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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21. 2020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정말 왜 네가 거기서 나오느냐 말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미치겠다. 오늘 하루 종일 이 멜로디가 내 귓가에 맴돈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젊은 트로트 가수 영탁인가? 마치 하루 중 어느 지점에 딸꾹질을 하게 되면 가까스로 진정시키더라도 방심하는 사이 또 터져 나오는 것처럼, 이 뜻밖의 멜로디는 오늘 하루 내 귓가를 징하게도 맴돈다. 


독일어로 이런 현상을 'Ohrwurm(귀벌레)'라고 하는데, 영어로도 earworm이라고 하는가 보다. 나는 오늘 내 레퍼토리도 나름 연습했고, 스포티파이가 내 취향을 분석해서 추천해주는 (보통 클래식에서 재즈를 망라하는) 플레이리스트도 한참 들었건만, 언제 어디서 내 머릿속에 박혔는지 알 수 없는 취향 저 편의 강렬한 멜로디가 하루 종일 나를 사로잡았다. 


뇌가 긴장을 완화하려고 이런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는데, 그만큼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반증인가?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싫어하는 노래가 귓가에 계속 맴돌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 노래가 좋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내 무의식은 아니었나 보다. 이런, 들켜버렸군!


공연을 마치고 나면 하루 이틀 정도는 귀벌레가 맴돈다. 꼭 내가 불렀던 소절이라기보다는, 생뚱맞게 오케스트라 파트의 어떤 화성 진행이라던지, 동료 가수의 멜로디도 심심찮게 귀에 맴돈다. 이것은 공연의 여운이기에 전날 흥분했던 나를 가라앉히며 귀벌레가 마음껏 내 귓가에서 울게 내버려 둔다. 열정을 쏟아부었던 의식의 마지막 과정인 것이다.


공연 다음날, 혹 꽤나 강렬했던 연주였다면 며칠 더 가기도 하지만, 시간은 귀벌레를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한다. 그 당시에 내가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렸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죽을 것같이 힘들었던 상실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듯이. (이 역시 뇌가 우리를 보호하는 프로세스라고 하던가..)


나에게 있어서 귀벌레가 노래하는 곡조는 내 마음에 찡하게 맺힌 결과물인데, "니가 왜 거기서 나와~~~"는 그런 과정이 생략된 채 강제로 쳐들어온 느낌이라 당황스러웠나 보다. 그만큼 그 곡조나 가수의 목소리가 파괴력이 있다는 의미겠지. 


내 뇌조차 새뇌시킨 트로트의 강력한 침투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거 아시는지, 귀벌레는 전염된다는 사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오늘 하루 종일 귀벌레를 경험하실 것 같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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