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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n 14. 2020

79회 - 독일 작곡가들이 들려주는 꽃노래

들장미, 연꽃, 린덴, 달리아에 얽힌 이야기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귀로 듣는 꽃놀이를 준비했습니다. 독일 작곡가들과 함께 꽃구경을 가볼까요?



처음에 여러분이 보실 꽃은 장미입니다. 그냥 장미가 아니고요. 빨간 들장미를 생각해보세요. 이 장미꽃을 여러분께 소개할 작곡가는 슈베르트입니다. 슈베르트가 18살에 작곡한 곡인 이 ‘Heidenröslein 작은 들장미’는 괴테의 시로 쓰였어요. 당시 괴테는 슈베르트보다 47살이 더 많았는데요. 한마디로 독일 문학의 거성이었죠. 아니 지금도 그렇죠. 이 시가 쓰인 배경에는 괴테의 사랑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https://youtu.be/1i19zVXFpu4

가곡 "들장미"에 얽힌 사연,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즐감하세요^^


1771년, 22살의 젊은 괴테는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괴테는 이것도 열심히 했는데요. 일생동안 괴테의 영혼에 영감을 불어넣어줬던 바로 그 연애죠. 당시 괴테는 프리데리케 브리온이라는 아가씨와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열매 중에 하나로 이 시가 탄생했다고 하네요. 내용을 한 번 들어볼까요?


Sah ein Knab' ein Röslein stehn, 한 소년이 들판 위의 작은 장미를

Röslein auf der Heiden, 발견하고는 멈췄어요,

War so jung und morgenschön, 장미는 싱싱하고 아침 빛처럼 아름다웠죠.

Lief er schnell, es nah zu sehn, 소년은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뛰어서 다가갔어요.

Sah's mit vielen Freuden. 경탄하며 장미를 바라보았죠.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장미야, 장미야, 빨간 장미야,

Röslein auf der Heiden. 들에 핀 작은 장미야.


Knabe sprach: Ich breche dich, 소년은 말했죠. „너를 꺾을 거야,

Röslein auf der Heiden! 들에 핀 작은 장미야!”

Röslein sprach: Ich steche dich, 장미는 대답했습니다. “그럼 나는 너를 찌를 거야”

Daß du ewig denkst an mich, 그래서 네가 나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 거야

Und ich will's nicht leiden. 나는 아프고 싶지 않아.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장미야, 장미야, 빨간 장미야,

Röslein auf der Heiden. 들에 핀 작은 장미야.


Und der wilde Knabe brach 하지만 성급한 소년은

's Röslein auf der Heiden; 들판 위의 작은 장미를 꺾어버렸어요.

Röslein wehrte sich und stach, 장미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찔렀죠.

Half ihm doch kein Weh und Ach, 하지만 소년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답니다.

Mußt‘ es eben leiden. 정작 아픈 건 장미였어요.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장미야, 장미야, 빨간 장미야

Röslein auf der Heiden. 들에 핀 작은 장미야.


흠... 가사 속에서 많은 걸 연상할 수 있죠? 과연 괴테는 장미였을까요? 아니면 장미를 꺾은 소년이었을까요?? 이 젊은 괴테의 사랑이야기는 훗날 유명한 오페레타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그래서 1928년에 탄생한 작품이 오페렛타 ‘프리데리케’에요. 그래서 같은 시가 레하르의 손을 거쳐 새로운 노래로 탄생합니다. 빈의 오페렛타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하르가 쓴 ‘들장미’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요? 같이 감상하시죠.

(위의 링크한 유튭 동영상에 자막과 같이 준비했답니다)

빈의 두 번째 오페레타 황금기를 연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 (1870-1948)


이번에 보실 꽃은 밤에만 피는 꽃입니다. 바로 연꽃이죠. 연꽃을 여러분께 보여드릴 작곡가는 로베르트 슈만이고요. 슈만이 힘들게 결혼에 성공한 스토리는 저희 [노. 고. 독. 고]에서 여러 번 소개했죠. 장인어른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송도 불사해서 결국 1840년 클라라와 결혼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 해 슈만의 명곡들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졌는데요. 결혼 선물로 썼던 25곡짜리 가곡집 ‘뮈르텐’에 7번째 노래가 바로 이 연꽃이에요. 어떤 내용인지 같이 들어볼까요?


Die Lotosblume ängstigt 연꽃은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Sich vor der Sonne Pracht, 두려워하고 있어요.

Und mit gesenktem Haupte 머리를 숙이고는

Erwartet sie träumend die Nacht. 꿈을 꾸면서 밤이 오길 기다립니다.


Der Mond, der ist ihr Buhle, 달은요, 그녀의 연인이에요.

Er weckt sie mit seinem Licht, 그는 자신의 빛으로 그녀를 깨우죠.

Und ihm entschleiert sie freundlich 연꽃은 자신의 순수한 얼굴을

Ihr frommes Blumengesicht. 행복하게 보여줍니다.


Sie blüht und glüht und leuchtet, 연꽃은 피어나고, 빛나고, 반짝입니다.

Und starret stumm in die Höh; 그리고 조용히 하늘을 응시합니다.

Sie duftet und weinet und zittert 그녀는 향기를 발하고, 흐느끼고 또 두려워합니다.

Vor Liebe und Liebesweh. 사랑과 사랑의 아픔 때문에요.


https://youtu.be/AbYL74vQrew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가 부르는 슈만의 '연꽃 Die Lotosblume'


이 시를 쓴 사람은 독일의 유명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1797-1856)에요. 1827년에 발간한 ‘노래들의 책 Buch der Lieder'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 중 하나인데요. 이 시에 슈만이 1840년에 곡을 입힙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이 시에 곡을 쓴 작곡가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시나요? 자그마치 70여 명에 달한답니다. 물론 가장 유명한 곡은 바로 여러분이 들으신 슈만의 ‘연꽃’이죠. 이 하이네의 시와 슈만의 곡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하이네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어요.

1837년의 하이네

하이네는 일생을 투쟁하며 살아온 시인이에요. 스무 살이었던 1819년에 본(Bonn)에서 법 공부를 하다가 자유주의를 위한 정치적인 투쟁에 가담합니다. 그 후로 하이네는 민족주의를 위해 싸우고, 독일 당국의 검열에 맞서서 투쟁했어요. 말년에는 독일에 발도 못 붙이고 결국 프랑스에서 죽었답니다.

파리에 있는 하이네의 묘지

이 시집은 1826년에 함부르크에서 발간됐는데요. 당시 함부르크가 자유무역도시였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조금 더 검열이 자유로웠거든요. 자유를 위해 싸우던 하이네를 생각하면 이 시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거 같아요. 태양, 즉 권력을 두려워하는 연꽃, 어두운 밤에만 그 정체를 드러내고, 또 자신이 사랑하는 가치를 위해 싸우다가 흐느끼고 두려워합니다. 어떠세요, 여러분?


그리고 이 작품이 1827년에 출판됐다고 했잖아요. 바로 이듬해인 1828년에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이자 바리톤이었던 칼 뢰베 (1796-1869)도 이 ‘연꽃’이라는 시에 곡을 붙였는데요. 슈만보다 12년 빠른 셈이죠. 실제로 뢰베가 하이네의 삶을 공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이번에는 뢰베의 곡을 들어볼까요?


https://youtu.be/CPX-XwnSzdk

제가 참 좋아하는 독일 소프라노입니다. 율리안네 반제가 부르는 뢰베의 '연꽃'이에요.

이번에는 보리수 꽃향기를 맡으러 갈게요. 이번 가이드는 구스타프 말러입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는데요. 보리수가 우리가 아는 보리수가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아는 보리수는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그 보리수나무랑요. 또 하나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중에 나오는 ‘보리수’ 요. 그런데, 둘 다 보리수라고 하지만, 슈베르트의 보리수는 사실 ‘유럽 피나무’라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래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적어야 하나 참 난감해요. 이제부터 보리수 꽃향기를 맡으러 가야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유럽 피나무 꽃향기를 맡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유럽 피나무 꽃향기라고 하니까 너무 어색하죠? 그런데 이게 영어로도 린덴 나무 혹은 라임나무라고 한대요. 독일어도 린덴이거든요. 그래서 슈베르트의 ‘보리수’ 원래 제목이 린덴바움이에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냥 린덴 나무라고 할게요.

가을날 린덴 나무

말러는 1905년에 뤼케르트의 시 5개에 곡을 쓴 가곡집을 출판합니다. 독일에는 이 린덴 나무가 굉장히 흔해요. 그리고 그 향기도 은은하답니다. 뭐랄까 색도 향기도 강렬한 라벤더나 라일락과는 많이 대비되죠. 뤼케르트의 시도, 말러의 곡도 린덴 나무 꽃향기처럼 참 은은한 대요. 어떤 내용인지 들어보시죠.


Ich atmet’ einen linden Duft! 나는 린덴 향기를 맡았었지

Im Zimmer stand 방안에 있는

Ein Zweig der Linde, 린덴 나무 가지에서

Ein Angebinde 그것은 사랑하는 이가 선사하는

Von lieber Hand. 귀한 선물이었죠.

Wie lieblich war der Lindenduft! 그 린덴 향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

Wie lieblich ist der Lindenduft! 린덴 향기가 지금도 사랑스럽다.

Das Lindenreis 당신이 그 린덴 꽃을

Brachst du gelinde; 부드럽게 따고 있네요.

Ich atme leis 나는 고요히 린덴의 향기를 들이마십니다.

Im Duft der Linde

Der Liebe linden Duft 사랑의 린덴 향기를.


https://youtu.be/jF4XuczTlUw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가 부르는 말러의 "나는 린덴 향기를 맡았네"를 소개할게요.


오늘 마지막 꽃놀이는 달리아예요. 풍성하고 화려한 꽃 달리아 아시죠? 독일에서도 이 꽃 이름은 달리아로 통하지만 간혹 게오르기네 혹은 게오르기나라고 불리기도 해요. 스칸디나비아와 동유럽 쪽에서도 그렇게 불리기도 하는데요. 왜냐하면 식물학자 요한 곳트립 게오르기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른다고 해요.

식물학자 요한 곳트립 게오르기 (1729-1802)

이 꽃은 국화과인데요, 여름부터 가을까지 다른 꽃들보다는 조금 늦게 피는 편이죠. 이 꽃을 가지고 헤르만 폰 길름(1812-1864)이라는 시인이 시를 써서 1844년에 다른 시들과 함께 시집으로 발간하는데요. 시집 제목이 'Die letzten Blätter' 우리나라 말로 하면 '마지막 잎새'쯤 될까요?

시인이자 법률가였던 헤르만 폰 길름


그리고 40여 년이 흐르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는 천재적인 작곡가가 21살 때, 저 '마지막 잎새' 시집 중에서 8개를 골라 곡을 붙이고 발표합니다. 이 8곡의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슈트라우스 가곡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자주 부르는 곡들이에요. 예를 들면 'Die Nacht 밤', 'Zueignung 헌정', 'Allerseelen 위령절' 등등 이죠. 그리고 그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달리아' 꽃을 주제로 쓰인 곡도 있어요. 그럼 오늘은 이 곡을 소개하면서 마칠게요. 길름과 슈트라우스가 달리아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볼까요?


Warum so spät erst, Georgine? 달리아야, 왜 이렇게 늦었어?

Das Rosenmärchen ist erzählt, 장미 동화이야기가 이미 끝났는걸

Und honigsatt hat sich die Biene 그리고 꿀을 배부르게 먹은 벌들은

Ihr Bett zum Schlummer ausgewählt. 이제 잘 준비를 하고 있단다.


Sind nicht zu kalt dir diese Nächte? 이 밤이 너무 춥지 않니?

Wie lebst du diese Tage hin? 이런 날들 중에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그러니?

Wenn ich dir jetzt den Frühling brächte, 내가 만약 지금 너에게 봄을 가져다준다면 모를까.

Du feuergelbe Träumerin, 너 샛노랗기만 한 몽상가야


Wenn ich mit Maitau dich benetzte, 내가 너를 5월의 이슬로 적셔준다면

Begöße dich mit Junilicht, 6월의 빛을 비춰준다면 말이야...

Doch ach! dann wärst du nicht die Letzte, 아, 하지만 그렇다면 네가 최후의 꽃이 아니게 되잖아?

Die stolze Einzige auch nicht. 그럼 당당한 그 유일한 이가 아니게 되지.


Wie, Träumerin, lock’ ich vergebens? 몽상가야, 내가 헛되게 너를 꼬시고 있는 걸까?

So reich’ mir schwesterlich die Hand, 그렇다면 내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 줘,

Ich hab’ den Maitag dieses Lebens 나는 이 삶에서 5월의 날을 알지 못해

Wie du den Frühling nicht gekannt; 네가 봄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야.


Und spät wie dir, du Feuergelbe, 샛노란 너처럼 나도 늦었어.

Stahl sich die Liebe mir ins Herz; 사랑이 내 심장을 훔쳐갔는걸.

Ob spät, ob früh, es ist dasselbe 늦거나, 혹은 이르더라도 어차피 마찬가지야.

Entzücken und derselbe Schmerz. 그 황홀함만큼 고통이 따른단다.


https://youtu.be/P-3owKzIjXE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가 부르는 "Die Georgine"

https://youtu.be/0heN97EUGkI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Die Georgine"


[성악 전문 팟캐스트 - 노래에 살고 독일에 살고]

79회 - 독일 작곡가들이 들려주는 꽃노래

전체 에피소드를 청취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WtKd4G1MPng


(팟빵으로 듣기!)

http://www.podbbang.com/ch/1769003?e=2353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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