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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Sep 17. 2019

어느 미스터리 한 동반자

에어비앤비를 통해 만난 그들

개인적인 일이 계기가 돼서 에어비앤비를 잠깐 운영해본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라는 교통의 요지에 거주하는 덕에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성황(?)을 이뤘는데, 다른 사정으로 인해 그만둬야 해서 참 아쉬웠다. 영어를 연습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로 아침을 제공하는 옵션을 만들었고, 그 덕에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손님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해보고 싶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손님과의 에피소드를 여기 소개한다.

보통 내 숙소에 예약을 할 때는 호스트를 위해 몇 가지 정보를 미리 알려달라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정중히 요청받는다. 가령 일행이 누구인지 어떤 목적으로 머무는지, 체크인을 몇 시에 원하는지, 혹은 아침 식사 때 특별히 원하는 사항이 있는지 등등이다. (이는 에어비앤비가 권고하는 사항이다.) 그런 정보를 담은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게스트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예약한 뮌헨에 사는 독일인 F는 웬일인지 그런 정보를 전혀 주지 않아서 사실 살짝 걱정했다. 2명 숙박이라고 하는데, 동반자에 대해 정보는 물론이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서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고, 에어비앤비 상에서 F 본인에 대한 프로필과 평판은 구체적이면서도 호의적이기에 일단 마음은 내려놨다.


드디어 미스터리 한 그 2명이 도착했고, 현관에서 그들을 맞았다. 보통 독일인들은 첫인사로 악수를 교환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런데 그 미스터리 한 동반자는 내가 악수를 청하며 먼저 이름을 밝혔는데도, 인사만 할 뿐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외모도 아랍 출신의 외국인이었다. 독일에서 아랍 계통의 사람들에게 갖는 이미지는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다. 특히 메르켈 총리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후 인종간, 종교 간 격차는 독일 사회에서 그리고 정치계에서 끊임없는 이슈가 됐다.


이는 어느 사회나 그 사회에서 비주류를 형성하는 이들에게 가지는 흔한 선입견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디어를 통해 확대되고 편견으로 굳어지게 된다. 나 역시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일은 2차 대전 때 저지른 원죄 때문에 인종차별에 관해서는 유럽 다른 나라들보다 엄격한 자세를 유지해 온 편이다. 하지만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로 일부 난민들에 의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매스컴에 보도가 되고, 독일인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면서 난민에 대한 정서는 현재 절대로 호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극우적 정당인 AFD가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도 좋은 조짐이 아니다. 반세기 동안 금기시되고 억눌려왔던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최근 수년 동안 콘크리트 사이에 금이 간 틈새로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일들은 나도 이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깊이 고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저 수동적으로 미디어가 주는 정보를 흘려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조금은 찜찜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F와 그 동반자는 친절하고 또 예의 바른 손님이었다. 드디어 다음 날 아침식사 때 그들과 대화하면서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그 미스터리 한 동반자가 4년 전 시리아에서 탈출한 난민 출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F와 동반자는 동성 커플이었다. 그제야 왜 F가 자신의 숙박정보를 상세히 밝히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F는 독일인이기에 사람들이 난민에 대해 혹은 동성커플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이 자신에게 행여나 불이익이 될만한 정보 제공은 사전에 피한 것이다.


시리아 출신의 동반자는 이제 S라고 칭하자. 이제 겨우 독일 온 지 4년밖에 안됐다는 S의 독일어는 12년 차인 나보다 훨씬 유창했고 그는 영어도 가능했다. 혹시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까 봐 그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의 언어 능력을 미루어볼 때 시리아에서도 교육을 잘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만약 S와 내가 단 둘이 있었다면 그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그가 난민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독일의 정책을 비판할 때 F가 살짝 불편해하는 걸 느꼈다.


S의 말에 따르면 그의 여동생도 현재 난민 임시거처에 있는데, 그들이 독일 사회에 융화되는 것은 언어적인 문제로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임시 거처에 가두어두면 어떻게 독일어가 늘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나도 S에게 "너는 내가 처음으로 대화해본 난민이다" 하니까, F 조차도 S를 만나기 전에는 난민을 개인적으로 접촉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독일에 온 후로 한국인 커뮤니티를 떠난 적이 없었던(혹은 떠날 수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나 공감하는 말이다. 독일이 살기 좋은 나라지만 난 여기서 영원히 외국인이고 이방인이다. 내가 그들의 음악을 전공했고 심지어는 직업으로 갖고 있지만 그 주류 사회에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진입장벽 1호는 바로 언어다. 그래서 내가 언어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늦은 나이에 배우는 외국어 발전 속도는 내 열정만큼 따라주지 않는다ㅜ.ㅜ)


한국인이라는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독일에 잘 융화하기. 시리아 난민 출신인 S가 남긴 숙제다. 그것은 바로 언어다. 구글 번역기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독일어와 한국어를 동시통역하는 번역기가 나오는 일은 앞으로도 한참 걸릴 것 같다. 그럼 목마른 내가 스스로 우물을 파야지, 어쩌겠나.


그리고 한 가지 더. 난민에 대해 함부로 편견 갖지 않기. 프랑크푸르트에서 어느 여자아이가 난민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더라, 난민이라서 일부러 언론에서는 쉬쉬한다더라 이런 루머를 불과 어제도 지인과 대화했던 나다. S를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난민은 그냥 한 그룹의 막연한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이미지 속에는 다소 부정적인 개념도 있었다. 나는 그 이미지의 실체를 알아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사실 외면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부터 당장 무언가 적극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앞으로는 그들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함부로 평가하지는 않으려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 같다.


S와 그의 여동생이 앞으로 독일 땅에서 잘 뿌리내려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온 이 땅에서 그 인생의 2막이 부디 좋은 기회로 가득 차길, 그리고 그 기회들이 독일과 시리아 양국에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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