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소년의 눈으로 본 혁명 의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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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벌써 5월입니다. 지난 5월 1일은 독일에서 'Tag der Arbeit'라고 해서 노동절로 휴일이에요. 한국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죠?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대규모의 노동자 시위에서 그 유래가 시작됐다고 해요.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았는데, 경찰과 군대가 발포하는 바람에 유혈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현재 8시간 법정 근무 시간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귀한 거네요.
그렇다면 시카고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1886년의 딱 100년전인 1786년 5월 1일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당시 귀족의 위선과 부도덕함을 통쾌하게 풍자하는 오페라가 공연되서 대성공을 거둔 날이었답니다. 네,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초연이 오스트리아 빈의 부르크극장에서 있었어요.
여러분, 유럽 근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산업혁명이요? 아니면 과학혁명이요? 네, 모두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혁명이지만, 저는 오늘 1789년에 프랑스혁명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정조 대왕 시대였는데요. 우리 잠깐 상상을 해볼까요. 다행히 우리의 정조는 성군이었지만, 만약 그 당시 왕이 무능력했고, 백성들은 굶어죽기 직전이었다고 가정을 해볼께요. 그렇다고 해서 민중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과 중전의 목을 자르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했을까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5년전에 어떤 희극이 나옵니다. 바로 보마르셰라는 작가가 쓴 <어느 미친 날 혹은 피가로의 결혼 (La Folle Journée ou le Mariage de Figaro)>이라는 작품인데요. 여기서 당시 지배계급인 귀족을 어떻게 묘사하냐면요. 위선적이고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도덕 따위는 나몰라라 하는 양심에 털난 쓰레기로 그려집니다. 훗날 나폴레옹은 이 작품을 읽고 “이 때부터 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이 작품은 희극입니다. 그래서 귀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죠. 당시 관객들이 얼마나 대리만족을 느꼈을까요. 하늘 같은 상전이었던 귀족이 이 작품에서는 넘볼 수 있는 조롱의 대상이 된 거죠. 저는 이 작품이 '프랑스 대혁명'에 적지않은 영향을 줬다고 믿습니다. 이 문제의 작품이 오스트리아에도 넘어왔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서 궁정 극장의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를 찾아왔다고 해요.
모차르트와 다 폰테의 만남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는데요. 모차르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그리고 <돈 죠반니>가 이 두 사람의 콜라보로 탄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 작품을 다폰테 3부작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작품을 오페라로 올리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죠. 아직 혁명 전이었지만, 당시 윗분들의 눈에는 매우 마땅치 않은 불온한 작품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는 당시 프랑스 왕비이자 자신의 막내 여동생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프랑스의 정세가 심상치 않고 혁명의 기운이 보이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미리 경고도 했을 정도에요. 그래서 대본가 다 폰테는 원작의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다 삭제하고 미리 대본을 만들어서 살벌한 검열을 통과한 후 모차르트가 작곡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무사히 공연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다 폰테가 황제 요제프 2세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뒷 이야기도 있어요.
초연을 위해 빈에서 가장 훌륭한 가수들을 참여시키고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했는데요. 네, 대성공이었다고 합니다. 초연이 1786년 5월 1일이었는데, 다음달 6월에 황제가 락센부르크 궁정극장에서 특별공연을 요청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원래 다가오는 6월 말에 서울 롯데 콘서트홀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할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안타깝게도 공연이 취소됐어요. 올해도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제가 부르기로 했던 역은 ‘케루비노’라는 소년이에요. 왜 여자인 제가 남자 역할을 부르냐고요? 오페라에는 바지 역할 이라고 해서 미소년, 미청년 역을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는 일이 종종 있어요. 이 케루비노가 대표적인 바지 역할이고요, 벨리니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로미오 역을 메조 소프라노가 부른답니다.
오늘은 제가 부를 뻔했던 케루비노의 눈으로 본 <피가로의 결혼>을 들려드리려고 해요.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가는 어느 청소년의 발칙한 이야기, 같이 감상하실까요?
케루비노는 수잔나가 있는 방으로 황급히 뛰어들어옵니다. 아침부터 수잔나를 찾아서 여기 저기 헤메이다가 겨우 수잔나를 만났습니다. 내일이 결혼식인 수잔나는 안그래도 바쁜데, 방금전까지 마르첼리나와 각을 세우며 티격태격 했거든요. 이제 겨우 혼자 있게 된 수잔나 앞에 얼굴은 하얗게 질린 케루비노가 달려옵니다. 놀란 수잔나는 이유를 묻습니다.
케루비노가 수잔나를 찾은 것은 평소에 고민도 많이 들어주는 지혜로운 누나이기도 했지만, 수잔나가 백작부인을 모시는 하녀이기 때문이에요. 케루비노가 처한 이 난국을 해결해주실 분은 성안에서는 오직 백작부인밖에 없지 않을까요? 백작부인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수잔나의 손에서 어떤 리본을 발견합니다.
수잔나가 화를 냅니다.
그런데 아까 바르바리나와 같이 있다가 백작에게 걸렸다고 하지 않았나요? 케루비노는 마음이 여러 개여서 바르바리나에게 향하는 마음, 백작부인에게 향하는 마음이 따로 있나봐요. 이 아이가 훗날 그 유명한 돈 죠반니가 되는 건 아닐까요? (사실 보마르셰의 피가로 3부작 중 3부에 그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만.....여기 이 <피가로의 결혼>은 2부, 로씨니의 유명한 오페라 <세빌랴의 이발사> 의 원작이 1부랍니다.)
케루비노의 첫번째 아리아를 부르고 퇴장하려는데, 멀리서 오고 있는 백작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얼릉 안 보이는 곳에 숨죠. 그리고는 본의 아니게 백작이 수잔나에게 음흉하게 작업거는 것을 다 듣고 맙니다. 뻔뻔하게도 백작은 부인이 있으면서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수잔나가 내일 피가로와 결혼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백작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초야권을 부활시켜서라도 수잔나를 가지려고 합니다. 초야권이란 옛날 옛적에 중세의 봉건 영주가 자신의 영내에 있는 처녀가 결혼할 때, 첫날밤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죠.
굉장히 야만스럽죠?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백작은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는 걸까요? 백작은 자꾸 해질 무렵에 정원에서 만나자고 수작을 걸고 있는데.... 헉, 음악교사인 바질리오가 밖에서 백작을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백작도 당황해서 숨습니다. 아까는 케루비노가 숨더니, 이번에는 백작이 숨는군요. 그 방에는 숨을 공간이 많은 가봐요.
바질리오는 사실 이미 백작의 사주를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수잔나에게 노래 레슨을 해주면서 백작의 뜻에 따르도록 설득하라는 미션을 받은 상태거든요. 도덕보다도 돈이 훨씬 중요한 바질리오에게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돈만 많이 주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바질리오가 수잔나랑 둘만 있는 줄 알고 별 얘기를 다합니다.
백작이 폭발해서 그만 정체를 드러냅니다.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버리자 수잔나는 기절 직전입니다. 백작이 분노해서 말합니다.
라고 식탁보를 들췄는데..... 하필 또 거기 있는 케루비노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제와 오늘 이건 뭐죠. 데자뷰인가요? 수잔나는 어지러울 지경이고, 바질리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 있습니다. 백작은 케루비노가 수잔나까지 건드리려고 하는 걸로 오해하죠. 네, 뭐 눈에는 뭐만 보는 법이죠.
케루비노가 더듬거리면서 대답합니다.
백작이 폭발하려는 순간 피가로가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백작에게 꽃을 바치며 노래를 하죠. 피가로가 사람들 앞에서 넉살좋게 그 오래된 법, 즉 초야권을 말하는 거죠. 그걸 폐지하시는게 어떠냐고 말합니다. 사람들 앞이니까 백작은 어쩔 수 없이 위선을 보이며 자애로운 성군인 척 합니다. 자신은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며,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을 축복하고 마을사람들을 보냅니다.
휴우…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피가로가 죽상이 된 케루비노를 발견합니다. 백작은 아직 화가 안풀렸죠. 수잔나가 아직 어린 소년이라고 변호를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넌 당장 내일 군대로 떠나라.” 수잔나와 피가로는 내일이 결혼식날인데, 하루라도 더 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소용없죠. 케루비노는 체념합니다. 어쩌겠어요. 윗분이 가라하시면 가야죠. 피가로는 그런 케루비노에게 위로 반 놀리는 거 반인 아리아를 불러줍니다.
하하하 이거 놀리는 노래 맞죠? 우리의 불쌍한 케루비노는 어떻게 될까요? 다음에 나머지 이야기와 함께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노고독고에서만 들으실 수 있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뒷 이야기 들고 다시 돌아올께요. 구독, 좋아요 꾸욱 눌러주시고요. 그리고 여러분 덕에 페이스북 팔로우 수가 500명이 넘었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피가로의 결혼>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와 함께 오늘 에피소드 마무리할꼐요.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와서 더 유명해졌죠?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2중창 ‘Sull’aria’입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 뒤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다음주에 다시 만나요! 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