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문트, 오페라 <나비부인>
이상하다.....
성악가의 소리가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장막이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있는 것만 같다.
가수의 문제는 아니다. 초초상 역의 소프라노 손지혜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량이 풍부하고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가수다. 내 지인은 그녀가 출연했던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쥴리엣>을 보고 3층에 앉았는데도 자기 바로 앞에서 노래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핑커톤 역의 이정환도 불과 2달 전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를 부른 것을 직접 들었다. 성량이 우렁차고 거침없는 고음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샤플레스 역을 맡았던 가수가 아픈 바람에 뉘른베르크에서 긴급 투입된 바리톤 이상민도 실제로 듣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간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 터다. 스즈키 역의 김효나도 이미 지난 시즌에 <아이다>의 그 어려운 암네리스 역으로 독일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좋은 가수들인데.... 도대체 왜? 소리가 빠지지 않는 거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다른 극장에서 들었던 <나비부인>과 음향이 다른 거지?
가만.... 도르트문트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건 이번이 4번째다. 그런데 이번처럼 볼륨에 의문이 든 건 처음이다. 가수들의 원래 기량을 모르거나 이 오페라를 잘 모르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다. 하지만 <나비부인>은 내가 잘 알고, 또 사랑하는 작품이다. 게다가 지난 시즌 막판인 6, 7월에는 이른바 <나비부인> 투어라 이름 붙이고는 뒤셀도르프, 카셀, 호프 이 세 도시에서 관람할 정도였다. 즉, 비교할 데이터는 충분했다.
이번 공연은 게다가 주역 출연진 4명이 모두 한국인으로 구성된, 어쩌면 역사적인 공연이다. 사실 그래서 더 많은 기대를 안고 도르트문트에 왔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밤"이 될 뻔했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 볼륨이 무자비하게 큰 걸까? 내 기준에는 아니다. 물론 2막 마지막 부분에 합창단의 허밍과 함께 초초상이 핑커톤을 밤새 기다리는 장면(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좀 더 볼륨이 작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 부분이 피아니시모로 애달프게 들릴수록 내 마음이 더 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개취니까 뭐... 아무튼 푸치니라면 이 정도 오케스트라 볼륨은 특별히 더 큰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지?
내 좌석은 1층 파켓(Parkett) 중앙이었다. 소위 가장 비싼 자리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비싼 자리가 좋은 음향을 보장하는 것은 결. 단. 코. 아니다. 극장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일단 나는 꼭대기층 앞 중앙 좌석을 선호한다. 오케스트라와 성악의 울림이 천장을 타고 반사돼서 가장 아름답게 들리기 때문이다. 또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더불어 자막까지도 보기가 용이하다. 나에게 꼭대기층 중앙은 가성비가 최고다. (대신 예약을 서둘러야 하지만...)
1층에 앉으면 무대가 가까워서 좋지만, 자막이 무대 위 중앙에 설치된 극장이라면, 자막 읽으랴, 무대 보랴, 연신 고개를 위아래로 저어야 한다. 1층에서 듣는 성악가의 소리는 앰프 없이 노래하는 것 같은 경우가 있다. 1층에서 들으면 별로인데, 3층 가서 들으면 훨씬 좋은 경우도 많다. 비싼 돈 주고 좋은 좌석 샀는데, 음향적인 충족감은 엄한 데서 더 얻을 수 있다는 재미있는 현실...!!
(극장 천장이 음향 반사 역할을 게을리할 경우, 2층이 더 안 좋은 경우도 있다. 내 경험상 다름슈타트 극장은 예상외로 2층이 별로였다.)
흔히 성악가는 몸이 악기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또 하나의 중요한 악기는 바로 공연장이다. 도르트문트 극장은 울림이 안 좋기로 악명 높은데, 더 치명적인 것은 이런 경우, 성악가가 볼륨을 추구하다가 소리를 무리하게 낼 수도 있다. 다행히 관록 있는 이 날의 출연진들은 무리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갔다.
공연장 음향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2막부터는 3층 중앙에 앉아 들었다. 확연하게 달랐다!! 열심히 하는 가수들이 안타까웠다. 음향 좋은 다른 공연장에서 노래했으면 본인들에게도 훨씬 도움이 많이 됐을 텐데.. 가수들에게 괜히 내가 미안했다.
그렇다면 왜 지난번에 봤던 공연들에서는 못 느꼈던 음향의 문제를 이번에 느꼈던 걸까?
지난 시즌에도 도르트문트를 방문해서 오페라 <세빌랴의 이발사>와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를 관람했다. 일단 <세빌랴의 이발사>는 로씨니 작품인지라 푸치니보다 훨씬 오케스트라 편성도 작다. 그리고 연출가는 영리하게도 오케스트라와 관객 사이에도 무대를 설치해서 성악가들이 그 위를 많이 사용할 수 있게, 즉 관객들과 더 가깝게 갈 수 있게 아이디어를 냈다. 무대도 액자 모양으로 만든 것도 성악가들의 울림이 최대한 관객석으로 전달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미소의 나라>는 대사가 있는 오페렛타라서 가수들이 마이크를 착용했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푸치니와 도르트문트의 조합은 성악가들의 무덤인 것인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도르트문트를 재방문해야겠다. 이왕이면 다음에는 오케스트라 편성이 센 작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