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 Apr 09. 2020

외국어를 향한 애달픈 짝사랑

코로나가 바꿔버린 일상

코로나 때문에 어학원 수업도 결국 취소됐다. 한 달 여 전부터 어학원은 문을 닫았고, 추후 보강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오늘 연락을 받았는데, 수업이 다 취소돼서 나머지 수업일수만큼 환불을 해준다고 한다. 


2018년 11월부터 나는 이태리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상당수는 이태리어로 돼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이전에도 이태리어 배우려고 학원도 다녀보고, 과외도 받아봤지만, 학원은 스케줄이 안 맞아서 자꾸 빼먹게 되고, 과외는 뭔가 체계적인 게 부족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제대로 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겨서 내 일상의 우선 순위에 '어학'을 놓고 꽤나 열심히 했다.


독일에는 '폴크스혹흐슐레(Volkshochschule, 줄여서 VHS)'라고 하는 시스템이 도시마다 참 잘 되어있다. 우리로 따지면 구청이나, 시청에서 주관하는 평생교육원 같은 개념이랄까? VHS에는 운동, 요리, 웅변 등 정말 다양한 코스가 준비되어있고, 언어도 정말 다양하게 배울 수 있다. 교사진도 꽤 수준 높고, 뭐니 뭐니 해도 저렴한 수업료도 매력적이다. 


체계적인 거 좋아하는 독일답게, 웬만한 외국어는 난이도를 등급별로 구분해놓았다. A1은 시작하는 단계고, A2, B1, B2, C1, C2 이렇게 나뉘는데, 예를 들자면 내가 지난가을 응시했던 이태리어 B1레벨의 경우, '현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한 가벼운 토론이 가능한 수준'을 의미한다. 독일에서 영주권을 신청할 때도 B1 수준의 독일어 성적이 요구된다고 한다. 


내친김에 조금 더 설명하자면, B2는 '일반 사회 분야의 가벼운 토론이 가능하고 전공 분야에서는 깊은 토론이 가능한 수준'이며, C1과 C2는 현지인과 다름없고 높은 교양 수준을 의미한다. 아마 한국에서는 미국인 타일러 라쉬나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 수준의 한국어 구사력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그들의 한국어 능력은 정말 존경스럽고 동시에 나를 좌절케 한다.....흑!)


나의 목표는 8년 뒤에 이태리어, 영어, 프랑스어가 B2레벨에서 가능한 수준이다. 2018년 가을에 이태리어를 시작하면서 계획한, 10년을 바라보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 이태리어 B1 시험에 도전했고, 가까스로 통과했다. 올 가을에는 B2레벨을 도전할 요량이었으나, 코로나가 내 발목을 잡고, 의욕마저 상실케 해서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없다. 이태리어 B2 레벨을 따면 이어서 프랑스어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아아... 난 몰라...


문제는 또 있다. 내가 그다지 언어에 재능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외국어를 본격적으로 하려니, 머릿속에 입력되는 속도는 2G인데, 리셋되는 속도는 5G다. 그러면 끈기와 지구력으로 버텨야 하는데, 지금은 머릿속 RAM이 과부하에 걸려있다. 이러다 조만간 포맷한 상태, 즉 원점으로 돌아갈 것 같다. 


언어는 꼭 어학원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난다. 스마트폰 하나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지 이미 충분히 경험했고,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내 마음이 동하느냐...인데, 일단 바닥을 칠 때까지 나 스스로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같은 맥락에서 고삐 풀린 식욕도 일단은 내버려 두기로 했다. 많은 욕구를 억제해야 하는 지금 같은 시절에 식욕이라도 충족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나라는 사람은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DNA가 있다는 것이다. 남 주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니다. CPU 성능이 좀 후지긴 하지만, 나는 그저 외국어를 배워서 새로운 세상을 접할 때 느끼는 소소한 희열이 좋다. 그리고 나같은 경우는 전공이라 쓰고 덕질이라 읽는다에 바로 써먹을 수 있다. 


2028년에 과연 내가 이태리어, 독어, 영어,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와아... 상상만 해도 멋진걸? 


설마 그 전에 동시 통역기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그 많던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