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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15. 2020

73회 교향악의 아버지, 하이든?

하이든이 남긴 성악곡 이야기

http://www.podbbang.com/ch/1769003?e=23454570

지난 3월 31일은요, 한 작곡가의 288번째  생일이었어요. 이 작곡가는요, 클래식 음악사에서 고전파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에 한 명이고요, 별명은 '교향곡의 아버지'랍니다. 여러분 누군지 아시겠어요?


네, 바로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에요. 교향곡의 아버지가 별명일 정도로 수많은 교향곡을 작곡했고요, 그 외에도 각종 악기를 위한 협주곡, 실내악 등 많은 기악곡을 작곡했지만요. 그에 비해 하이든이 얼마나 많은 성악곡을 작곡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요.

루드비히 구텐부른이 1770년에 그린 하이든의 초상 (38세)


토마스 하디가 그린 1792년의 하이든 (60세)

그럼 하이든이 작곡한 성악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무엇일까요? 유명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일까요? 축구팬이라면 이 곡을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https://youtu.be/rNI3Ixk8p7c

2016년에 있었던 독일과 영국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전에 연주된 독일 국가 영상

축구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독일 국가를 종종 들을 수 있죠? 이 곡을 하이든이 작곡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1797년 하이든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2세의 생일 축하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합니다. 원래 제목은요,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 신이여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였죠.


1841년에 독일 시인 호프만 폰 팔러스레벤은 하이든의 멜로디에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schen)'라는 가사를 붙입니다. 총 3절인데요. 당시 유럽은 민족주의 열풍이 한창이었어요. 이 노래는 독일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노래로 널리 애창됐어요. 이 곡은 한 때 오스트리아 국가이기도 했고요. 나치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1절만 국가로 썼어요. 가사를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Über alles in der Welt,

Wenn es stets zu Schutz und Trutze

Brüderlich zusammenhält,

Von der Maas bis an die Memel,

Von der Etsch bis an den Belt –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Über alles in der Welt!

독일,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방어와 공격의 정신으로

형제처럼 서로 함께 단결하면

마스강에서 메멜 강까지

엣취 강에서 발트해까지

독일,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마스강, 메멜 강, 엣취 강, 발트해의 위치. 초록색은 독일어 영향권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나치의 팽창주의에 맞게 히틀러가 좋아할 만한 가사죠? 가사에 언급된 마스강, 메멜 강, 엣취 강, 발트해는 지금은 독일의 영토가 아니지만 독일어 영향권에 있는 곳이에요.


마스강은 프랑스에서 시작해 벨기에를 지나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빠지는 강이고요. 메멜 강은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사이를 흘러 발트해까지 흐르는 강이에요. 엣취 강은 알프스의 남티롤 지방에서 시작해 이태리 북부를 통과해 아드리아해까지 뻗어나갑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의 영토는 현재의 상태로 축소되죠.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그나마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고, 서독은 팔러스레벤의 시 중 3절만 국가로 사용하게 됩니다. (동독은 독자적인 국가 사용) 1990년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는 계속 독일의 국가로 사용되고 있어요. 자신이 작곡한 곡이 200년이 훨씬 지나서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하이든 옹이 알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그것도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 많이 탄생한 독일에서 말이에요.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Für das deutsche Vaterland!

Danach lasst uns alle streben

Brüderlich mit Herz und Hand!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Sind des Glückes Unterpfand –

Blüh im Glanze dieses Glückes,

Blühe, deutsches Vaterland!

통일과 정의와 자유를

조국 독일을 위하여!

이를 위하여 우리 모두 형제처럼

마음과 손을 모아 노력하자!

통일과 정의와 자유는

행복의 증표가 될지니,

피어나라, 이 환희의 광채 속에서,

피어나라, 조국 독일이여!


하이든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음악가예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요. 다행히 어릴 때 음악 재능을 발견해서 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면서 음악 교육을 받았죠. 여러분, 빈 소년 합창단 아시죠? 그런 경우를 상상하시면 비슷할 거예요. 하이든 나이 8살 때, 빈에서 가장 큰 교회 성 슈테판 교회의 소년합창단에 선발되는데요, 고향을 떠나 빈으로 왔지만 그곳에는 돌봐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음악 감독 집에 얹혀살면서, 여러 허드렛일을 하며 밥값을 해야 했어요. 얼마나 눈치를 보며 자랐을까요. 청소년기를 풍족하게 보내지 못해서 그랬는지, 하이든은 키가 작고 체격도 왜소했다고 해요. 그런데 소년 하이든에게 시련이 또 찾아옵니다.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변성기가 온 거죠. 아름다운 보이 소프라노 목소리를 잃은 17세 소년 하이든은 소년 합창단에서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했고, 그 후 10년간 온갖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때 하이든은 연주든, 레슨이든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다 했어요. 27살이 된 하이든은 드디어 처음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되는데요. 보헤미아의 모르친 백작의 궁정악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듬해 결혼도 하게 되고요. 그리고 그다음 해인 1761년, 하이든 인생의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에스테르하지 후작이죠.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성 (출처: 위키피디아)

29살의 하이든은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오케스트라에 부악장으로 가게 되죠. 그리고 이듬해 파울 안톤이 사망하여 동생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가 영주의 자리를 물려받습니다. 이 두 형제는 엄청난 음악 애호가였어요. 거의 30년 동안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후작을 위해 수많은 곡을 작곡합니다.


그럼 이때 쓴 하이든의 성악곡을 한 곡 소개할까요?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오케스트라에 들어간 지 5년 만에 하이든은 첫 번째 카펠마이스터로 승진하게 됩니다. 그 해 쓴 미사곡인데요. 원래 제목은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를 기리는 미사'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체칠리에 미사(Cäcilienmesse)'라고 불러요. 왜 그렇게 부르는지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한 건 하이든이 이름 붙인 건 아니라는 거죠.


1766년에 작곡했지만, 1768년에 에스테르하지 궁전이 있는 도시 아이젠슈타트에 화재가 있었어요. 그때 악보가 소실됐고요. 후에 1773년, 하이든이 예전의 기억을 더듬고, 거기에 몇 곡을 더해서 확장판을 내놓게 됩니다. (참고로 이 미사곡을 알린 사람은 안톤 브루크너 (1824-1896)이며, 1시간이 넘는 긴 작품이라 1807년 브라이트코프 출판사에서 축소 버전을 출판했습니다.) 그럼 이 체칠리아 미사 중에서 한곡 감상해 볼까요? 'Laudamus te 라우다무스 떼, 당신을 찬양합니다'라는 곡입니다. 여기에는 두 버전을 소개할게요. 여러분은 어느 버전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https://youtu.be/49XZKz2JyjI

시몬 프레스톤이 지휘하고 소프라노 유디트 넬슨이 노래하는 'Laudamus te'


https://youtu.be/9aaoCzL-Edk

오이겐 요훔이 지휘하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 소프라노 솔로는 마그다 회프겐이 부른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아이젠슈타트에는요, '자비로운 형제들(Barmherzigen Brüder)'병원이 지금도 있어요. 가톨릭 남성 단체인 '자비로운 형제들'이 했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봤던 봉사가 기원이 된 병원인데요. 이 병원 안에는 ‘파도바의 안토니오’라는 성인을 기리기 위한 교회가 있답니다. 독일 교회에 가면 앞면에는 제단이 있고, 뒷면 2층에 오르간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교회도 뒷면 2층에 ‘하이든 오르간’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바로크 오르간이 있어요.

'자비로운 형제들'교회의 내부
교회 내부의 '하이든 오르간' (사진출처: www.barmherzige-brueder.at)

왜 하이든의 이름이 붙었냐면요, 하이든이 1775년에 이 오르간을 위해서 '작은 오르간 솔로 미사(Kleine Orgelsolomesse)'를 작곡했거든요. 보통 미사곡은 4명의 솔리스트가 필요해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이게 기본 구성인데요. 하지만 하이든의 이 '작은 오르간 솔로 미사'는 오직 소프라노 솔리스트 한 명만 필요해요. 그리고 소프라노 솔리스트는 딱 이 곡만 부릅니다. '베네딕투스(Benedictus)'라는 곡인데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라는 내용입니다. 그럼 오르간과 소프라노 소리가 어떤 하모니를 만드는지 같이 감상하실까요?


https://youtu.be/koozMXHWavE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이 부르는 'Benedictus', 칼 뮌힝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https://youtu.be/x-ZOZVdIxzQ

빈 소년 합창단 단원의 천사 같은 소리로 부르는 'Benedictus'  성인 성악가의 무르익은 테크닉은 아니지만 전율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다.


하이든은 오페라를 14개나 썼어요. 하지만 여러분, 하이든이 쓴 오페라 들어보셨나요? 흔히 고전파 3대 작곡가 하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꼽는데요. 모차르트 오페라는 너무 유명하니까 언급하지 않더라도, 베토벤은 오페라 '피델리오' 1 작품만 썼는데, 그 작품은 나름 유명하단 말이에요. 그런 것치고 하이든의 오페라는 너무 알려지지 못한 것 같아요. 오늘 저는 하이든의 오페라 중에서 그나마 지금도 공연되는 작품 2개를 소개하려고 해요. 첫 번째 오페라는 '달의 세계(Il mondo della luna)'라는 오페라입니다.


이 오페라는요, 2002년 르네 야콥스가 지휘하고, 2009년에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해서 재평가받았던 오페라인데요. 올해 4월에도 취리히 오페라에서 상연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쉽게도 취소됐답니다. 이 오페라는 완고하고 괴팍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 몰래 연애하고 있는 두 딸이 어떻게 하면 아버지께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을까 하며 자신의 연인들과 작전을 짜는 내용이에요. 느낌 오시죠? 코미디고요. 이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 한 곡 소개할게요. 둘째 딸 플라미니아가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Ragion nell'alma siede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성은

regina de' pensieri, 생각의 여왕이지만,

ma si disarma e cede 사랑과 싸우게 되면

se la combatte amor. 무장해제되며 굴복하죠.


E amor, se occupa il trono, 사랑, 그것은 왕좌를 차지하면

di re si fa tiranno,  폭군이 되거나

e sia trifuto o dono, 혹은 달콤한 말이나 선물을 주기도 하죠.

vuol tutto il nostro cor. 우리 마음을 온전히 훔쳐간답니다.


https://youtu.be/5Wz_5kzbISA

2002년 르네 야콥스가 지휘했던 유쾌한 프로덕션. 소프라노 이리데 마르티네즈.

https://youtu.be/oQVflvdvDPI

현재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중 한 명인 리셋트 오로페자가 2017 독창회 중 불렀던 Ragion nell'alma siede (중간의 카덴차-꾸밈음-이 하이든스럽진 않네요^^


이번에는 하이든이 살아있을 때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오페라를 소개할까요? 바로 '기사 오를란도(Orlando paladino)' '라는 오페라예요. 이 오페라는 당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다 있어요. 마법, 사랑, 광란. 등등. 올해 7월에 뮌헨 국립 오페라에서 상연될 예정인데요, 그때까지 코로나가 진정돼서 공연이 성사되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16세기, 루도비코 아리스토가 쓴 서사시 '오를란도 푸리오조(Orlando furioso)' 즉, '분노하는 오를란도'가 원작이에요. 이 작품은 분량이 방대하고요, 이 작품이 뿌리가 돼서 많은 오페라가 작곡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오를란도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할게요. 아무튼 오를란도는 샤를 마뉴의 유명한 12 기사 중 한 명입니다. 12 기사 중에는 오를란도 말고도, 리날도, 브라다만테 등이 있죠. 바로크 오페라 팬이시라면 한 번쯤은 이름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 오페라의 포커스는 오를란도에 맞춰집니다. 오를란도는 이교도 공주인 안젤리카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젤리카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죠. 오를란도는 그 사실에 분노하여, 광란에 빠지죠. 그럼 여기서 오를란도의 아리아 중 한곡을 소개할까요?. 마법사 알치나가 마법으로 오를란도 마음속에서 안젤리카를 잊게 만든 후, 깨어난 오를란도가 혼란스러워하며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Miei pensieri, dove siete? “ 내 생각들아, 어디로 갔느냐?


https://youtu.be/FB5eQ4xrIAc

테너 톰 랜들이 부르는 오를란도 아리아. 2009년 베를린 슈타츠오퍼 프로덕션, 르네 야콥스 지휘. (여담으로 이 프로덕션에는 에우릴라 역으로 소프라노 임선혜도 출연했다)


30년 가까이 에스테르하지 후작을 위해 많은 곡을 작곡했던 하이든의 임무는 1790년 후작이 사망하면서 악단이 해산되어 끝나게 됩니다. 그래도 이미 당시의 하이든은 유럽에서 음악가로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어요. 베토벤도 한때 하이든에게 작곡을 배우러 찾아왔을 정도죠.


하이든은 1791년에 런던을 방문하고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곳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되죠. 그리고 1798년 필생의 역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발표합니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천지창조 중 첫 번째 날부터, 4번째 날까지, 즉 빛, 물, 산과 강, 해와 달과 별을 만드는 이야기고요. 2부는 다섯 번째 날과 여섯 번째 날이에요. 모든 만물과 인간의 탄생까지를 노래합니다. 3부는 에덴동산에서 노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다루고요.


그럼 <천지창조>에 나오는 곡을 들으면서 이번 에피소드를 마칠게요. 2부 마지막 곡인 'Vollendet ist das grosse Werk'인데요. 


"대업을 완수했으니, 우리의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자.

모든 것이 그의 이름을 찬양할지니, 그는 홀로 높으시도다."


https://youtu.be/Qt2Oyq1DwOo

스테판 곳프리트가 지휘하는 잘츠부르크 바흐 합창단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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