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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18. 2018

활력 넘치는 90세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 인터뷰

독일 클래식 잡지 크레쉔도(Crescendo) 4-5월 호에서 올해 90세를 맞은 전설의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를 인터뷰했다.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어서 번역해보았다.


인터뷰어: 옌스 라우르손(Jens Laurson)   

2015년의 크리스타 루드비히. 사진출처-위키페디아


크레쉔도: 친애하는 루드비히 여사님, 당신의 90번째 생일에 대한 모든 관심이 당신에게 괜찮으신가요, 아니면 좀 거슬리시나요?   

크리스타 루드비히: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90살이나 됐는데도, 사람들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내가 아직 죽거나, 은둔하고 있지 않다는 걸 기쁘게 생각해요. 하지만 매일 인터뷰하는 것은 좀 번거롭네요. 옷도 잘 입어야 하고, 머리도 해야 하고, 나를 좀 예쁘게 꾸며야 하니까요.  이런 건 좀 귀찮죠. 그렇지만 좋아요. 당신이 여기 와 주셔서 기뻐요. 물론 여기저기 어슬렁 거릴 때도 있죠. 그럴 땐 옷도 제대로 입지 않아요. 그저 가운이나 걸치죠. 그건 제게 엄청난 기쁨을 준답니다. 예전에 내가 활동할 때는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게으름을 부릴 여유가 있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가운을 입고 하루 종일 다녀도 되죠.  이건 좀 놀라운 일이랍니다.

 

당신은 50년을 무대에 섰죠. 마냥 쉽지만은 않은 무언가가....

캐리어는 그저 "마냥 쉽지만은 않은" 정도가 아니죠. 그건 진짜로 수월하지 않아요. 그걸 위해 사람들은 수많은 걸 포기하죠. 눈가리개를 하고 질주하는 말처럼 세상을 달립니다. 감기에 걸려도 안되고, 콧물을 훌쩍거리는 것조차 피해야 하죠. 그것은 머리 속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죠. 특히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 더하죠.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버니까요. 거기에는 끝없는 두려움이 있고, 항상 컨디션은 최상이어야 하죠. 3년 뒤 4월 5일에 내 목소리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압니까?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상 그 날에는 좋은 컨디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죠.  


지금은 좀 내려놓으신 것을 즐기고 계신가요?

나는 내 직업을 전혀 통탄해하지 않아요. 그건 정말 멋진 일이었죠.  내가 1994년 12월 14일에 빈국립오페라단에서 마지막으로 노래하고 나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의 클리탬네스트라 역이었다. 편집자주) 나는 그 다음날 정말 추웠고 눈발까지 날렸지만, 목을 칭칭 둘러싸지 않고 다 오픈한 채 캐르트너 거리를 돌아다녔어요. 꼭 한 번은 여유롭게 감기 걸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코 훌쩍거림조차 성공하지 못했네요.  


지난 50년 동안 성악은 스타일이라던지, 분위기  같은 것들이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당신이 즐겨 듣는 것이나 좋게 생각하는 것 등, 당신의 생각 중에서 지난 세월 동안 변화한 것이 있나요?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는 항상 아름다운 소리인 거죠. 단지 제가 느끼는 것은, 젊은 가수들을 가끔 레슨 할 때 보면, 그들이 모두 같은 형태로 노래한다는 거예요.  나는 많은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들을 –대부분 저는 여자들을 가르쳐요. 남자는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에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구분하지 못하겠어요. 예전에는 그 두 소리를 잘 구분했죠. 3개의 음으로 그걸 구분할 수 있었죠. 요즘에는 더 이상 그렇지 되지 않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오늘날 그들은 테크닉적으로도 대부분 아주 훌륭해요. 최소한 흠 없이 노래하죠. 그리고 그들은 계속 이런 말을 듣죠. „넌 이렇게 하면 안 돼, 저렇게 하는 것도 안돼. “  예전에는 목소리에서 뭔가 결점이 들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지다고 여겼어요.  오늘날에는 모두 같은 수준으로 잘 불러야 하죠. 캐릭터가 어떻든 간에요.  


그 점이 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 않으시군요? 만약 예를 들어 오늘날의 사람들이 에리카 쾨트를 듣는다면, 요새 익숙해져 있는 소리랑은 많이 다른 걸 느낄 것 같네요. 

에리카 쾨트의 소리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기억나요. 내가 18세였을 때, 그녀는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었죠. (에리카 쾨트는 1925년 생이다. 편집자 주)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국에서 열린 콩쿠르에 참가했었죠. 아침 9시에 모두 소집됐었어요. 짬이 날 때마다 저는 뜨개질을 했는데, 왜냐하면 뜨개질을 할 때면 내 초조함이 손가락을 통해 사라졌거든요. 그리고 에리카 쾨트는 말했죠. „크리스타, 넌 그 끝없는 뜨개질로 날 초조하게 만드는구나. “ 물론 나는 뜨개질을 계속했죠. 그리고 저녁 6시에야 가수들에게 결과가 나왔어요. 그동안 나는 정말 오래 뜨개질을 했고요. 그리고 우리 둘 다 1등을 했답니다!


그리고 당신은 스웨터까지 생겼겠네요.

하하하! 네, 거의요.

왕년의 크리스타 루드비히. 왼쪽에는 마리아 칼라스, 오른쪽에는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 사진 출처-위키페디아

당신은 가수를 생각한다면, 바로 오페라 가수를 떠올리나요?

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가곡 전문 가수가 없어요. 가곡을 부르는 가수는 많지만, 오랫동안 진정한 가곡 가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이게 차이점이죠. 고백하자면 나도 가곡 리사이틀에 거의 가지 않아요. 하지만 오페라 가수가 가곡 리사이틀을 갖는 걸 보면, 뭔가 뒤바뀌었다고 생각은 하죠.  


가끔은 그 환경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가곡 연주회를 가면, 성공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근 4천 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겨울나그네‘를 불렀죠. 어쨌든, 그건 좋았어요.


하지만 메트처럼 축구장 크기의 거대한 오페라하우스에서 가곡 리사이틀을 한다면 관객과의 교감이 손상되지 않을까요?

되려 작은 홀에서 이루어지는 교감이 더 두려움을 낳죠. 4천 명 앞에서 부르는 것보다 20명이나 10명 앞에서 부르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4천 명은 그저 익명의 거대한 대중이죠. 하지만 소규모 연주에서는, 게다가 혹시라도 지인들 앞이고, 매우 가까이 앉아 있다면, 거기서 끔찍한 두려움이 생기게 되죠. 애브리 피셔홀에서 열린 가곡 리사이틀이 생각나네요. 나의 친애하는 동료 군둘라 야노비츠가 거기서 리사이틀을 열었죠. 내가 기억하기로는 브리기트 닐슨이 있었고 내게 말하길 „크리스타, 만약에 너 저기서 리사이틀하게 되면, 저기서는 크게 노래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안 돼. 가장 작은 피아노도 맨 뒤에서 들려. „ 실제로 나는 메트로폴리탄에서 피아니시모를 노래할 수 있었고, 그건 잘 들렸어요.


당신은 음악을 조금만 듣는다고 언급했었죠. 음악회를 간다던지, 음반을 듣는 것도 말이에요. 왜죠?

어린 시절부터 저는 오직 음악만을 듣고 살았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오직 음악만을요. 만약 노래하지 않을 때는, 뭔가를 배워야 하거나, 아니면 목을 풀기 위해 발성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음악을 충분히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 적막함을 사랑한답니다. 나는 새들이 „띨리리“ 우는 것을 듣는 걸 좋아해요. 아니면 새들이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도 좋고요. 이 고요함은 참 훌륭하죠.  난 고요함을 듣고 있어요!

당신은 하인리히 뵐의 훌륭한 짧은 이야기 „무르케 박사의 침묵 수집“을 아시나요? 그는 라디오 테이프 중에서 소리가 안나는 부분만을 잘라서 그걸 집에서 틀어놔요. 훌륭하죠! 보세요, 저도 그렇답니다. 저도 그 부분만을 틀어놓고 있어요. 하지만 나도 때때로 음악을 들어요. 최근에 여기 빈의 필하모니커에서 브루크너의 9번을 들었죠. 그것은 나 자신이 음악으로 채워진 환상적인 시간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일주일 동안 그 음악이 내 안에 있었죠.  

사람은 노력해야 해요. 예를 들면 가수는 텍스트와 음악을 그것이 재생될 수  있을 때까지 일단 스스로에게 이해시켜야 해요. 그것은 오랜 과정이고 또 끝없는 배움이지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텍스트, 음악 그리고 해석에 대한 시각이 변하게 돼요. 그것은 참 아름답지요. 그것은 본인이 얼마나 성숙하냐에 달려있지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성숙함이 소리보다 늦게 오기도 해요. 그리고 그것은 가수에게는 큰 불행이죠. 성대가 더 이상 컨트롤되지 않죠.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은 마치 거세와도 같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지만, 더 이상 할 수 없죠. 그것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죠!



https://crescendo.de/christa-ludwig-mit-90-jahren-habe-ich-das-recht-faul-zu-sein-1000028008/

위의 링크에 가면 크리스타 루드비히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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