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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Sep 15. 2021

호세 카레라스-빈 슈타츠오퍼,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2021년 9월 셋째 주 세계 성악계 소식

빈에서 고별 무대를 가진 전설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

지난 화요일(9월 14일) 전설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빈 슈타츠오퍼 고별무대가 있었음. 

90년대를 돌이켜보면 진지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의 경계가 잠시 허물어지는 듯했음.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 같은 이름이 적인 티켓이라면 스타디움이 오페라 아리아 프로그램으로 채워질 수 있었음. 

1990년 월드컵에서 10억 명의 TV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3인조로 등장한 그들은 팝계의 슈퍼 그룹으로 거듭 재결합함. 

'쓰리 테너(Three Tenors)'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수입을 올림. 

베르디는 자신의 아리아를 '한입거리'(역주-갈라 콘서트에서 가볍게 아리아만 부르는 것을 필자가 이렇게 표현함)를 위해 쓰지 않았고, 당연히 세 명이 돌아가면서 부르도록 쓰지도 않았음. 하지만 3명의 테너가 음반, 아레나, 또 TV에서 그렇게 해서 돈을 벌 때 누가 신경이나 썼는가. 

같이 투어 연주했던 지휘자 마르코 아르밀리아토는 이렇게 회상함. "사람들은 클래식의 로큰롤이라고 불렀죠." 

비너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아르밀리아토가 회상한 가장 희한한 연주는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사람들은 완전히 미쳤고, 비명을 질렀으며, 3명의 테너들을 만지고 싶어 했습니다."


파바로티의 경우 하이 C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2007년에 세상을 떠남. 

이중적인 의미로 세기의 가수인 플라시도 도밍고는 이제는 바리톤이 되어 80세를 맞았고, 천천히 내려올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한 때 에너지 덩어리였던 호세 카레라스는? 

이 74세의 노인은 다소 친밀한 분위기 안에서 빈의 청중과 작별을 고함. 

피아니스트 로렌초 바야이가 반주를 맡고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가 함께할 예정.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인 카레라스는 1974년에 빈 슈타츠오퍼 무대에 데뷔. 

1977년에는 이곳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킴. 

젊을 때 그는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6살 때 아버지와 함께 영화관에서 마리오 란자의 영화 <위대한 카루소>를 본 후 오페라에 빠지게 됨.

학창시절에는 항상 오페라 곡을 불렀고 친구들은 그를 '리골레토'라도 불렀다고. 

그의 부모는 음악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지만, 아들의 재능을 격려하고 음악원에 보냈다고 함. 

그랬던 그가 빈에서 카라얀이 지휘하는 오페라 <라보엠>의 로돌포를 불렀을 때, 전설에 따르면 30분 이상 박수를 받았다고 함. 

관능적인 음색, 녹일 듯이 감미로운 피아노, 젊은 카레라스의 간장감 넘치는 돌격을 보여줌. 

그는 빈에서 칼라프(투란도트), 카바라도시(토스카), 돈 호세(카르멘) 등 테너의 보증수표 같은 역들을 노래함. 

2004년까지 빈에서 20개 이상의 역할을 약 140회 이상 공연했다고. 

당시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카탈루냐 동향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에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일종의 멘토가 됨. 

마찬가지로 카라얀도 그를 좋아해 수십 년간 긴밀하게 협력함. 


그가 1987년에 혈액암에서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이야기. 

11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죽음과 사투를 벌임. 

골수 이식을 통해 그는 무대로 돌아왔고, 이후 1988년에 설립한 자신의 백혈병 재단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팝과 클래식 음악의 스타들과 함께 좋은 명분을 위해 정기적으로 노래를 부름.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2~3년간의 고별 무대 투어를 계획했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5년 전에 한 말이라고. (으응??)


https://www.wienerzeitung.at/nachrichten/kultur/buehne/2120335-Jose-Carreras-Einmal-noch.html

https://orf.at/stories/3228499/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객석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된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지난 일요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이번 시즌에 다시 돌아온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프로덕션 개막공연이 있었음. 

객석의 절반만 관중을 채울 수 있었고, 약 650장의 티켓은 매진됨. 

이제는 3-G(geimpft, genesen, getestet / 백신을 맞았거나, 코로나 걸려서 치료가 됐거나, 혹은 테스트로 음성 결과를 증명하거나) 조건을 충족하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전석 입장이 가능해짐. 

공연 전에 베언트 로에베 극장장이 등장해서 코멘트를 했다고.

"2020년 3월 이후 첫 정상 공연입니다. 박수를 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백신 접종률 80% 도시인 코펜하겐을 방문했을 때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우리는 오페라 등 우리의 옛 자유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극장에도 백신 접종을 꺼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언급함. 

"우리 모두는 개인의 권리와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에 대한 것을 저울질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공연하고 싶습니다. 공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에서는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돈을 지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https://www.faz.net/aktuell/rhein-main/oper-frankfurt-und-corona-saal-zu-bellinis-norma-wieder-voll-17535016.html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는 도미니크 마이어 극장장

"나는 닫는 데는 세계 챔피언입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자책하며 말함. 그는 빈 슈타츠오퍼를 일주일 만에 폐쇄했어야 했고, 그다음에 맡은 밀라노 스칼라를 닫아야 했다고. 

지난 시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원래 계획을 14번이나 조정해야 했다고 함.

그동안 그는 TV 프로덕션에 집중했고 단기 계획 시스템이 대체로 효과가 있었으며 스칼라의 팀이 유연하다는 것도 입증됨. 

스칼라 노동조합원들과의 대화도 두려워했던 것보다는 덜 '스포츠적'이었다고.

티켓 판매에서 2,900만 유로의 적자를 봤지만, 위기의 시즌을 견뎌냄.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1600만 유로의 임금을 삭감했고, 국고지원도 인상됨.

무엇보다도 외부의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 덕에 3,500만 유로의 후원금을 기록할 수 있었음. (사견-마이어의 예술적인 방향에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돈을 끌어오는 능력만큼은 정말 세계 챔피언 맞는 듯.)


현재 스칼라는 좌석의 절반만 채울 수 있지만 정치계에서 변화를 보이길 희망하며, 그럴 경우 새로운 시즌 시작부터는 전체를 다 채울 수 있을 거라 예상함. 

"절반만 채우다가는 영원히 버틸 수 없습니다."

또 마이어 극장장은 관객을 백신을 맞은 이와 코로나에서 회복된 이로만 제한하는 것에 반대함. 

(역주-현재 독일에서도 3G 대신 2G-백신 접종했거나, 회복됐거나-로 락다운을 대신하려는 움직임이 있음. 즉, 백신을 맞지 않으면 불편함을 겪게 해서 백신 접종을 유도하는 정책.)


12월 7일 개막공연으로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안나 네트렙코와 루카 살시의 <멕베스>가 올려짐. 

기존의 좌석보다 더 편안한 의자로 교체하고, 모든 좌석에 빈 슈타츠오퍼 같은 자막 시스템 설치하려고 함. 

홈페이지를 통한 전 세계 스트리밍도 고려 중.


https://www.wienerzeitung.at/nachrichten/kultur/buehne/2120503-Scala-Der-Weltmeister-im-Schliessen-eroeffnet-wieder.html

https://www.vol.at/scala-direktor-meyer-blickt-auf-schwierige-saison-zurueck/712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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