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 도이체 오퍼 베를린 Deutsche Oper Berlin
지휘 - 옥사나 리니브 Oksana Lyniv
연출 - 볼레스라브 바르록 Boleslaw Barlog
무대, 의상 - 필리포 산후스트 Filippo Sanjust
토스카 Tosca - 루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 Liudmyla Monastyrska
카바라도씨 Cavaradossi - 로버트 왓슨 Robert Watson
스카르피아 Scarpia - 루쵸 갈로 Lucio Gallo
지난 연말에 도이체 오퍼에서 오페라 <나부코>를 봤었는데, 한 달도 안돼서 감사하게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늘 좋은 좌석을 확보해주시는 rich 님께 깊은 감사를!!)
이번에는 <토스카>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와 푸치니의 <토스카>. 둘 다 이탈리아 오페라 간판 작곡가들이다. 베르디는 1813년 생이며 푸치니는 1858년 생이니, 베르디가 45년 앞서있는 만큼 그 스타일도 다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이 두 오페라의 공통점은 바로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나부코>의 여주인공 ‘아비가일레’와, <토스카>의 타이틀롤 ‘토스카’. 내가 도이체 오퍼에서 본 <나부코> 프로덕션에서는 소프라노 안나 피로찌 Anna Pirozzi가 아비가일레를 불렀지만 그녀의 주요 레퍼토리에는 토스카도 있다. 마찬가지로 <토스카> 프로덕션에서 토스카를 부른 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 또한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아비가일레를 불렀을 정도로, 같은 필드 위에서 뛰는 가수들이다.
위의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두 역 모두 노래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렵고 압도적인 성량이 필요한 역이라 사실 그쪽 필드에서 잘 노는 가수가 상대적으로 드물고 또 수명도 짧은 편이다. 두 사람의 노래를 비교하기 위해 위의 동영상을 찾았는데, 사실 조금 놀랐다. 한 가수가 몇 년 사이에 목소리 변화가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토스카를 부른 류드밀라 언니는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잘하기는 잘한다. 그런데 뭔가 오는 게 없다. 저기 위에 코벤트가든에서 아비가일레를 부른 동영상에서는 다른 사람인 것 마냥 다른 소리와 테크닉을 보여준다. (언니 그렇게 세이브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사실 체격도 코벤트가든 시절이 더 날씬하긴 하다.) 저기 2017년 키예프 버전의 토스카를 보면 코벤트가든의 2013년에서 불과 4년 사이에 소리가 많이 넓어진 것을 들을 수 있다. 4년 사이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찾아봤는데, 계속 꾸준히 세계적인 극장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류드밀라는 2010년에 이미 토스카 역으로 도이체 오퍼에서 데뷔했었고, 내가 봤던 나부코 프로덕션에서 예전에 아비가일레를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번 <토스카> 때 가진 관전평으로는 전성기를 좀 지난, 이 역을 너무나 많이 불러서 다소 기계적으로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 좋게 포장하고 싶으면 “노련했다”라고 말하리라. 정말 노련했다. 아주 충분히.
너무 류드밀라 언니에게 가혹했나? 언니, 미안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었네요. 왜냐면 상대방이 떠오르는 샛별처럼 그 기세가 너무 대단했거든요. 상대적으로 류드밀라 언니를 어둡게 만든 그 샛별은 바로 또 다른 주인공 카바라도씨 역을 부른 미국 테너 로버트 왓슨이었다. 도이체 오퍼 소속 가수로 이제 막 주인공을 맡기 시작한 이 87년생 새파랗게 젊은 테너는 “이 이름을 기억해 놔야겠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 프로덕션 전에도 <호프만의 이야기>에서도 주인공 호프만 역을 불렀다는데, 그 사람 잡는 어려운 역인 호프만도 그렇게 잘 해냈다고 한다.
류드밀라 언니랑 하는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매력적인 카바라도씨가 돼서 무대를 휘젓는데, “오, 이 테너 물건이구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의미로 “노련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오직 단 한 번,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는 걸 들켰다. 3막의 카바라도시의 절절한 아리아 “E lucevan le stelle 별은 빛나건만” 부를 때 자신의 감정에 벅찬지, 오케스트라와 호흡이 다소 삐끗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이런 부분은 “노련해” 지리라. 이 테너가 잘 성장해서 내가 나중에 “내가 그 테너, 신인 때부터 봤는데, 떡잎부터 알아봤다고”라고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시 여주인공 이야기로 돌아가서, 토스카와 아비가일레는 비련 한 여주인공 투성인 오페라계에서 한 성깔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그야말로 질투의 화신이다. 그리고 그 질투의 덫에 자신이 빠지고 만다.
아비가일레는 바빌론 왕 나부코(성경에서 나오는 이름은 느부갓네살)의 딸인데, 그녀의 질투의 대상은 자신의 동생 페네나이다. 아버지도 동생을 더 사랑해서 왕위를 동생에게 주려고 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이스마엘레조차 페네나를 사랑 한다고 자신의 마음을 거절하자, 그녀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신 앞에서 교만했던 아버지가 벼락 맞고 미치광이가 되자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고 동생을 처형하려고 하는데... 유대의 신 앞에 회개한 아버지가 정신을 되찾고 일으킨 쿠데타에 모든 걸 잃고 마는 악녀로 그려진다.
당대 최고 성악가인 토스카는 질투는 했을지언정, 누굴 해하거나 나쁘게 굴지는 않았는데도 결말은 더 비참하다. (아무리 질투가 칠거지악 중 하나라지만... 질투의 결과치 고는 너무 잔인하다. 아무튼 푸치니가 비련의 여주인공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가 더 절절하게 들리나 보다.
Vissi d’arte, vissi d’amore,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면서
Non feci mai male ad anima viva! 나쁜 짓이나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는데,
Con man furtive quante miserie conobbi, aiutai…. 남몰래 불쌍한 이를 수도 없이 도왔건만…
Sempre con fe’ sincera, 항상 믿음을 지키며,
la mia preghiera ai santi tabernacoli Salì. 성인들께 진심으로 기도드리고,
Sempre con fe’ sincera diedi fiori agli altar. 진실한 믿음으로 제단에 꽃을 바쳤는데.
Nell’ora del dolore perché, perché Signore, 이 고통의 시간에 왜, 도대체 왜, 주님,
Perché me ne rimuneri così? 이렇게 날 내버려 두시나이까?
Diedi gioielli della Madonna al manto, 성모님께 보석도 마치고
E diedi il canto agli astir, al ciel, che ne ridean più belli. 저 하늘 향해 거룩한 노래도 불렀건만,
Nell’ora del dolore, perché, perché Signore, 어찌하여, 주님,
Perché me ne rimuneri così? 이토록 날 외면하시나이까?
스카르피아는 공포통치로 온 로마를 떨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토스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는데, 절호의 찬스를 발견한다. 토스카의 연인 화가 카바라도씨가 정치범 안젤롯티를 도피시켜준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카바라도씨가 우연히 안젤롯티의 여동생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리는 걸 알고, 그녀의 부채를 가지고 토스카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이아고는 손수건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이 부채가 있지”
(이아고가 질투와 열등감을 이용해서 오텔로를 파멸시키고 죄 없는 데스데모나를 죽게 한 오페라 <오텔로> 이야기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
https://brunch.co.kr/@jinaohmezzo/12
토스카가 질투에 불타 둘만의 비밀장소에 있는 카바라도시를 찾아갈 것이기 때문에, 토스카를 뒤쫓아 카바라도시를 체포할 계획이다. 오페라 초반에 카바라도시가 성당지기에게 “조심해야 돼, 그녀는 질투가 많거든”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토스카는 질투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고 묘사된다. 하지만 자신의 애인이 다른 여자를 모델로 아름답고 성스럽게 묘사하고 있는데, 질투 안 하는 여자가 어디 있나. 토스카는 자신이 당대 최고의 가수에 이를 정도로 자신감이 있는 당당한 여인이기에, 자신의 감정도 당당히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죄로 자신을 범하려는 악당을 그 여린 손으로 찔러 죽이는 상황에 이르고, 또 그 악당에게 기만당해서 자신의 애인이 눈앞에서 총살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처형장인 산 안젤로 성에서 뛰어내려 죽는 것뿐. 그렇지만 토스카가 뛰어내리면서 하는 마지막 절규 “스카르피아, 지옥에서 두고 보자!”. 토스카 답다. 최악의 순간에서 악에 받힌 그녀의 절규!
옥사나 리니브의 지휘도 무척 훌륭해서 음악도 잘 흘러갔고, 1969년에 초연했다는 이 프로덕션은 5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운 무대와 군더더기 없이 개연성 있는 연출로 명작으로 이를 만했다. 이런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는 명작 프로덕션이 우리나라 오페라계에도 생겨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