요?

1853년의 브람스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을 열렬히 사랑, 음… 저는 사랑보다는 ‘사모’라는 단어를 쓰고 싶네요. 가난한 젊은 음악가 브람스는 추천서 한 장 들고 당대 최고의 음악가 부부인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를 1853년에 만나게 됩니다. 로베르트 슈만은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였고, 클라라 슈만은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죠. 당시 브람스 나이는 겨우 20세, 슈만은 43세, 클라라는 34세였어요.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슈만은 브람스를 격찬하면서 세상에 알리는 평론을 쓰면서 젊은 음악가의 앞길을 축복해줍니다. 

 

1847년의 슈만과 클라라

그런데, 그 이듬해에 슈만은 정신병이 발작을 일으켜서 라인강에 투신하게 됩니다. 겨우 살아났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죠. 자, 이제 클라라는요, 그 빡빡한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7명의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고, 병든 남편 뒷바라지도 해야 했어요. 어느 것 하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이었죠. 이때 브람스는 헌신적으로 클라라를 돕게 됩니다.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마음, 과연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브람스와 클라라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그들의 속마음을 짐작해볼 수밖에 없죠. 


브람스는 당시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1854년 11월 25일 편지에서 브람스는 클라라와 드디어 “dutzen”을 하게 된 것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일어를 배우신 분들이라면 siezen(존칭)과 duzen(반말)의 엄청난 거리감을 아시죠? 기라성 같은 선배 음악가에게 그동안 “존경하는 슈만 부인”라고 부르고, 클라라 역시 “친해하는 브람스 씨”이렇게 호칭하다가, 드디어 duzen을 한다는 건, 서로 클라라, 요하네스! 이렇게 이름을 부르게 될 정도로 친밀해졌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1856년 5월 31일에 브람스는 자신의 열렬한 마음을 이렇게 편지에 담았죠.


„Meine geliebte Clara, ich möchte, ich könnte Dir so zärtlich schreiben, wie ich Dich liebe, und so viel Liebes und Gutes tun, wie ich Dir’s wünsche. Du bist mir so unendlich lieb, dass ich es gar nicht sagen kann. Deine Briefe sind mir wie Küsse. “


“사랑하는 클라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부드러운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쓸 수 있었으면 싶고,  당신을 위해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좋은 일과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감히 말할 수 조차 없어요. 당신의 편지는 나에게 키스와 같아요.”


편지의 감성을 전하기 위해 존댓말로 번역을 해봤는데요. 사실 앞서 이야기한 duzen을 적용해서 번역하면 이렇거든요. 


“내 사랑 클라라, 난 널 사랑하기에, 널 위해 모든 좋은 일을 행하고, 또 사랑을 줄 수 있길 원해. 넌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난 그걸 차마 말할 수조차 없어. 네 편지는 나에겐 키스 같아.”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의, 두 사람 사이의 다소 거리가 있는 애정 표현이 저는 개인적으로 더 좋네요.

이 편지에 클라라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856년 5월에 클라라와 브람스 사이에 무언가 썸씽이 있었으리라 하는 것은 우리 모두 짐작할 수 있죠? 하지만 그 해 7월에 슈만의 사망 이후 이런 열렬한 고백의 편지는 사라집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추측인데, 로버트의 죽음을 겪으면서 클라라가 많은 고민 끝에 요하네스에게 선을 긋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이후로 클라라는 40년 동안 슈만과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면서  두 거장의 음악을 알렸고, 브람스와 클라라는 플라토닉 한 애정과 지지를 나누는 사이가 됩니다. 


저는 브람스의 사랑이 조금은 이해될 것 같아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을 당대 최고의 음악가가 그 가치를 알아봐 주고, 최고의 해석과 테크닉으로 연주를 해주면서 적극적으로 알려주는데,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예술가에게 그런 지원자를 만난다는 건 최고의 행운이죠. 그래서 두 사람은 남녀 간의 에로틱한 사랑을 넘어서는 인간적으로 깊이 교감하고, 존경하며, 서로 아껴주는 그런 관계였을 거라 생각해요. 


이렇게 젊은 브람스는 클라라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둘 만의 교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20대 초반의 청년 브람스의 내면을 몹시 깊어지게 만들었겠죠? 그런 브람스에게 10년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내면의 깊이를 후벼 파는 일이 발생합니다. 

21세의 율리 슈만 (Julie Schumann 1845-1872)

당시 36살의 브람스는 24세의 한 여인을 혼자서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데요, 그녀는 바로 슈만과 클라라의 딸 율리였어요. 클라라의 일기에 따르면 브람스는 그 사랑을 전혀 티 나지 않게 감추고 있었나 봐요. 슈만 가족을 처음 만났을 1853년에 브람스는 스무 살, 그때 율리는 겨우  여덟 살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율리는 아빠 슈만과 엄마 클라라를 빼다 닮은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었어요. 율리의 존재는 브람스의 마음을 흔듭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슈만과 클라라의 딸이었기에, 차마 티를 내지는 못했겠지요. 이런 마음을 브람스는 이렇게나마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사랑에 빠진 설렘과 두근거림을 브람스의 음악 언어로 들어보세요. 사랑의 노래 왈츠 52번(Liebeslieder Waltzes op.52)입니다. 

https://youtu.be/ZBxiex5yKs4

브람스 "사랑의 노래 왈츠 1번 "Rede, Mädchen, allzu Liebe (소녀여, 사랑을 이야기해요)"


율리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은 해피 엔딩이 되지 못했는데요. 브람스 삼촌의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고 브람스는 깊이 좌절합니다. 게다가 율리는 결혼 후 2년 만에 안타깝게도 요절하고 말았거든요. 브람스는 아마도 정말 많이 아파했을 거예요. 하지만 신에게 엄청난 재능을 받은 자는, 불행마저 자신의 창조물로 승화시킵니다. 1869년 브람스는 “알토 랩소디”를 작곡하는데요. 실연한 젊은이에게 위로를 건네는 괴테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에요. 1부에서는 홀로 고통받고 있는 절망적인 젊은이를 아주 우울하게 묘사하고요, 2부에서는 죽고 싶을 정도로 이 엄청난 고통을 누가 치료해 줄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고통은 자신의 이기심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요, 위로와 구원을 노래하는데요. 알토의 솔로와 남성 합창이 오케스트라 선율 위로 흐르는데, 여러분과 같이 이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요. 가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랑의 아버지시여, 당신의 노래 중에 한 소절이라도 그의 귀에 분명히 들리게 하셔서, 그의 가슴속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하소서! 그는 사막에서 목말라하고 있지만,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구름을 열어주셔서, 그 앞에 펼쳐진 수많은 샘을 발견하게 하소서. “ 


https://youtu.be/GheHLR05Nww

이태리 메조소프라노 사라 밍가르노가 부르는 브람스 알토 랩소디. 영, 독, 스페인어 자막이 제공된다.


사실 오늘 브람스를 소개하게 된 건 어느 청취자님이 보내주신 사연 덕분이었는데요. 


“브람스의 Von ewiger Liebe를 신청합니다. 지난번에 브람스의 자장가 말고는 브람스는 거의 언급이 안된 거 같아요. 노래지기님의 감성 목소리와 함께하는 걸 듣고 싶습니다” 


사연 보내주셔서 감사하고요. 덕분에 저도 브람스를 더 깊이 알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신청해주신 'Von ewiger Liebe'는 '영원한 사랑으로부터…'라는 의미인데요. 브람스 가곡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 중에 한 곡입니다. 1860년에 작곡됐는데요. 이때는 브람스가 음악가로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어요.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이 곡을 작곡할 때 27살의 청년 브람스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오늘은 이 노래를 같이 감상하시면서 브람스 스토리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Dunkel, wie dunkel in Wald und in Feld! 숲과 들판은 어둡고,

Abend schon ist es, nun schweiget die Welt. 밤이 깊어서 온 세상이 침묵할 때, 

Nirgend noch Licht und nirgend noch Rauch, ja, 빛도, 연기도 사라진 지금은

und die Lerche sie schweiget nun auch. 종달새마저 침묵하고 있다.


Kommt aus dem Dorfe der Bursche heraus, 마을에서 한 젊은이가 나와

gibt das Geleit der Geliebten nach Haus, 연인을 집까지 바래다준다.

führt sie am Weidengebüsche vorbei,  버드나무숲을 지나며

redet so viel und so mancherlei: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Leidest du Schmach und betrübest du dich,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수모를 겪고 

leidest du Schmach von andern um mich, 괴로워하고 있나요.

werde die Liebe getrennt so geschwind, 그러면 우리가 이전에 서로 한 마음이 됐을 때처럼 

schnell wie wir früher vereiniget sind. 그렇게 빨리 우리의 사랑은 갈라지게 돼요.

Scheide mit Regen und scheide mit Wind, 비가 와도, 또 바람이 불어도 헤어지는 거예요,

schnell wie wir früher vereiniget sind. “ 예전에 우리가 한눈에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빨리요.


Spricht das Mägdelein, Mägdelein spricht: 소녀는 말합니다:

„Unsere Liebe sie trennet sich nicht! 우리의 사랑은 갈라지지 않아요. 

Fest ist der Stahl und das Eisen gar sehr 강철이 아무리 단단해도 해도, 

Unsere Liebe ist fester noch mehr. 우리 사랑이 더 단단해요.


Eisen und Stahl, man schmiedet sie um, 사람들은 강철을 담금 질 하죠.

unsere Liebe, wer wandelt sie um?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누가 그럴 수 있겠어요?

Eisen und Stahl, sie können zergehn, 강철은 불에 녹아 버리지만,

Unsere Liebe, Unsere Liebe muß ewig, ewig bestehn! “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영원히 지속될 거예요.


https://youtu.be/oxV1RVa2rKY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가 노래하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반주하는 "Von ewiger Liebe" (디지털 영상작업을 통해 생생한 화질 구현, 하지만.... 미끼.....;;;


매거진의 이전글 79회 - 독일 작곡가들이 들려주는 꽃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