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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26. 2022

인생 책을 만나다

올랜도 파이지스, <유러피언>

19세기의 전설적인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에 대한 원고를 쓰려고 자료를 모으던 중이었다. 도서관에서 '유러피언'이라는 벽돌처럼 무겁고 두꺼운 책을 발견했다. 폴린 비아르도와 그의 남편 루이 비아르도, 그리고 폴린을 평생 추앙했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 이 세 사람을 통해 19세기 유럽을 조명한 책이었다. 


"우왕! 이거 완전 나를 위한 책이잖아!"


두껍지만 내 인생을 두고 한 번 번역해볼까?.... 했는데, 어머, 이미 한국어 번역서가 나와있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광활하다. 도입부는 유럽 역사를 바꾼 철도 이야기다. 또 출판의 발전이 어떻게 작가들의 삶을 바꾸었는지도 들려준다.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부상한 신흥 부자, 부르주아의 자본이 미술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들려준다. 이 외에도, 19세기 유럽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나처럼 19세기 유럽의 산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에게는 복음 같은 책일지도.)


작가가 간택한 3명은 특별하다. 19세기의 르네상스인들이다. 몇 개 국어쯤은 당연하고, 탁월한 능력과 높은 지성을 갖춘 당대의 리더들이었다. 폴린을 통해서는 음악계를 조명한다. 그녀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거장들 - 로시니, 베를리오즈, 클라라 슈만, 구노, 베르디, 바그너 등 -의 생생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또 투르게네프는 어떤가, 그를 통해서 읽는 - 톨스토이, 에밀 졸라,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등 - 전설적인 문호들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높은 안목을 가진 미술 컬렉터 루이 비아르도 곁에서 펼쳐지는 미술계 이야기도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그동안 점으로 알고 있던 사실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점과 점 사이가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19세기 유럽'이라는 테피스트리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가령, 같은 벨칸토 오페라 작곡가라도 로시니벨리니 그리고 도니제티 사이의 간극을 그동안 혼자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넘겼는데, 이 책을 읽으니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유레카!)


그래서 저자에게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서글펐다. 나는 평생을 두고 그 점과 점 사이를 채울 작정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너무 빨리 완성해버린 것 같아서다.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필승 아이템을 얻은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빨리 어려운 라운드를 클리어해버린 느낌?


이 책은 두고두고 최소한 1년에 한 번씩은 정독해볼 요량이다. (처음에는 Ebook으로 구입했는데, 지인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한국에서 종이책도 공수했다.) 매년 쌓인 나의 점이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좀 더 촘촘한 테피스트리로 거듭날 것 같다.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의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계 다방면에 걸친 식견이 어마어마하다. (너무나 부럽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19세기의 세 천재를 알아본 저자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내가 주는 별점은 5개 만점의 4개 반. 책 자체의 내용은 별 6개라도 주고 싶지만, 반 개 깎아먹은 이유는 오타가 너무 많고, 인명 표기에도 오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목록을 만들다가 포기했다.) 동일한 사람을 한 페이지에서 여러 번 언급하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것은 물론이며, 꽤나 자주 언급되는 '외젠 스크리브'같은 프랑스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극작가를 왜 영어식으로 '유진 스크라이브'라고 표기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한 번씩 스쳐가듯 언급되는 이태리 고유명사 쪽은 난리도 아니다. 이 귀하고 두꺼운 책이 2쇄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에서는 벌써 3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시 한번 꼼꼼한 수정을 부탁드린다. 


아래는 내 나름의 시각으로 요약한 내용이다. 이 방대한 책에서 훗날 필요한 부분만 읽고 싶을 때를 위해 작성했다. (각 장 아래 소제목은 내 마음대로 달았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러피언


제1장 1843년의 유럽

1. 러시아에 간 폴린 비아르도

- 오페라 계의 나폴레옹, 죠아키노 로시니

- 스타 연주자들의 천문학적 개런티

- 후원자로부터 독립된 전문 연주자의 시대: 가르시아 가족

- 폴린과 루이의 만남

2. 최초의 국제 철도(쾰른-앤트워프)의 개통

- 철도가 변화시킨 19세기 전반 유럽의 사회와 문화

- 테오도르 폰타네, "낭만주의는 이 지상에서 끝났고, 철도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1843년)

3. 도서 출판의 일대 혁명 

- 19세기 문맹률 감소, 가스등 도입으로 인한 저녁 여가시간 증가, 출판 기술의 발달로 비용의 감소, 철도의 발달로 기차역에 서점이 생기고, 기차 여행 중 읽을거리에 대한 수요가 생김. 

☞도서 출판의 붐

- 연재소설로 부를 일구는 소설가 등장 (찰스 디킨스, 발자크, 조르주 상드, 알렉산드르 뒤마)

- 출판 업자의 영향력 커짐

4. 미술 시장의 새로운 변화

- 아카데미가 미술품 시장을 통제하던 프랑스에 개인 갤러리가 등장해서 제도권 밖의 화가와 구매자를 연결함. 

- 개인 딜러들 부상: 구필 앤 비베르(Goupil & Vibert), 에르네스트 강베르, 장마리 뒤랑뤼엘

- 미술 안목이 부족한 신흥 부자들은 현대 작품에 투자. 혹은 애국심이나 밝은 투자 전망

☞ 예술 작품에 대한 금전적인 투자가 시작되던 순간.

5.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러시아와 스페인

- 드 퀴스틴 후작의 러시아 여행기 <1839년의 러시아> 러시아에 대한 유럽인의 태도를 형성 – 러시아에 대한 공포와 편견, 유럽의 자유와 문명에 위협이 되는 국가라는 인식 

- 러시아의 아시아적 ‘타자성’에 집중함으로써 ‘유럽인 다움’에 대해 각성하게 된 유럽인들. 

- 당시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이미지: 원시적, 비합리적, 나태, 부패, 독재 등- 유럽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 

- 러시아와 스페인을 야만의 땅으로 바라보던 당시 유럽인들. 

6. 이반 투르게네프 

- 폴린의 신봉자가 된 이반 투르게네프 


제2장 무대 위의 혁명

1. 그랜드 오페라 그리고 무대 위의 혁명

- 파리, 그랜드 오페라 발달(마이어베어)

- 저작권과 출판업의 발달이 가져온 작곡가들의 위상과 수입 변화 (로시니, 벨리니, 도니젯티)

2. 변화하는 음악 감상 문화

- 폴린과 클라라 슈만

- 19세기 음악 문화의 발달: 음악 축제, 실내악 콘서트 

-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판이한 공연 관람 태도, 점차 청중의 정숙이 요구됨. 

- 감상에 집중이 요구되는 콘서트홀의 구조(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하노버 스퀘어 룸 등)

“부르주아는 ‘천재’의 대표인 예술가를 높이 평가했고, 개인적 노력의 이상적 표현이라고 보았으며, 그들의 물질주의적 사회 내에서 예술가로부터 끊임없는 정신적 만족을 얻으려 했다.” (218p.)

3. 투르게네프와 폴린, 상드와 쇼팽 

- 폴린의 개런티에 대한 신념 vs 조르주 상드의 돈에 대한 ‘보헤미안’적인 태도 

- 천재지만 경제관념에는 어두웠던 쇼팽 

4. 1848년 2월 26일 프랑스 2월 혁명

- 5월 1일 프랑크푸르트 의회: 남성 선거권 부여 

- 유럽으로 퍼지는 혁명: 베네치아 공화국 선포, 밀라노 반란, 포즈난 봉기 등

- 1849년 4월 16일, 그 와중에 올려지는 마이어베어의 <예언자>, 13년 만의 귀환, 폴린의 절대적 도움

- <예언자>를 혐오한 바그너, 슈만의 비판

5. 쇼팽의 죽음

- 폴린이 노래한 쇼팽의 장례식


제3장 기계적 복제 시대의 예술

1. 샤를 구노의 등장

- 투르게네프의 질투와 고뇌

- 폴린을 위한 구노의 첫 오페라 <사포>(1851년 4월)의 실패.

- 박람회의 시대 

2. 검열의 시대 

- 체포된 투르게네프, 가택 연금에 처해지다.

- 러시아를 방문한 폴린 – 러시아 가곡을 서유럽에 알리다. 

- 두 사람의 비밀 만남 성사

3. 저작권을 둘러싼 작가/작곡가들의 투쟁

- 월터 스콧: 글로 큰돈을 번 유럽 최초의 소설가 

- 그 외 발자크 정도가 있었지만, 그 외는 대부분 다른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음. 

- 저작권법 발효로 작가들의 상황이 좋아짐. 해적판의 극성. 

- 영국과 프랑스의 저작권의 사상적 차이. 

- 19세기 전반, 작가들의 저작권 수호 투쟁, 저작권의 법적인 보호 

- 1850년대 인세 제도의 대두 

- 국제적인 저작권법 개념도 발달함. 1866년 베른 조약.

4. 번역 붐이 일다

- 투르게네프, 유럽에서 널리 읽히는 첫 번째 러시아 소설가가 되다. 

- 번역 분야를 지배한 언어, 프랑스어, 19세기 중엽부터는 영어와 독일어 번역도 풍성해짐 

- 번역서 붐의 결과: 유럽과 그 외 다른 세계에서 문학적 주제, 형식, 스타일, 사상 등이 점점 더 균일해짐. ‘유럽적’ 기준이 대두됨. 

5. 사진 기술의 발달

- 초상 사진 열풍 

- 사진 기술이 문학과 시각 예술에 미친 영향: 소설가들은 보다 시각적인 글을 씀. 화가들에게는 사진 같은 정밀성 요구됨. 

- 철도의 발달로 바르비종 화가들의 방문객이 늘어남

-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한 화가 쿠르베, 스스로의 힘으로 제작, 홍보, 판매하는 최초의 화가가 됨. 

6. 복제의 시대

- 석판화와 사진술: 예술 작품을 하나의 자본 형태로 변화시킴. 저작권자에게 장기적인 수입의 원천이 됨. 

- 판화의 폭발적인 수요. 

7. 크림 전쟁의 발발 (1853년 여름)

- 톨스토이를 만난 투르게네프 

- 폴린의 살롱-파리 예술계의 명사들이 방문하다  


제4장 이동하는 유럽인

1. 투르게네프의 방랑과 우울증, 폴린과의 염문설 

2. 철도를 이용한 투르게네프의 여행 

- 철도의 발달: 관광산업 활성화 

몇 달 심지어 몇 년을 여행할 수 있었던 과거의 엘리트들과는 대조적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신세대 관광객들은 그들의 여행을 몇 주의 여름휴가 기간에 집중한다.” (394-395p.)

- 공공 갤러리와 박물관의 황금시대

- 여행 책자의 인기 

- 미술관 안내서를 집필한 루이 비아르도 – 유럽 주요 아트 컬렉션을 재조직하는 데 큰 영향 

- 증기선과 철도의 발달: 독일 라인강, 스위스 등 새로운 여행지로 확장 

- 철도 덕분에 관광도시로 거듭난 온천 도시(비스바덴, 바덴바덴)와 해변 도시(트루빌, 도빌, 칸, 니스)

3. 장벽을 무너뜨리는 철도?

“여행은 편견, 고집, 편협함을 없애준다”(마크 트웨인)

- 새롭게 생겨나는 ‘유럽식’ 감수성 

- 국제주의적 세계관: 해외여행, 외국어 학습, 해외 문화에 대한 개방성

4. 폴린의 전성기 

- 1859년 글룩의 <오르페>로 성공적인 파리 귀환, 베를리오즈가 지휘

- 베를리오즈 vs 오펜바흐 

5. 폴린의 남자들: 베를리오즈 & 투르게네프

- 1860년 폴린의 쇠퇴를 감지한 베를리오즈 

- 폴린과 더 깊은 사이가 된 투르게네프 


제5장 놀이하는 유럽

1. 바덴바덴으로 옮긴 비아르도 가족 

- 진지한 독일 음악 문화에 만족한 비아르도 부부

- 나폴레옹 3세와의 갈등으로 파리에서 떠남

- 유럽의 여름 수도 ‘바덴바덴’에서의 평온한 삶을 누리는 세 사람 

- 클라라 슈만의 열등감과 질투

2. 휴양 산업의 발전

- 온천 도시의 사운드 트랙: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대중음악 산업의 출현: 왈츠, 폴카 같은 춤곡, 카페 콘서트의 성행 

3. 바덴에서 작곡에 몰두한 폴린 

-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글로벌 연예 사업의 시대 시작

4. 파리 대박람회

- 오스만의 파리 재개발 계획

파리는 소비의 도시, 거대한 작업장, 야망의 경기장, 쾌락을 위한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 1860년대 ‘쾌락의 중심지’라는 이미지의 도시 파리 

- 1866년 프로이센의 오스트리아 군사적 제압 – 유럽 세력 균형이 깨짐 

5. 작곡가로서 폴린

- 19세기에 여성 작곡가로서의 삶: 파니 멘델스존, 클라라 슈만, 루이즈 파랑, 루이즈 베르탱

6. 투르게네프와 플로베르 

- 점점 권위를 인정받는 작가 투르게네프 

- 러시아 5강 작곡가(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발라키레프, 퀴)을 만난 투르게네프 

- 1860년대 대두된 음악의 민족주의 현상: 체코의 스메타나, 헝가리의 리스트

7. 도스토옙스키와 도박

- 도스토옙스키와 투르게네프의 불화 

- “유럽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라는 주장 때문에 러시아에서 공격받는 투르게네프  

8. 칼스루에

- 1868년 칼스루에로 이사한 비아르도 가족 

- 1861년 3월 <탄호이저> 파리 초연 대실패 때 바그너의 광팬으로 태도 전환한 폴린 

- 이후 바그너는 파리 무대를 포기하고 독일 문화를 프랑스나 다른 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높은 이상을 가짐

- 마이어베어의 죽음: 그가 한평생 실천하고 구현했던 유럽 문화의 국제주의적 사상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의미. 

- 바그너의 인종 차별적 태도에 폴린은 분개. 그의 예술은 좋지만 그의 정치적 신념은 혐오하고, 바그너 인간 자체는 더 싫어함. 

9. 비아르도 가족의 위기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발발(1870): 독일에 살고 있는 비아르도 가족에게 덮친 적대감과 위협 

- 오펜바흐: 프랑스와 독일 양쪽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공격 받음. 스페인으로 도피. 

- 비아르도 가족: 영국으로 도피 


제6장 음악이 없는 땅

1. 루이를 간호하다가 함께 탈출한 투르게네프 

- 런던에서 궁핍한 생활을 견뎌야 했던 비아르도 부부, 생상과 구노도 런던으로 피난 옴.

- 유럽에서 건너온 정치적 망명자들의 피신처였던 영국: 경제적 호황 맞음 

- 영국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 한 비아르도 부부

2. 19세기 중후반의 영국

-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영국인들은 독일에 대한 태도가 적대적으로 바뀜. 

- 영국이 유럽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우월감.

3. 영국 작가들과 교류하는 투르게네프 

- 해외 문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만, 유럽의 음악은 사랑한 영국. 

- 런던의 풍부한 오페라 수요를 떠받치는 탄탄한 중산층 

영국인은 상업적 실용성과 상식, 친절함, 유머 등 여러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으나, 딱 한 가지 음악성이 결핍되어 있다” 

- 미술 시장도 마찬가지

4. 파리 함락(1871) 

- 종전 후 바덴으로 돌아간 비아르도 가족, 파리 귀환 결정 


제7장 국경 없는 문화

1. 파리로 돌아온 비아르도 가족

-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비아르도 부부, 그렇지만 육체적으로 쇠약해짐

- 폴린의 살롱 재개: 파리 명사들의 참석: 인맥을 형성하고 1870년대 이후 파리 문화계를 지배함.

- 그녀가 이끌어준 작곡가들: 생상, 포레, 마스네, 비제 등등

2. 러시아 음악을 유럽에 소개한 투르게네프와 폴린 

- 전쟁 이후 독일 견제를 위해 러시아와 가까워진 프랑스의 정세 

- 러시아 화가들의 파리 홍보에도 도움을 준 투르게네프 

3. 미술 컬렉터, 투르게네프 

- 프랑스 풍경화에 집중된 컬렉션, 인상파는 수집하지 않음 

- 1873년 부지발의 여름 별장을 함께 구입한 투르게네프와 비아르도 부부 

- 바르비종 화가 vs 인상파 화가 

- 1877년 제3차 인상파 전시회 이후 비평가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 

- 1870년대에 이미 에밀 졸라는 인상파 화가들을 옹호함 

- 뒤랑뤼엘: 1870년 초에 인상파 화가들을 후원한 유일한 딜러. 

4. 플로베르 학파

-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졸라, 르낭, 공쿠르 형제, 알퐁스 도데, 기 드 모파상 

-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8)를 유럽 독자에게 알린 투르게네프, 하지만 그 이전 1861년에 두 사람은 불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의 걸작을 인정함.

5. 작가 투르게네프

- 1870년대 유럽에서 널리 읽힌 투르게네프의 작품 

- 번역서 출간의 확대: 민족 문화가 다양해지는 대신, ‘모든 유럽인이 같은 책을 읽음으로써’ 문학적 형식이 점점 균일화 혹은 표준화됨. 

6. 파리 대박람회(1878)

- 전쟁 이후 프랑스의 부활을 알리는 상징 

- 제국의 위신을 높여주었던 1867년의 박람회와 달리 공화주의의 가치를 세상에 높이 드러내는 계기로 인식됨. (자유의 여신상 미국에 기증)

- 베른 협약: 19세기에 제정된 국제법 분야의 가장 뛰어난 업적. 국제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나온 법률. 덕분에 음악, 문학, 예술의 제작자는 사업 범위를 국제적으로 확대할 수 있고, 또 예술가들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제8장 죽음과 카논

1. 투르게네프에 대한 태도가 바뀐 러시아 지식인들

- 독재 정치에 대한 항의를 상징하게 된 투르게네프, 고향에서 환대를 받다. 

- 투르게네프 삶에 러시아의 비중이 커지다.

2. 연 이은 죽음

- 초라한 플로베르의 죽음(1880)

- 도스토옙스키의 죽음(1881)

- 빅토르 위고의 죽음(1885), 작가 중 최초로 팡테옹에 묻힘 

- 19세기 중엽부터 공공단체나 국가가 예술계 인사를 기리기 됨. 

- 유럽 전역에서 예술가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공식행사가 많이 증가, 거리 명명, 기념비 세워짐. 

- 이런 기념행사가 예술 마케팅의 일부가 됨. 정부의 선전활동과도 맞아떨어짐. (베르디, 실러 등등)

3. 카논

- 음악, 오페라, 발레, 연극, 미술, 문학 분야의 ‘클래식’으로 인정받은 안정된 레퍼토리

- 콘서트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시작, 

- 철도는 관중을 수송함으로써 새로운 시장 개척에 크게 기여

- 출판업은 고전 카논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 

- 성공이 보장된 레퍼토리를 반복적으로 공연해서 레퍼토리로 정착화. 

반드시 등장하는 트로바토레, 늘 환영받은 루크레치아, 보편적으로 인기가 높은 마르타, 장중한 노르마, 웅장한 위그노, 비할 바 없는 돈 조반니”

- 저작권의 발달: 작곡가들은 과거 작품당 보수를 받았을 때만큼 일할 필요가 없음. 

- 카논의 지위가 부여된 오페라: <돈 조반니>, <세빌랴의 이발사>, <악마 로베르>,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노르마>,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파우스트> 

- 전 세계에서 건설되는 오페라 하우스

4. 미술, 문학 분야의 카논

- 루이 비아르도가 기여 

-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작품의 카논을 만들고 싶어 함. 

- 공공 도서관 운동: 카논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 담당 

5. 루이와 투르게네프의 죽음(1883)

- 투르게네프의 건강 악화 

- 들것에 실려 나온 투르게네프와 반신마비로 휠체어에 앉은 루이의 최후의 작별 인사 

- 1주일 후 루이 사망, 19세기의 ‘르네상스 맨’

- 몇 달 후 투르게네프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폴린 


맺음말

-이후 27년을 더 산 폴린

-작곡을 계속하고 제자를 키워냈으며 살롱 전통을 이어감 

-국제주의 대 민족주의 


생각할 거리

최근 많은 학자와 언론들은 ‘글로벌리즘(세계화)’가 끝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계화를 가능하게 했던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트럼프라는 인물을 선택했고, 그는 2018년 유엔총회에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애국주의를 택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죠. 나라마다 강경 우익 포퓰리즘의 세력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주의를 내세운 마리 르펜이 상당히 의미 있는 득표수를 기록했고요. 


‘유러피언’을 쓴 영국 학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독일 국적을 회복하고, 집필을 서두를 정도로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럽 문명의 통합을 꿈꾸는 그의 소망은 과연 현실화될까요? 앞으로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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