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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04. 2020

그 많던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부활절 풍경이 사라진 독일

독일교회에서 부활절 온라인 예배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일정을 잡기 위해 달력을  체크하는데, '어머 부활절이 1주일밖에 안 남았어?'하고 깜짝 놀랐다. 강제칩거중인 똑같은 나날의 연속이라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 추석이 있다면 독일에는 부활절이 있다. 한국은 1년 중 가을이 가장 아름답고, 풍요롭다. 하지만 독일의 가을은 이미 우기(雨期)가 시작하고 우울증 걸리기 딱 좋다. 하지만 그만큼 봄을 맞는 기쁨은 더 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태양이 다시 돌아오고 만물이 소생한다. 햇볕 좋은 날에는 무뚝뚝한 독일 사람들도 너그러워지는 걸 느낀다. 이런 계절적인 변화는 부활절의 의미와도 딱 들어맞는다. 


독일로 오기 전에는 봄의 소중함을 몰랐다. 여기 온 후 매년 가을과 겨울이면 만성피로와 무기력증,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그게 내 체력이 저질이라서,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안다. 햇볕이 부족한 게 원인이라는 걸.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니 요새같이 햇볕이 좋은 때, 집에만 있으라고 하고, 사람들과 교제도 못하니, 다들 얼마나 갑갑할까. 


원래 독일의 부활절 풍경은 이렇다. 슈퍼에는 토끼 모양의 초콜릿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집을 토끼와 부활절 계란으로 장식한다. 정원이 있는 사람들은 크리스마트 트리를 장식하듯이 색색의 계란을 나무에 달아놓는다. 

부활절 토끼 초콜릿
부활절 계란으로 장식된 나무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한껏 치장해주는 계란들

언제부터 토끼가 부활절을 상징하는 동물로 자리 잡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초콜릿 회사들이 벌인 마케팅의 승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 이전에는 부활절 여우도 있었고, 수탉, 뻐꾸기 등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부활절 계란 배달원들이 있었다. 


예년 같았으면 슈퍼에서 넓게 자리잡았던 부활절 장식이나 초콜릿들이 올해는 구석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리하고 있다. 지인들과 생존신고를 하며 안부를 들어보니, 다들 나라에서 지원해준다는 보조금 신청하느라 정신없고, 아이가 있는 집들은 육아에, 세 끼 밥 해 먹이느라 분투하고 있다. 원래 2주간의 부활절 방학은 독일인들이 앞다투어 휴가를 떠나는 기간인데, 얼마 전 메르켈 수상이 이렇게 담화했다. 

"Eine Pandemie kennt keine Feiertage" (전염병은 공휴일이라는 걸 모른다.)

휴가, 소풍 같은 거 모두 자제하라는 말이다.


기독교가 뿌리 깊은 독일에서 부활절 예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초유의 사태이다. 메르켈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국난이라고 언급했다. 만우절 농담 같은 이야기가 실제상황이라니, 어느 누가 지금의 사태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 많던 토끼들은 올해는 스킵하고 내년에 올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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