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의 압박
아아... 글이 나오지 않는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이번에도 마감 전에 넉넉히 여유를 두고 원고를 보내는 사치 따위는 힘들 듯하다. 이전에는 저질이었을지언정 양은 걱정 없을 정도로 술술 나오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하다. 4월에 눈이 내리고 있는 찌뿌둥한 독일 날씨 덕분인가.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 뇌를 각성시키고자 평소 마시지 않는 늦은 시간에 커피를 들이켰지만
이제는 이 정도 따위는 내성이 생겼는지 그 반짝임의 순간이 너무나 짧다.
반성한다. 그동안 인풋이 빈약했다.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동안 내가 마음을 쏟았던 것들 중에 좋은 글은 없었다. 급하게 책장에서 나에게 문장력이라는 것을 깨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글로 이루어진 책을 찾아본다. 그래. 알랭 드 보통. 오늘은 당신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아이디어와 사고의 전개, 독특한 관점에 감탄한다. 그래, 이 정도는 생각해야 저렇게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게지. 하지만 짧은 독서는 문장력이 아닌 반성만 촉구할 뿐이다. 내 그동안 너무 게으르고, 방만했구려.
이럴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산책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산책하면서 리뷰할 음악을 들어보자. 그러면 뭔가 하고픈 말이 줄줄 나올지도 몰라. 하지만 역시 실패. 0도를 간신히 웃도는 기온은 그간 움텄던 봄의 기운을 싹 다 얼려서 죽이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섭다. 4월인데 갑자기 눈이 오는 독일 날씨 덕분에 안경이 물방울로 뒤덮여 눈에 뵈는 게 없고, 강풍은 머리 위 패딩 모자를 뒤로 넘길 기세여서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전진하느라 영감은커녕 혼비백산해서 집에 돌아왔다.
다음 방법은 샤워이다. 희한하게도 샤워를 하면, 흐르는 물과 함께 잡념도 같이 빠져나가면서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주고 가끔은 기가 막히게 좋은 아이디어도 떠올려진다. 그렇지만 오늘은 이 방법도 실패다. 글에 대한 영감은 전혀 얻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 마감이 며칠 남았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내일이 마감이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브런치를 쓰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분명히 마감이 다가오면 극한의 힘으로 뇌를 짜내서 무엇이든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다. 마감 때마다 겪는 스트레스가 싫어서 미리 준비하려고 하지만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매일 오전 일정 시간을 할애해 무조건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는데, 나는 뭐라고 그렇게 방만하게 살았던 걸까. 갑자기 인스타그램의 프로필에 '글 쓰는 성악가'라고 적은 나의 건방에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렇다. 글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씬 앞선, 이 글을 읽는 브런치 작가님들에게는 이미 얕은 수가 읽혔겠지만, 이 글은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 위해 뇌를 워밍업 하려는 목적으로 쓰고 있는 글이다. 아마도 내일 아침에도, 모레 아침에도 계속 글은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원고를 마감하고 나서도 꾸준히 올라와야 할 것이다. 그게 내가 반성을 제대로 하고 더 나아진 내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쓰다보니 반성문 혹은 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김에 기록을 하나 더 해보자면... 아래는 산책 길에 들이닥친 4월의 눈보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