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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19. 2020

코로나 때문에 놓친 아까운 공연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이번 시즌은 쫑났다.


며칠 전 독일 정부는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원래 부활절 방학까지 예정됐던 셧다운을 2주 연장함과 더불어 8월 31일까지 축구경기나 공연 등 대규모 행사는 자제할 것을 발표했다. 설마설마... 하던 독일 극장 관계자들은 다들 지금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늘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오페라 덕후인 나는 이번 시즌에 보고 싶은 공연을 꽤 많이 예매해놨더랬다. 참고로 나는 보통 주 1회 공연을 본다. 독일은 공연 티켓이 비싸지 않아서 미리 예매하면 부담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사는 프랑크푸르트가 독일의 대충 중앙에 위치해 있어서 웬만한 곳은 당일치기로도 가능하다. 집에서 한 시간 안팎으로 운전하면 방문할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가 자그마치 10개는 된다.


그런데 지난 3월 1일에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관람한 '살로메'가 이번 시즌 마지막 공연이 될 줄이야... 이건 정말 꿈에도 몰랐다. 허얼...! 타향살이하면서 몇 안 되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오페라 덕질이었는데, 너무나 아쉽다. 내 연주들 취소된 것보다 이 공연들 못 보는 게 더 안타깝다. 여기에라도 기록하고, 기리고, 훗날을 기약해야지...


(이번 시즌 유럽 주요 극장에서 어떤 공연이 이뤄지고, 어떤 가수가 핫한지 궁금하시다면 같이 즐겨보아요.)


1. 로씨니 '세미라미데' -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이 오페라는 로씨니가 이태리어로 쓴 마지막 오페라이자, 엄청난 난이도로 인해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다. 콘체르탄테로 기획된 이 공연에는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가 세미라미데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어서 매우 기대가 됐다. 콜로라투라 분야에서 가장 빛이 나는 그녀이기에, 그녀가 부르는 로씨니는 어떨지 궁금했다. 아래 링크된 동영상만 보면 그녀의 음색이나 가창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공연을 관람하면 그녀의 목소리는 굉장히 진하고,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리세우같은 대형 극장에서는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했었건만......


https://youtu.be/RGKelkKRAzU

조이스 디도나토가 부르는 '세미라미데' 아리아 'Bel raggio lusinghier'



2. 벨리니 '해적' - 도르트문트 콘체르트하우스

마찬가지로 자주 공연되지 않는 벨리니의 오페라 '해적(Il pirata)'이 도르트문트에서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예정됐었다. 벨칸토 3대 작곡가로 로씨니, 도니젯티, 벨리니를 꼽는데, 다들 난이도가 정말 높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르기 어려운 작곡가를 꼽는다면 아마도 벨리니일 것 같다. 공연의 성패가 가수의 역량에 가장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주인공에 많이 의지하는 벨칸토 특성상 오페라 안에서 소프라노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른 가수만이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라트비아의 소프라노 마리나 레베카의 발견은 매우 반가웠다. 벨칸토에서 베르디 중기 오페라까지 아우르는 레퍼토리로 세계 최고의 극장들을 누비고 있는데, 다만 다소 차가워보이는 외모 탓인지, 안나 네트렙코 같은 스타 대접은 못 받고 있다. (왠지 벨칸토 대왕대비마마였던 이태리 소프라노 마리엘라 데비야가 떠오르는 건 느낌적인 느낌일까..) 이번에 그녀를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매우 설레었는데..... 다음에 만나요, 마리나!


https://youtu.be/hmGmctyi6BU

도니젯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 중 'Al dolce guidami'를 부르는 소프라노 마리나 레베카. (이 어려운 걸 너무 쉽게 부르니까 인간미가 없어 보이잖아요...)


https://youtu.be/qpQZFJq2E3U

공교롭게도 마리나 레베카가 부른 'Bel raggio lusinghier'도 찾았다. (디도나토 버전하고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재미있을 거예요^^)

사실 이 공연을 예매하게 된 계기는 마리나 레베카가 아니었다. 예매하고 나서 한참 뒤에, 다른 곳에서 그녀를 발견했고, 그 후에 내가 예매한 이 공연에 그녀도 출연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로또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원래 나의 예매 욕구를 불 지른 이는?


바로 테너 로렌스 브라운리였다. 미국 출신으로 벨칸토 레퍼토리를 장기로 하는 이 쾌활한 테너를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 독일에는 자주 안 오는데, 언젠간 인연이 닿겠지요....

https://youtu.be/CqfKBcJfY1I

로씨니 오페라 '신데렐라' 중 왕자 라미로의 아리아를 부르는 로렌스 브라운리


3.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 푸치니 '토스카' - 비스바덴 국립극장

이 두 작품은 비스바덴 극장이 매년 5월마다 야심 차게 내놓는 '5월 국제 오페라 축제'의 일환으로 기획된 공연이었다. 내가 이 작품들을 예매한 이유는 바로 이 두 작품에 모두 소프라노 안야 하르테로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독일 혼혈에 쾰른 부근에서 자란 이 소프라노는 독일이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틱 소프라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홈페이지도 없고, SNS도 안 하는 요새 보기 드문 신비주의 가수다. 예전에 읽은 인터뷰에서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게 싫다고... 뮌헨, 베를린, 드레스덴 등 주로 독일어권 극장에서 노래한다. 그녀의 카디프 콩쿠르 우승 DVD를 보면서 내 꿈을 키웠지만, 여태껏 기회가 닿지 않아서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옆동네 비스바덴에 온다니! 일찌감치 예매했건만..... 흑!


https://youtu.be/c-TMG7d24yc

안야 하르테로스가 부르는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엘리자베트의 아리아 "Dich, teure Halle"


4. 베르디 '아틸라' - 바덴바덴 축제 극장

이 작품도 콘체르탄테 연주다. 그리고 나를 움직인 이는 현재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베이스 일다르 압드라자코프이다. 아, 참 지휘도 발레리 게르기에프다. 최고의 지휘자와 최고의 베이스의 조화.... 도 좋지만, 일단 압드라자코프를 실제로 듣고 싶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는 자주 공연되는 작품도 아니지만, 베이스가 주인공이 흔치 않은 작품이다. 여러모로 귀한 기회였는데, 참 아쉽게 됐다.


https://youtu.be/7oGzUhjCkgg

단추 풀어헤친 패기 보소! '아틸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베이스 일다르 압드라자코프.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 때문에 앙코르 하는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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