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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01. 2020

76회 - 레이날도 안,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프랑스가 사랑한 작곡가 

http://www.podbbang.com/ch/1769003?e=23484141

이 포스팅은 거두절미하고 아래의 노래로 시작하고 싶네요. 이 노래는 프랑스 작곡가 레이날도 안(1874-1947)이 1916년 작곡한 '클로리스에게 A Chloris '라는 곡이에요. 어느 청취자 님은 이번 편을 커피를 마시면서 정말 감미롭게 잘 들었다고 피드백 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그럼 프랑스 향기를 풀풀 풍기며 시작합니다.

https://youtu.be/gb3I13kaYv4

프랑스 카운터테너 필립프 자루스키가 부르는 '클로리스에게' 


S'il est vrai, Chloris, que tu m'aimes, 클로리스, 그게 사실인가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게,

Mais j'entends, que tu m'aimes bien, 나는 당신이 날 무척 사랑한다고 들었답니다. 

Je ne crois point que les rois mêmes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행운은 세상의 그 어떤 왕이라도

Aient un bonheur pareil au mien.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 나는 믿어요.

Que la mort serait importune 죽음이 방해할지라도 

De venir changer ma fortune 내 행복을 앗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A la félicité des cieux! 오, 천상의 행복이여!

Tout ce qu'on dit de l'ambroisie 사람들이 세상의 그 어떤 황홀한 것을 말한다 해도

Ne touche point ma fantaisie 그것들은 내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아요.

Au prix des grâces de tes yeux. 당신의 아름다운 눈이 주는 기쁨에 비할 수가 없답니다.


이 곡은 17세기 프랑스 시인 테오필 드 비오(1590-1629)가 쓴 시에 레이날도 안이 곡을 붙였어요. 사랑의 떨림과 설렘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답니다.


클로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의 신이에요. 로마 신화에서는 플로라라고 하죠. 클로리스는 헤라의 황금 사과를 지키는 님프였는데요.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 서풍의 신 제피루스가 그녀에게 사랑을 호소했어요. 하지만 클로리스는 쳐다보지도 않았죠. 클로리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제피로스는 그녀를 꽃의 신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아내로 맞게 되죠. 원래도 아름다웠는데, 꽃으로 치장하게 되니 더욱 아름다워진 클로리스. 아름다운 여인의 대명사가 됐죠.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가 1875년에 그린 '플로라와 제피루스'


죠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1730년에서 1735년 사이에 그린 '제피루스와 플로라'


레이날도 안이라는 작곡가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위에 소개한 곡처럼 안은 감미롭고 매혹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어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께 이 작곡가를 소개하려고 해요. 


그 어느 프랑스 작곡가보다 프랑스적인 작품들을 남긴 안은 사실 프랑스인의 피가 흐르지는 않았어요. 안은 베네수엘라에서 1874년에 태어났거든요. 그런데 성이 '안'이잖아요. 그런데 이걸 독일식으로 읽으면 '한'이 되거든요. (HAHN) 여러분 프랑크푸르트라는 이름이 붙은 공항이 두 군데 있는 거 아세요? 하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국제공항이고요.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이라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반 걸리는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공항이 있어요. 주로 라이언에어 같은 저가항공이 다니는 데요. 잘 모르시는 분들이 그쪽으로 가는 비행기 타셨다가 프랑크푸르트까지 오느라고 많이들 고생하시거든요. 아무튼 그 한 공항의 '한'이랑 같은 스펠링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름에서 이 작곡가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죠. 


네, 맞습니다. 안의 아버지, 카를로스 안은 함부르크 출신의 유대계 독일인이었어요. 사업가이자 엔지니어에 발명도 했다고 해요. 안의 어머니는 스페인계의 베네수엘라 사람이었고요. 카를로스 안은 베네수엘라에서 큰 재산을 모았고, 당시 대통령 안토니오 구즈만 블랑코 대통령의 친구이자 고문이 되기까지 했죠.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 정치적 반대파에게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1878년 안이 네 살 때 온 가족이 프랑스 파리로 이민을 가게 된 거죠. 


안은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불과 8살 때 처음으로 가곡을 작곡했다고 하네요. 1885년에는 11살의 나이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까지 할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때 안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오페라 사에 기라성 같은 이름을 남긴 쥘 마스네, 샤를 구노, 카미유 생상스 등이었어요. 그리고 같이 공부했던 반 친구는 모리스 라벨이 있었고요. 지금도 이 작곡가들은 많이 사랑받고 있는데, 안의 작품은 비교적 덜 유명하다는 게 아쉽네요. 


그럼 안이 당시에 얼마나 천재성을 보였는지 한 곡 소개할게요. 안이 빅토르 위고의 시를 가지고 13살에 작곡한 노래입니다. 'Si mes vers avaient des ailes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이라는 곡이죠. 

https://youtu.be/DYQbfS3h-qs

베이스 제이슨 하디가 부르는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Mes vers fuiraient, doux et frêles,

Vers votre jardin si beau,

Si mes vers avaient des ailes,

Comme l’oiseau.

내 노래는 부드럽게 살포시 ,

당신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날아갈 거예요.

마치 새와 같은 날개를

내 노래가 가지고 있다면 말이에요.


Ils voleraient, étincelles,

Vers votre foyer qui rit,

Si mes vers avaient des ailes,

Comme l’esprit.

내 노래는 빛을 발하면서

당신의 어울 거리는 난로 곁으로 날아갈 거예요.

마치 혼과 같은 날개를

내 노래가 가지고 있다면 말이에요. 

 

Près de vous, purs et fidèles,

Ils accourraient, nuit et jour,

Si mes vers avaient des ailes,

Comme l’amour!

순수하고 진실된 당신을 향해

내 노래를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갈 거예요.

마치 사랑과도 같은 날개를

내 노래가 가지고 있다면요.


안은 1887년에서 1890년 사이에 우울한 노래들(Chanson grises)이라는 7곡으로 이루어진 가곡집을 작곡합니다. 7곡 모두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폴 베를렌(1844-1896)의 시에 곡을 붙인 건데요. 이때 안의 나이가 13살에서 16살 무렵이었죠. 당시 안은 파리 살롱 문화에서 굉장히 사랑받는 존재였어요. 쇼팡, 리스트도 이 살롱 무대에서 사랑받으면서 국제적인 스타로 거듭났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안이 파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고요,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타입이었다고 해요. 이 천재 소년은 살롱에서 많은 후원자를 만나게 돼요. 소설 ‘별’로 잘 알려진 알퐁스 도데(1840-1897) 같은 작가도 안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고 해요. 


안은 베를렌느의 시에 곡을 붙인 곡을 살롱에서 직접 시인 앞에서 연주했었대요. 그리고 베를렌느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전해져 내려오는데요. 그럼 도대체 이 어린 소년이 어떤 곡을 썼길래 베를렌느가 눈물을 보였는지 궁금하시죠? 곡의 제목은 'L’heure exquise 황홀한 시간'입니다. 


https://youtu.be/nU-GhfeWSP8

다시 소환되는 필립프 자루스키. 프랑스인이 부르는 해석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La lune blanche 하얀 달이

Luit dans les bois; 숲 속을 비추고,

De chaque branche 나무 아래

Part une voix 모든 가지마다

Sous la ramée... 각각의 목소리를 낸다…


Ô bien aimée. 오 내 사랑이여.


L'étang reflète, 연못이 

Profond miroir, 깊은 거울을

La silhouette 실루엣을

Du saule noir 검은 버드나무를 비춘다

Où le vent pleure... 바람이 우는 그곳에서...


Rêvons, c'est l'heure. 우리 꿈을 꾸자, 시간이 됐다.


Un vaste et tendre 광대하면서도 부드러운

Apaisement 위로가

Semble descendre 내려오는 것 같다

Du firmament 천공의

Que l'astre irise... 오색으로 빛나는 천체들을 보라…


C'est l'heure exquise. 황홀한 순간이어라.


1894년 봄, 20살의 안은 23살의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를 만나게 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작가죠. 두 사람은 즉시 열정적인 관계가 됐죠. 하지만 2년 뒤 마르셀 프루스트가 알퐁스 도데의 아들인 뤼시엥 도데와 연인이 되면서 프루스트와 안의 사이는 우정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이 우정은 죽을 때까지 각별했다고 해요. 

뤼시 랑베르가 1907년에 그린 레이날도 안


안은 생전에 음악가로서 충분히 사랑받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삶이나 고단함이 없진 않죠.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원입대도 했고요. 1940년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추방됩니다. 안은 1933년부터 프랑스의 권위 있는 신문 ‘르 피가로’에 음악 평론을 썼고, 이는 추방되고 나서도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계속됩니다. 1945년에 종전이 돼서 파리로 되돌아오고 파리 오페라 감독이 되지만 2년 뒤인 1947년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죠. 


그럼 안의 작품 한 곡 더 들으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칠까 하는데요. 요즘 같은 시즌에 딱 어울리는 곡이에요. 'Le printemps 봄'이라는 곡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울한 나날이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날씨는 너무 좋아요. 제가 독일에 온 이후로 요즘같이 4월에 날씨가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예요. 참 감사한 나날입니다. 그럼 이 곡을 들으시면서, 음악과 함께하는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랄게요!


https://youtu.be/B9vOjLViups

따뜻한 음색의 메조소프라노 수잔 그래이엄이 부르는  레이날도 안의 '봄'


Te voilà, rire du Printemps! 봄아! 너 여기서 웃고 있구나!

Les thyrses des lilas fleurissent. 라일락 꽃이 피었단다. 

Les amantes, qui te chérissent 네가 어여삐 여기는 연인들에게

Délivrent leurs cheveux flottants. 그들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흩날려주렴.

 

Sous les rayons d'or éclatants 빛나는 황금빛 햇살 아래

Les anciens lierres se flétrissent. 고대의 아이비는 시들어 버렸네

Te voilà, rire du Printemps! 너 여기 미소 짓고 있는 봄아!

Les thyrses des lilas fleurissent. 라일락 꽃이 탐스럽게 피었어.

 

Couchons-nous au bord des étangs, 연못 가장자리에서 몸을 뉘어보자.

Que nos maux amers se guérissent! 우리의 쓰라린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Mille espoirs fabuleux nourrissent 수천 가지의 멋진 희망이 움트고 있어.

Nos cœurs émus et palpitants. 감동에 벅차 두근거리는 마음이여.

Te voilà, rire du Printemps! 너 여기 있구나, 웃고 있는 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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