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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Oct 02. 2019

인생은 비극이지만 우리, 흥겹게 노래해요,!

프랑크푸르트/ 로씨니 오페라 <오텔로>

"어머, 이건 꼭 봐야 돼!" 

이런 작품들이 있다.

바로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2019/2020 시즌 개막공연이었던 화제의 오페라 <오텔로>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https://youtu.be/J97umLk65EA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작곡가 로씨니의 귀하디 귀한 오페라. (왜냐하면 거의 상연되지 않으니까.) 셰익스피어의 원작 <오텔로>를 가지고 로씨니는 1816년에 이 오페라를 썼고, 심지어 흥행도 쏠쏠하게 괜찮았던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딱 199년 전 1820년에 이 작품이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무대에도 올려졌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극장은 이 사실을 알고 이 작품을 이번 2019/2020 시즌 개막 작품으로 넣은 것이라 생각되는데, 막상 비디오 서두의 극장장 인터뷰를 보면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ㅎㅎㅎ)


그런데 1887년에 이탈리아 오페라 계의 전설이 이 오텔로를 그만 건드려버린다. 바로 쥬제페 베르디. 그것도 말년에 그의 온갖 예술혼을 담아 명작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이후로 오페라 팬들에게 로씨니의 <오텔로>는 잊혀 버렸다. 


베르디의 <오텔로> 이야기는 다음 리뷰를 참고하시길...

https://brunch.co.kr/@jinaohmezzo/12


베르디 말고도, 적은 내부에도 있었으니... 로씨니가 이 <오텔로> 전에 작곡한 오페라가 로씨니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세빌랴의 이발사>(1816)였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작곡한 오페라가 바로 <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1817)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로씨니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 두 작품 사이에 낀 <오텔로>는 음악은 흥겨운데, 극은 비극인 역설 때문인지, 지금은 거의 공연되지 않는다. 


그렇다. 로씨니 음악 특유의 신명 나는 리듬이 이 <오텔로>에서도 펼쳐진다. 그래서 비극인지 희극인지 애매하다. 데스데모나를 둘러싼 오텔로와 로드리고의 삼각관계가 악인 이아고의 폭주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러다 보니 베르디의 <오텔로>에서는 이용만 당하는 작은 역, 로드리고가 로씨니의 <오텔로>에서는 멋진 아리아를 여러 곡 부르는 '서브 남주' 정도로 비중이 있다. 로드리고가 빛나는 대신 이아고는 변변찮은 아리아도 없고, 몇 개의 의미 있는 중창을 부르기는 하는데, 베르디의 <오텔로>에서의 압도적인 이아고의 활약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프로덕션에서는 연출자 다미아노 미키엘렛토가 이아고를 노래하지 않는 부분에도 연극적인 임무를 많이 부여해서 악마 루시퍼 마냥 날뛰는 이아고를 보여줬다. 


로씨니의 <오텔로>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가뜩이나 귀한 로씨니 테너가 3명이나 나오는 오페라라는 점이다. 좋은 로씨니 테너는 항상 귀한데, 이번 프로덕션은 그야말로 로씨니 테너로 차려진 성찬이었다. 현재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노래하며 로씨니 테너에서 점점 레퍼토리를 넓혀가고 있는 에네아 스칼라가 오텔로 역을 노래했고, 이제 막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벨칸토 테너 잭 스완슨이 로드리고를 맡아서 호연을 보여줬다. 청아한 미성을 가진 잭 스완슨은 로씨니를 하기에 무리 없는 발성과 청년 로드리고에 어울리는 싱그러움을 보여줘서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비록 로씨니가 이아고 역에게 음악적으로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음에도, 프랑크푸르트 극장 소속 가수인 테너 테오 레보우는 연출자가 부여한 카리스마적인 이아고를 표현하는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가수는 데스데모나 역의 니노 마차이데인데, 이미 2008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쥴리엣 역을 노래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훌륭한 가수이다. 실제로 꼭 들어보고 싶은 나의 위시리스트 안에 있는 가수이기도 했다. 11년 전 쥴리엣 할 때의 파릇파릇한 외모와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간 세월을 잘 녹여낸 관록 있는 가창은 사실 젊은 가수들보다 몇 수 위의 노련함을 보여줬다. 앞으로도 그녀가 가는 길을 계속 주목할 예정이다. 아마도 곧 베르디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리골렛토의 질다나 트라비아타 말고...)


https://youtu.be/BC0PENY1Cds

(그녀가 스타덤에 올랐던 2008년 잘츠부르크에서 쥴리엣 부르는 모습. 원래 이 프로덕션은 안나 네트렙코가 부르기로 했었는데, 임신한 안나가 공연을 취소해야 했기에, 과연 그 어마어마한 자리를, 그것도 의미심장한 '쥴리엣'이란 역할을 누가 해낼 수 있을지 화제였다. 그걸 해낸 사람이 바로 저기 니노다.)


지휘와 연출팀은 모두 이태리 사람들이었다. 세스토 콰트리니의 지휘는 로씨니 리듬의 묘미를 살리면서 깔끔하게 진행됐고, 연출자 다미아노 미키에렛토가 이끄는 조명, 의상, 무대 등 연출팀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였다. 역시 메이드 인 이태리는 컬러부터 다르다라고나 할까. 


이 희극 같은 비극 오페라를 구현하기 위해 연출가가 여기저기 고심한 흔적이 많이 느껴졌다. 이아고를 사용해서 선과 악의 발랜스를 맞추려고 한다던지, 비참하게 죽는 젊은 연인의 그림과 그 그림에서 살아 나온 것 같은 연기자들을 사용해서 여러 복선을 놓는다던지 말이다. 


오페라를 보는 내내, 음악이 이렇게 흥겹다면 차라리 코미디로 비틀어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어느 천재적인 연출가가 이 작품을 완전히 비틀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돼서 이 오페라가 부활할 수 있기를, 그 덕에 묻혀 버린 로씨니의 많은 오페라 세리아들이 다시 각광받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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