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 Apr 17. 2018

로씨니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

오페라 "신데렐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오페라 극장

공연 관람 일자 2017년 10월 1일


지휘-마우리치오 바르바치니(Maurizio Barbacini)

연출-안드레아 모제스(Andrea Moses)

무대-수잔네 그슈벤더(Susanne Gschwender)

의상-베르너 픽(Werner Pick)

조명-라인하르트 트라웁(Reinhard Traub)


안젤리나(신데렐라)-디아나 할러 (Diana Haller)

클로린다(신데렐라의 의자매 1)-카트리오나 스미스(Catriona Smith)

티스베(신데렐라의 의자매 2)-마리아 테레자 울리히(Maria Theresa Ullrich)

돈 마니피코(신데렐라의 양아버지)-엔초 카푸아노(Enzo Capuano)

돈 라미로(왕자)-서니보이 들라들라(Sunnyboy Dladla)

단디니(왕자의 시종)-보그단 바슈(Bogdan Baciu)

알리도로(왕자의 스승, 마법사)-아담 팔카(Adam Palka)



예상치 못한 즐거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생은 늘 기대 이상 혹은 기대 이하로 흘러가지만 이 작품이 이렇게 나를 즐겁게 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오페라 공연이 성공하려면 참 많은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일단 100년 전, 200년 전에 쓰인 음악과 스토리가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 그 재료를 가지고 연출가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요리해서 무대 위에 판을 벌여 놓는다. 그리고 가수가 최고의 테크닉과 해석으로 관객에게 서비스한다. 이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상차림을 만나면 신이 난다. 그 무대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을 안아주고 싶어 진다. 모처럼 이 삼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좋은 공연을 보았다.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슈투트가르트는 발레리나 강수진 덕에 우리 귀에 익다. 맞다. 그 발레단과 오페라단이 같은 극장에서 공연한다. 1,400석이 조금 넘는 이 극장은 지난번에 소개한 뮌헨이나 베를린, 함부르크만큼 크지는 않지만, 드레스덴, 쾰른, 라이프치히, 뒤셀도르프, 하노버, 프랑크푸르트 등과 함께 독일 오페라 극장의 A Class에 속하는 좋은 극장이다. 슈투트가르트 극장은 바로 앞에 공원과 호수가 있고 그 옆에는 쇼핑거리가 연결돼 있어서 접근성이 상당히 좋다.

슈투트가르트 국립 극장. 사진 출처-위키페디아

앙상블의 정석

나는 2013년에 초연된 이 프로덕션을 감히 명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로씨니 오페라가 가진 미덕에 연출자의 기발한 재치까지 더해져서 시종일관 눈과 귀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일단 로씨니 오페라의 즐거움은 리듬이 주는 묘미, 해학 넘치는 스토리와 대사일 것이다. 지휘자 마우리치오 바르바치니는 오케스트라를 완벽히 조련해서 치고 빠지는 리듬의 묘미를 잘 살려냈으며, 음악의 앙상블을 한 치의 삐걱거림 없이 만들어냈다. 독일에서 이렇게 완성도 있는 로씨니 앙상블을 들을 수 있을 줄이야. 또 한 가지 인상적인 부분은 밸런스였다. 가령 2막의 돈 마니피코와 단디니의 듀엣에서 보여준 섬세한 밸런스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왕자 행세를 했던 단디니가 돈 마니피코에게 정체를 실토하는 내용이다. 이 날 돈 마니피코는 다른 출연진에 비해 성량이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 듀엣은 서로 격양되어 부르는 내용이기에 바리톤과 베이스의 소리 경쟁으로 가기 쉽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반주도 볼륨이 상당하다. 그런데, 영리한 연출가는 이 가수 둘을 무대 맨 앞에 배치하고,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단디니의 볼륨까지 돈 마니피코 수준으로 줄인 덕에 뭐라고 하는지는 안 들리지만(어차피 독일 관객들은 자막을 읽고, 로씨니 오페라는 가사 반복이 계속된다) 밸런스가 깨지지 않아서 음악적 긴장감이 이어질 수 있었다.


연출의 신묘함

이제 이 프로덕션에서 연출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오페라에는 여성 합창 없이 남성 합창만 등장한다. 출연하는 합창단원이 대략 20명쯤 될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들 한 명, 한 명에 캐릭터를 부여하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가 전혀 산만하지 않았다. 이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냐면, 커튼콜 때 합창단 한 명 한 명이 각각 인사를 했고, 관객은 이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낼 정도였다. 또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기대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왕자의 성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결코 비싼 돈을 들인 스펙터클한 무대가 아님에도 적절한 타이밍과 조명으로 그 어느 작품보다 설득력 있는 신데렐라의 집 혹은 왕자의 성이 된다. 이런 잘 차려진 밥상은 오페라 마니아도 초보자도 다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이 작품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사진출처-www.oper-stuttgart.de

가수들도 그 흔한 구멍(?) 없이 치밀하게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주인공 안젤리나 역의 디아나 할러는 이 작품으로 '올해의 신인 오페라 가수' 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아니었다.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어리숙한 신데렐라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씩씩하게 표현하였다. 마지막에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왕자와 달려 나가는 모습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 다른 고정관념 파괴는 라미로 왕자였다. 그는 흑인이었다. 그래서 왕자가 시종 단디니와 옷을 바꿔 입고 시종인 척할 때는 또 다른 웃음의 포인트가 되었다. 이 연출에서는 흑인도 왕자 역할을 할 수 있고,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어도 신데렐라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통쾌했다.


로씨니 오페라는 쉽지 않다. 일단 템포가 빨라서 가수들이 힘들다. 그들이 뿜어내는 대사의 향연은 '머니'의 랩 배틀의 치열함 그 이상이다.(랩을 노래 위에 얹어서 하는 데다가, 이태리어로 부르니까) 또 반복도 많다. 그래서 연출가가 단조로움을 피하려 동작을 많이 주면 가수들이 움직이느라 정신 못 차린다.(최근에 그 참사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봤다.) 그런데 이 오페라에서는 연출가가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각 앙상블에서 포인트가 되는 지점마다 포커스를 정확하게 맞춰서 산만하지 않게 배려했다. 또 가수의 약점이 드러날만한 부분이 있으면 연출의 다른 부분으로 절묘하게 커버했다. 도저히 약점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게끔 했다. 72년 생으로 30년 가까이 연출 경력이 쌓은 이 관록의 연출가는 독일 전역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이 연출가의 다음 작품이 매우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에게 내린 세월의 눈(雪)이 보이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