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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Oct 15. 2019

오페라 덕후의 첫 뮤지컬 관람기

본(Bonn)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 부럽다!!!"


독일에서 처음 뮤지컬을 보고 든 생각이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과 급기야는 기립박수까지 이끌어내는 걸 보니 이웃 장르인 오페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러웠다.


(Bonn)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 사실 독일에서 뮤지컬 관람은 처음이다. 이 분야는 그간 잊고 살았다. 지난봄 런던 방문 때 뮤지컬의 본고장 웨스트엔드에서 <위키드>를 관람하면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고백하자면, 사실 뮤지컬에 대한 관심은 처음이 아니다.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클래식한 환경에서 자라서 예고를 졸업했으려니 하지만, 사실 나는 친가 외가를 통틀어 유일하게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며, 오히려 팝 음악과 재즈에 흠뻑 빠진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교에서 성악과를 다녔지만 기량을 연마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너무 버거워서 훨씬 더 자유로워 보이는 대중음악계와 뮤지컬계를 동경했다. 급기야 휴학을 하고 뮤지컬 학원에 등록해서 하루 종일 춤을 배우고 뮤지컬 레퍼토리를 연습한 적도 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뮤지컬이 붐이 막 시작하던 시절이라 음반도 없어서 외국 여행 가는 친구에게 뮤지컬 OST 시디를 부탁하곤 했다.


그럴 정도로 빠져 있었는데, 개인적인 계기로 다시 성악계(!)로 돌아와서는 지금까지 오페라 덕후로써의 길을 잘 걷고 있는 걸 보면 인생은 참 재미있다. 뮤지컬을 향한 잠깐의 외도(!)가 되려 내가 성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하하하 갑자기 그 시절 내 절망적인 사지로 탭댄스를 배우던 어설픔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내 DNA에 춤은 없는 걸로...)


그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작품 중에 하나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이번에 처음으로 무대에서 관람했다. 이 작품은 오페라 팬들에게도 특별하다. 바로 작곡가가 레너드 번스타인이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번스타인은 음악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다. 그는 정통 클래식에서 뮤지컬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작곡했고, 바로크에서 현대에 걸친 작품들을 지휘했고 또 음반으로 남겼다. 피아노 연주가로도 수준급이었고, 말솜씨도 뛰어나 방송을 이용해 클래식 층의 확장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재능 몰빵'이란 이런 건가 보다.


내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의 음반에 수록된 뮤지컬 넘버들 때문이었다. 성악 공부를 막 시작한 고등학생 때, 늦은 출발을 메꿔보려는 듯 성악가 음반을 열심히 수집했는데, 이 음반도 그중에 하나였다. 이 뮤지컬 1957년 초연됐는데, 1985년에 번스타인이 당대 최고 스타 성악가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와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 그리고 메조소프라노 타티아나 트로야노스, 마릴린 혼 등을 데리고 직접 지휘해서 음반을 발매했다. (이 대가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만으로 대박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들어도 번스타인의 음악은 그저 너무 좋았다. 초연에서 안무가가 연출을 맡았던 만큼, 앙상블이 펼치는 격동적인 춤도 그 자체로 대단했다.


사람들은 뮤지컬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음악은 흥겹고 볼거리는 넘친다. 마이크 덕분에 대사 전달은 명확하고 덕분에 더욱 현실감 있다. 마이크의 사용은 뮤지컬과 오페라를 구분 짓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이크 덕분에 무대 위에서 연기자들은 많은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 무대에서 반드시 관객 쪽을 향해 노래하지 않아도 되고, 격렬한 율동도 가능해졌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대화 톤으로 무대에서 말해도 관객들은 잘 알아들을 수 있다.


오페라는 감각적으로 다른 자극을 제공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좋은 가수가 온몸을 쓰고 극장 전체를 자신의 공명판으로 사용해서 전달되는 그 울림은 청각뿐만 아니라 살갗인 촉각으로 느껴진다. 그 짜릿함을 느낀 관객은 그 가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악가가 마이크를 사용해서 자주 노래하다 보면, 그 감각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영리하게 대처해야 한다.


말 나온 김에, 잠깐 옆길로 새자면, 부산 오페라 하우스 건설 문제로 설왕설래할 때, 차라리 장사가 잘되는 뮤지컬 전용극장 이야기도 나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오페라 하우스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뮤지컬 전용 극장에서 오페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관계자들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뮤지컬 전용극장인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도 관람했고, 앞서 언급했듯이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전용극장도 가봤다. 그런 곳들은 마이크를 사용한 음향장치에 최적화된 공연장이다.


여기 독일 오페라 하우스들도 시즌이 뮤지컬 작품들을 한 작품씩 껴서 공연하고, 함부르크나 쾰른에는 뮤지컬 전용 극장도 있다. 이번에 관람한 본에서는 객석을 가득 채운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층이 인상적이었다. 오페라하우스에 오는 정답처럼 단정하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들의 모습도 신기했다. 런던에서는 뮤지컬 전용 극장이라 그런지, 객석에서 팝콘이랑 맥주도 팔았지만, 역시 본은 오페라 하우스라 그런지 그 정도로 캐주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멋진 군무 후에 터지는 환호성은 오페라 공연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주인공 토니는 연기도 외모도 출중했고 주인공에 걸맞은 좋은 음색을 가졌다. 가슴에 힘 좀 빼고 노래하면 더 좋은 가수가 될 것 같았다. 마리아 역의 가수는 본 오페라극장의 솔리스트인데, 성악 발성과 뮤지컬 발성 사이에서 무난하게 외줄 타기를 해냈다. 마리아 역은 고음도 많아서 성악가들이 많이 맡는다고 한다.

왼쪽이 아니타, 오른쪽이 마리아. 아니타 언니 뿌염의 시급함

이 날 내가 반한 사람은 바로 아니타 역의 가수였다. 아니타 역이 이렇게 카리스마 넘치고 멋진 역이었나? 군무에서도 그녀는 가장 빛났고, 노래도 왕년의 비욘세를 보는 것처럼 거침없었다. 연기의 스펙트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 내가 뮤지컬의 저런 면에 홀딱 빠져서 그쪽으로 외도를 했었지 싶었다.


공연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뮤지컬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일거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뮤지컬을 보면서도 계속 오페라를 고민하는 오페라 덕후의 첫 뮤지컬 감상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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