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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an 22. 2019

'돈 죠반니' 유혹, 환각, 절정의 결말

베를린 국립오페라 (Staatsoper unter den Linden)

지휘- 라하브 샤니Lahav Shani

연출 - 클라우스 구트Claus Guth

무대 / 의상 – 크리스티안 슈미트Christian Schmidt


돈 죠반니 DON GIOVANNI – 마르쿠스 베르바 Markus Werba

돈나 안나 DONNA ANNA - 에블린 노박 Evelin Novak

돈 옷타비오 DON OTTAVIO – 도브렛 누르겔디예프 Dovlet Nurgeldiyev

기사장 KOMTUR – 라인하르트 하겐 Reinhard Hagen

돈나 엘비라 DONNA ELVIRA – 타라 에러우 Tara Erraught

레포렐로 LEPORELLO – 다비드 오스트렉 David Oštrek

마젯토 MASETTO – 그리고리 쉬카루파 Grigory Shkarupa

체를리나 ZERLINA – 나린 예기얀 Narine Yeghiyan


돈 죠반니. 그의 하인 레포렐로에 의하면 그의 애인은 이탈리아는 640 명, 독일에는 231명, 프랑스에 100명, 또 터키에는 91명, 급기야 스페인에는 1000 명하고도 3명이 더 있다고 한다. 그는 계급, 연령, 외모를 따지지 않고 사랑을 베푸는 박애주의자(?)다. 또, 어떤 여자를 만나도 그 여자만의 장점을 찾아내서 그 마음을 훔쳐낸다고 한다. 물론 그의 높은 작업 성공률에는 누가 봐도 멋진 외모와 목소리도 한몫할 것이다. 오죽하면 결혼식 당일 신부인 체를리나조차 거기에 혹했겠는가. 거기에 “저기가 내 성(城)인데, 구경 갈래?”라고 무심한 듯 던지는 어마어마한 재력에 대한 어필까지!! 자, 이제는 게임 끝! 오케이, 레포렐로, 여기 한 명 더 리스트에 추가해!


https://youtu.be/9c-NgV96vx4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레포렐로를 부른 바리톤 어윈 슈롯 버전의 레포렐로 아리아


치명적인 매력의 돈 죠반니는 베이스 바리톤이라면 욕심나는 역이 아닐까? 매력적인 외모를 강조하다 보니, 요새 연출에는 돈 죠반니 상의 탈의를 당연한 듯하는 경우가 많다. 성악가들의 직업적인 훈장인 두툼한 복부와 상의 탈의는 매우 역설적인데, 이번에 본 마르쿠스 베르바처럼 멋진 몸매와 훌륭한 가창을 다 가진 죠반니는 드물지 싶다. 아...노래도 잘하면서 몸매 관리도 해야하는 야속한 비주얼 시대여...!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독일. 가장 많이 상연되는 <마술피리>를 비롯해서, <코지 판 투테>, <돈 죠반니>, <피가로의 결혼>도 너무나 당연한 듯이 자주 상연되고, 또 좋은 프로덕션은 해를 거듭해서 재공연 되기도 한다. 이번에 본 슈타츠오퍼의 (Staatsoper unter den Linden: 베를린 국립오페라단) 돈죠반니 프로덕션도 2007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공동작업을 해서 올린 이후로 꾸준히 재공연 되고 있고, 여전히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200년이 넘은 오페라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의 시도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 스타일이 확고한 작곡가이기 때문에, 음악적 가변성보다는 아무래도 연출가가 줄 수 있는 변주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모차르트 오페라를 보러 갈 때면, 이 연출가가 얼마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지 기대가 크다.


이 프로덕션도 가수들의 절창과 호연,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정교한 앙상블이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연출을 맡은 클라우스 구트의 기발하고 정교한 연출적 설정 덕에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이 세 시간이 넘는 긴 오페라를 즐길 수 있었다.


https://youtu.be/yMmRv416uPw

오페라 <돈 죠반니> 메이킹 필름

원래 이 오페라의 배경은 시작은 돈나 안나의 저택, 그중에서도 그녀의 침실에서 시작된다. 자고 있는 돈나 안나를 겁탈하려던 돈 죠반니는 반항하는 돈나 안나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 소란을 듣고 온 돈나 안나의 아빠, 기사장과 결투를 벌이게 된 그는 결국 기사장을 죽이게 된다. 그 후 하인 레포렐로와 줄행랑을 친 돈 죠반니는 방금 여자 때문에 살인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또 여자를 발견해서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앞서 언급한 수천 명의 리스트 안에 이미 들어갔던 돈나 엘비라이다. (유혹의 능력만큼 기억력은 따라주지 않는가 보다. 하기사 수천 명이면…) 돈나 엘비라는 돈 죠반니를 잊지 못하고 그를 찾아온 나라를 뒤지는 중. 돈 죠반니에 대한 애증으로 마음속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페라 엔딩에서 지옥에 가는 돈 죠반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무튼 한 번 리스트에 올라간 여자는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돈 죠반니. 또다시 줄행랑을 하고 이번에는 시골처녀 체를리나가 결혼 파티를 하는 걸 본다. 다시 작업 시작. 이 정도면 ‘발정 났다’고 표현할 지경이다. 체를리나는 자신의 신랑인 마젯토가 질투의 눈으로 이글이글하게 쳐다보고 있지만, 돈 죠반니의 치명적인 유혹에 도저히 헤어져 나올 수가 없다. “노…라고 말해야 하는데…. 제 마음은 예스…인 거 같기도 하고…마젯토가 있어서… 그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그런데… 저 성은 구경 가고 싶기도 하고…. 앙…. 몰라요” 체를리나의 신분적 콤플렉스를 자극해 유혹에 성공하려는 찰나, 그에게 원한을 갖고 있는 모두가 들이닥쳐 대 혼란 속에 1막이 끝이 난다.


왜 이렇게 길게 1막 줄거리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는가 하면, 이 이야기를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가 어떻게 변화를 줬는지 설명하고 싶어서이다. 원래는 1막에서 적어도 3번의 무대 전환이 있어야 하는 플롯인데, 이 프로덕션에서는 전체를 숲으로 설정했다. 처음이 돈나 안나의 저택이 아니라 숲 속에서 두 남녀(돈 죠반니와 돈나 안나)가 밀회를 즐기는 설정이다. 무대가 회전하면서 각기 다른 숲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무대가 회전하는 속도에도 변화를 줘서 상황과 음악에도 잘 어울리게 하였다. 가령 1막 피날레의 대혼란의 장면은 빠른 속도로 무대가 돌고, 그 위를 돈 죠반니가 마치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숲 속을 헤매도록 하고, 나머지 배역은 무대 앞에 배열해서, 피날레 특유의 음악적인 집중력도 지켜내면서 음악적, 극적 긴장감은 엔딩을 향해 점점 고조될 수 있도록 한 아주 영리한 설정이었다.


이 프로덕션만의 인상적인 많은 설정 중에서 재미있는 소재는 바로 마약이었다. 처음에 레포렐로가 등장에서 “밤이나 낮이나” 투덜거릴 때, 이미 그는 마약중독자들이 하는 그런 무의식적인 반복 동작을 보여준다. 또, 돈 죠반니가 기사장과 결투해서 그를 죽일 때, 기사장도 그에게 총상을 입힌다는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그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죠반니는 마약을 투약하고, 그 이후 각성 상태에서 돈나 엘비라가 미녀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그때 그녀”인 줄 깨닫고 줄행랑치는 것도 재미있다.


 이 마약 설정은 엔딩까지 개연성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점점 더 마약 중독자의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돈 죠반니. 마지막에는 덜덜 떨고 있다. (총상을 입었는데 치료는 안 하고 발정 난 상태로 마약만 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원작에서는 자신이 죽인 기사장의 동상이 돈 죠반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지옥으로 데리고 간다는 설정인데, 여기서는 돈 죠반니가 극렬한 환각 상태 끝에 스스로 무덤에 빠져 죽음을 맞도록 설정했다. 노래도 완벽했지만, 이런 어려운 연기도 대단하게 해낸, 돈 죠반니의 마르쿠스 베르바와 레포렐로 역의 다비드 오스트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https://youtu.be/IsEujPMgH2I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돈 죠반니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말트만 Christopher Maltmann의 엔딩


 돈 죠반니의 아리아들은 잘해야 본전일 정도로 어려운데, 마르쿠스 베르바는 대단한 카리스마와 완성도를 보여줬다. 특히 그의 아리아 Fin ch’han dal vino는 빠른 템포에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가사 때문에 꽤나 까다로운 곡인데, 마르쿠스 베르바는 환각 속에서 절정에 이른 돈 죠반니의 상태를 이 아리아를 통해 기가 막히게 잘 해냈다. 평소 들었던 이 아리아 속도보다 1.5배는 빨랐던 거 같다. 또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마약에 쩔은 하인 레포렐로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다비드 오스트렉에게도 큰 박수 보낸다.


다른 역할들의 해석에 있어서는 혁신적인 새로움은 없었지만, 각 역할마다 구체적인 캐릭터를 부여해서 8명의 등장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앙상블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가창뿐 아니라 연기적으로도 훌륭하게 소화해 낸 모든 가수들의 조화가 마치 각각의 재료가 잘 살아있는 일품요리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이 날의 유일한 아쉬움은 77유로 (한화로 약 10만 원)이나 주고 산 자리에서 자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슈타츠오퍼 극장은 구조상 유독 시야 장애 석이 많은데, 그런 좌석을 피해 1층으로 예매를 했음에도 자막이 전혀 보이지 않는 좌석이라는 것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비슷한 구조의 프랑크푸르트 극장 같은 경우는 2층 발코니석으로 인해 자막이 보이지 않는 1층 사이드 쪽 관객을 배려해서 작은 보조 스크린이 설치돼있다. 다행히 돈 죠반니는 익숙한 오페라라서 자막 없이도 공연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행여나 잘 모르는 작품을 봤었으면, 크게 원통할 뻔했다. 대규모의 수리를 한 후 2017년에 재개관을 했는데, 곳곳에 표지판도 좀 더 눈에 띄게 또, 좀 더 친절하게 보완해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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