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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ug 01. 2019

길 위의 단상

독일 시골뜨기의 한국 교통문화 적응기

가만히 있어도 몸에서 육수가 뚝뚝 떨어지는 계절이 드디어 도래했다. 작년에 숨이 턱 막히는 한국의 더위를 경험한 나는, 올해 이미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겁을 잔뜩 먹었더랬다. 하지만 7월 중순에 한국에 도착했더니 다행히 장마 덕분에 그렇게 맹렬하지는 않았다. 뭐 습한 거야 익숙하지는 않아도 어딜 가나 에어컨이 잘 돼있으니 참을만하다. 


감사하게도 고국에서 매년 여름 연주 기회가 생겨서, 4년째 여름마다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오페라를 하게 돼서 연습 장소 주변에 원룸을 임대하고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서울의 지하철을 아낌없이 이용하였다. 그리고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매년 급변하는 서울이 내 눈에는 무척 신기방기하여 뚜벅이 생활을 즐겼다.

 

그런데 올해는 오페라가 아니라 콘서트로 고국을 방문하게 돼서 긴 연습기간이 없었고, 고로 굳이 서울에 거처를 마련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모친이 계시는 화성시에 머물며 용무가 있을 때 서울로 나오리라 계획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이것이 얼마나 큰 판단 착오였는지 혹독하게 깨닫게 됐다. 


모친의 집은 화성시 안에서도 교통의 사각지대인 산 중턱의 외톨이 아파트이다. 그런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볼 일을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렌터카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한국 물정에 어둡기에 하루에 2만 원이 저렴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한국에서 오랜만에 운전한다는 것이 꽤나 뿌듯했었다. 


아.. 그런데 매일 운전해서 다니기에 화성시는 정말 서울에서 멀었다. 서울 웬만한 곳은 보통 45 킬로미터 내외였다. 서울에서 약속을 두세 개 잡고 다니다 보면 하루에 운전을 적어도 100 킬로미터 이상 운전을 하였다. 독일에서 100킬로 이상 운전한 날은 큰 마음먹고 먼 곳에 다녀오는 일인 셈인데, 그렇게 운전하고 나면 "어휴.. 나 오늘 100킬로 넘게 운전했어... 아이고.."하고 엄살을 부리곤 했다. 그런 내가 매일같이 그 강도 높은 운전을 했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의 가스비(그나마 다행히 LPG 차다)와 톨게이트비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경험하는 한국의 운전 문화와 도로 상황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아직도 적응 중이다.) 하늘의 별따기 같은 서울에서 주차 자리 찾기와 주차비, 발렛비 등등 별도로 하더라도.... 하루에 차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균 3시간을 넘는 것 같았다. 

보통은 늘 오른쪽 도로 상황

이웃 주민이 내 사정을 듣고 귀띔을 해줬다. 어느 장소에서 광역버스 xxxx번을 타면 사당역까지 20분 만에 간다고. 오호! 당장 도전! 그리고 오늘 그 장소에서 버스를 잘 잡아 탔다. 그런데, 맙소사! 버스 가 만석이다! 여기서부터 서울까지 서서 가야 한다고? 100킬로의 속도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에서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채 30분 이상은 서서 간다. (20분이라며요....ㅠ.ㅠ 그러나 저러나 이거 불법 아닌가요?) 그래 이 기회에 내 이두박근이나 잘 단련해보자. 


이쯤 되자, 이럴 거면 서울에서 그럴싸한 에어비앤비를 빌리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번에는 이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는데, 그다음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런데 과연 다음번이 있을까...?' 어디선가 불러주셔야 고국도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건데... 누가 감히 미래의 일을 장담할 수 있을 것이며, 특히나 변동이 잦은 예술계에서는 그 어디에도 100퍼센트 확실한 것은 없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들은 성악가들을 캐스팅할 때 현재의 모습을 보고, 2년 뒤, 3년 뒤 공연을 약속하지만, 미래는 늘 변수가 있고, 또 그 변수 덕에 새로운 세대가 진입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아무튼 혹시라도 나에게 다음번이 허락된다면 그때는 화성의 모친 댁에 머물지, 서울에 숙소를 구할지는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이 될 것이다. 불러만 주세요. 3시간 이상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도, 30분 이상 서서 고속도로 위를 달리게 되더라도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어딜 가나 친절하고 맛있는 것이 넘치는 고국이 너무 좋습니다!

독일로 돌아가면 몹시 그리울 듯한...서울의 저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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