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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20. 2021

잘츠부르크 코로나 소동, 그래이엄 빅, 폴린 비아르도

7월 넷째 주 세계 성악계 소식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오페라 <예더만> 방문객 중 코로나 확진자 발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잘츠부르크 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현대 오페라 <예더만 Jedermann (누구든지)> 개막공연에 참여했던 방문객 중 한 명이 코로나에 확진된 것으로 알려짐.

축제 측에 따르면 "감염자는 완전히 면역이 됐다.(Die infizierte Person war vollimmunisiert)"고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 조치를 강화해서 이제 축제 방문객은 모든 장소에서  FFP2마스크(한국의 KF95와 비슷한 유럽인증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이걸 이제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에서는 더 신기함)

현재 접촉자 추적이 한창 진행 중이라고 함.


https://orf.at/stories/3221619/


이번에 발생한 확진자는 예방 접종을 완료했음에도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함.

(그래서 완전히 면역이 됐다...라고 주최 측이 강조했나 봄) 

그는 잘츠부르크 거추자는 아니고, 귀국 후 자가검사 과정에서 코로나 확진이 밝혀짐.


마찬가지로 지난 토요일에 열린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공연에서도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함.


https://www.sn.at/salzburger-festspiele/salzburger-festspiele-coronafall-nach-jedermann-premiere-bringt-maskenpflicht-zurueck-106827610


2020년 코로나로 모든 여름 축제가 취소됐을 때에도 잘츠부르크만 100주년을 맞은 만큼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당시 관람객이나 아티스트 중 단 한 명의 확진자도 없었음. 하지만 2021년 첫 공연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명.


오스트리아는 그동안 유럽에서 코로나 방역 규제 완화에 앞장서는 모양새였음.

실내외 행사의 방문객 수에 대한 제한도 없어졌고, 마스크나 거리두기 규정도 없었다고.

많은 국제적인 비평가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청중들에게 연설을 하기도 했다고 함.

홀 안에서 더 이상 거리두기 규칙도 없고, 마스크를 제대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아직도 방역 규칙의 제한을 받고 있는 독일에서 온 방문객들은 이런 현지 분위기에 놀라워했다고.


https://kurier.at/kultur/salzburger-festspiele-corona-fall-bei-jedermann-premiere/401448433


오페라 연출가 그래이엄 빅 타계

영국 출신의 오페라 연출가이며 잘츠부르크와 브레겐츠에서도 활동한 그래이엄 빅이 67세로 타계함. 그는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를 설립하기도 함.

그는 오는 9월에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가면무도회>를 연출할 예정이었음.

전통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을 혼합한 실험적인 연출로 유명함.

그의 비보에 밀라노 라 스칼라,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들을 비롯한 수많은 극장들이 애도를 표함.


1987년 그는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 설립하고 죽을 때까지 예술감독으로 재직.

1992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복원된 후 재개장할 때 연출한 오페라 <팔스타프>를 비롯, 현대 오페라 연출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작품을 연출함.


https://www.derstandard.at/story/2000128263805/opernregisseur-graham-vick-67-jaehrig-gestorben


그의 오페라는 거의 항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마술피리>를 연출했는데, 타미노와 파미나의 '물과 불의 시험' 대신 러시안룰렛을 도입하는 등 파격적이었다고 함. 당시 청중들만 당황한 게  아니라 지휘를 맡은 리카르도 무티조차 그 연출에 회의적이어서 그다음 해(2006년)인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에는 다른 연출가의 작품이 공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일화가 있음. 정작 연출가 빅을 데려온 것은 무티였다고. 밀라노 예술감독 재임 시 이미 빅의 작품이 얼마나 논란을 일으켰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었음.

 

런던에서 사망한 빅의 사망원인은 코로나19였다고 함. R.I.P.


https://www.diepresse.com/6009704/graham-vick-viel-diskutierte-musiktheater-abstraktionen


아래는 빅이 2010년에 연출한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소개 영상

https://youtu.be/pkTjpb01_sU


아래는 2019년에 떼아트로 로마에서 연출한 오페라 <돈 죠반니> 전체 영상

https://youtu.be/kZ_xW4ZBxMg


전설적인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 탄생 200주년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는 그녀를 두고 "차라리 초인간적"이라고 기억함.

놀라운 성악가이자, 피아노 연주자, 그리고 작곡가였음.

그녀는 굉장히 넓은 음역을 가진 콘트랄토.

브람스가 그녀를 위해 <알토 랩소디> 작곡함.

베를리오즈는 그녀의 목소리를 알토와 메조소프라노, 그리고 소프라노의 조합으로 묘사함.


1821년 7월 18일 파리 출생.

부친은 로시니의 오페라 초연에서 여러 번 노래한 유명한 테너 마누엘 가르시아.

어머니 마리아 조아키나도 성악가였음.

폴린은 3남매 중 막내. 그녀의 오빠 마누엘은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성악교사 중 한 명이었고,

언니는 바로 전설적인 성악가였던 마리아 말리브란이었음.


어릴 적부터 아버지 친구인 리스트에게 피아노 레슨 받음.

그녀가 11살이 되었을 때 부친 사망, 그로부터 4년 후 언니인 마리아 말리브란도 사망.

클라라 슈만과 포핸드로 연주할 정도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폴린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모친은 가족의 전통을 따라 가수가 되라고 종용.

클라라와 폴린은 70세가 넘도록 자신들을 '19세기의 가장 오래된 (여자) 친구들'이라고 지칭함.


18세의 폴린은 이미 '이탈리아 오페라의 사자'로 알려짐. 무대 안팎에서 가수, 피아니스트, 편곡자, 작곡가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함.

1839년 런던 오페라 하우스 데뷔, 이후 파리,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수많은 유럽 도시에서 공연하는 스타가 됨.


18세의 나이에 21세 연상의 루이 비아르도와 결혼. 그는 떼아뜨르 이탈리안의 감독이자 번역가, 미술 수집가였음. 둘 사이에 4명의 자녀. 폴린은 그에게 열렬한 사랑은 아니어도 깊은 존경과 우정을 가짐.

그리고 러시아 작가인 이반 투르게네브와의 염문도 유명. 투르게네브는 루이 비아르도와 사이도 좋았다고. 같이 사냥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번역 작업도 함께 했다고.


그녀의 초기 경력에는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노래함. 벨리니, 도니젯티, 로시니, 그리고 베르디. 한편 프랑스에서는 마이어베어와 긴밀하게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 글룩과 헨델의 작품도 노래함.

가브리엘 포레는 그녀를 두고 '동료'라고 표현함. (역주-단순히 작곡가의 작품을 부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작곡가와 같이 작업할 정도로 역량이 뛰어남을 의미)

작곡가로서 폴린은 250여 곡을 작곡.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


42세의 폴린은 오페라 무대 은퇴함.

1863년 그녀의 가족과 투르게네브는 당시 '유럽의 여름 수도'라고 불리던 바덴바덴으로 이사.

이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런던으로 이주한 후 결국 파리에 정착.

1883년 루이 비아르도와 이반 투르게네브가 사망.

27년 뒤 1910년 5월 18일, 89세의 폴린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안락의자에서 영원히 잠들었다고.


https://www.deutschlandfunkkultur.de/200-geburtstag-der-saengerin-pauline-viardot-mit-einem.3780.de.html?dram:article_id=49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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