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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행>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문자. 활자. 타이포그래피 : 더블린, 마인츠, 파주


옛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한 말씀이나 생각을 책에 담아 이를 귀하게 여겼다. 위대한 사상과 철학,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들은 책에 담겨 전승되고 인류의 지혜가 되었다. 책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정신을 아름다운 그릇에 정성껏 담아내는 일과 같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그 어떤 디자인보다 북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가 좋았다. 그래서 북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러나 책을 디자인하면 할수록 어려웠고, 작업을 계속하면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답답함이 끊임없이 생겼다. 시간이 갈수록 글자와 책에 대해 단순히 외형만이 아닌 그것을 둘러싼 맥락 전체를 깊이 알고 싶어졌다. 그런 고민이 깊어질 무렵 나는 우리나라 북디자인의 아버지 정병규 선생님을 만났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책으로 돌아가라’, ‘출판문화가 아니라 책 문화로 가야 한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특히 북디자이너는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서로 공명할 수 있게 하는 ‘매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은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께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이야기도 자주 하셨다. 바로 <켈즈의 서(books of kells)>와 구텐베르크의 <42 행성서(42-line Bible)>, 마지막으로 윌리엄 모리스의 <제프리 초서 전집(The Kelmscott Chaucer)>이다. 당시 나는 그 ‘아름다운 책들’을 언젠가 내 눈으로 직접 보리라 다짐을 했었다. 글자 자체에서 맴돌던 나의 공부는 이후 세계사, 철학, 미학, 미술사, 건축사, 문화 이론 등으로 확장되었고, 직접 그 장소로 가서 온몸으로 체험하며 탐사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로 문자, 활자, 타이포그래피의 ‘성지순례’지인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켈즈의 서>를, 독일의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의 <42 행성서>를, 그리고 한국 파주에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제프리 초서 전집>을 만나게 되었다.




문자: 더블린, <켈즈의 서> 그리고 게일어

아일랜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단 하나 <켈즈의 서>뿐이었다. 다른 사전 지식 하나 없이 도착한 도시 더블린, 공항에서부터 축축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도착하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칙칙한 거리를 화사하게 만드는 알록달록한 색색의 대문. 특별한 디자인이나 장식도 아니고 대문 색이 거리를 이토록 산뜻하게 만들다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로 향했다. 바로 이 도서관에 1,200년 전에 만들어진 중세 채색 필사본 <켈즈의 서>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누가 <켈즈의 서>를 보러 여기까지 올까 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뮤지엄 입구부터 길게 줄이 서 있었다. 심지어 아일랜드의 거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인 것과 달리 이곳은 입장료를 받는데도 말이다. <켈즈의 서>가 이토록 인기 있을 줄이야. 그간의 나의 무지가 새록새록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 도서관은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촬영 장소로, 해리포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지순례지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온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도서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라 입구에서만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어두웠고 전시 구성은 <켈즈의 서> 한 권과 이를 설명하는 패널로 구성되었다. 이 귀한 책은 매일 다른 페이지가 펼쳐지기 때문에 만약 여러 페이지를 보고 싶다면 매일 이곳을 방문해야 한다. 전시실 한가운데 유리케이스 안에 있는 <켈즈의 서>를 직접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두기 위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12세기에 쓰인, 가톨릭과 아일랜드 문화가 절충된 이 중세 필사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책에 그려진 문자를 따라서 가다 보면 중간중간 여러 문양을 만나는데, 얼핏 대칭으로 보이다가도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는 반전이 재미있었다. 글줄 사이 공간에 장식문양을 집어넣어 지루하지 않은 레이아웃을 구성한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하이브리드 한 정체 모를 동물과 식물을 만난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설레고 기대되는 네버엔딩 스토리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고대 비밀을 간직한 정형화된 이집트 상형문자 같은 느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화’를 보는듯한 정겨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위트가 보였다. 분명 고급스럽고 장식이 화려한 책임이 분명한데 내 느낌은 따뜻하고 정겹고 순박한 신앙심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책이었다. 독특한 고대 켈트 꼬임 문양과 함께 신비로운 매력의 이 책은 유럽의 변방 더블린까지 사람들을 부르기 충분했다. 벅찬 마음으로 2층에 올라가면 고서 가득한 도서관이 펼쳐진다. 나무 향기, 오래된 책 향기가 진동하는 곳. 이곳이 바로 <해리포터> 촬영지이다. 천장 끝까지 꽂혀있는 책 사이로 여러 필사본 고서들이 전시돼 있고, 여기부터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직접 만났을 때의 기쁨과 천장 높은 도서관에서 호사를 누리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하나 더,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게일어로 된 표지판이었다. 거리에서 만난 모든 표지판은 게일어로 쓰여 있고 작게 영어가 적혀 있는 방식이다. 게일어는 라틴어 계열로 보이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자였다.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 영향으로 거의 사라진 게일어는 아일랜드 독립과 함께 공식 언어가 되었다. 공공게시물이나 교통표지판뿐 아니라 정부 공식 명칭을 아일랜드어로 표기하고, 국방군에서는 아일랜드어 구령을 사용하는 등 게일어 사용을 장려한다고 한다. 또한, 의무 교육 과정과 공무원 시험 등에서도 아일랜드어가 필수 과목이라고 한다. 공식 문자는 게일어인데 말은 영어를 사용하는 이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를 비롯한 네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물론 모두 영어로 쓰인 문학작품이다. 만약 한국인이 오랫동안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거치며 한글이 다 사라졌다면, 일본어로 문학작품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라 가정했을 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온다.
며칠 동안 미술관과 박물관, 문학가들의 공간을 다니며 더블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이민선인 ‘지니 존스턴 호(Jeanie Johnston Tall Ship)’를 보러 가는 길에서 만난 대기근(Irish Great Famine) 동상을 보았을 때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막상 이민선 안에 들어갔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도심 공원에서 만난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동상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여유롭게 웃고 있고,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했다는 오코넬(Daniel O'Connell)의 동상이 있는 오코넬거리 앞에는 아일랜드 경제가 영국을 넘은 기념으로 만들어졌다는 스파이어(The Spire) 탑이 있다. 이는 120미터의 긴 파이프인데 올려다보면 더블린의 하늘을 보게 된다. 하늘이 처음과 다르게 보였다. 영화 <원스>에서 본 것처럼 더블린은 거리마다 아이리시 펍과 버스킹 공연을 볼 수 있다. 떠나는 길에 충충한 도시 색의 활력을 주는 색색의 대문들이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한다. 아, 오길 잘했구나. <켈즈의 서>를 보겠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이곳에 왔던 나에게 더블린은 선물을 보따리로 안겨주었다..




활자: 마인츠, 15세기 구텐베르크의 흔적
 
마인츠는 1,0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문화도시이자 1,400년경 유럽 최초로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태어난 곳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하여 프랑크푸르트 방향으로 자동차를 타고 두 번째 순례지인 마인츠에 도착했다. 오래된 도시이니만큼 도심 안은 주차가 어려웠다. 시내 백화점에 겨우 주차한 후 도심 중앙의 광장을 걸어서 박물관으로 향했다. 고풍스러운 르네상스식 건축물을 지나고, 독일의 대주교가 있는 쾰른 대성당, 트리어 대성당과 함께 3대 대성당(DOM)으로 불리는 마인츠 대성당을 지나면 구텐베르크 뮤지엄(Gutenberg Museum)이 보인다. 이곳은 1901년에 구텐베르크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설립됐는데, 2차 대전 당시 많이 훼손된 건물을 보수해서 1962년 지금의 박물관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600여 년 전 구텐베르크는 이곳에서 500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고, 최초로 라틴서 성서를 인쇄했다. 당시의 <42 행성서>의 인쇄본은 세계 여러 곳에 소장됐는데, 이곳에도 그중 한 본이 있다.
<켈즈의 서>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입구에서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번에는 관광객보다는 독일이나 유럽 청소년들의 단체관람으로 보인다. 건물은 본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있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1미터 정도 두께의 철문으로 된 <42 행성서>가 있는 방이다. 방 안쪽에는 어두운 조명과 함께 3권의 책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중 가운데 책이 구텐베르크의 <42 행성서>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 있는 이곳은 뮤지엄 전체가 사진 촬영 불가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몰래 전시물을 찍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박물관 직원들이 곳곳에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아름다운 책을 꼼꼼히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깜짝 놀랐다. 그 방을 나서자 활자가 발명된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중요한 인쇄물이 촘촘하고 친절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아시아의 활판 인쇄술 전시장이 있다. 중국관, 일본관과 함께 한국관도 한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했다. 1972년에 설치됐다고 하는 한국관은 옛 활판 인쇄술을 알리는 금속활자와 <42 행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직지>의 영인본 등 귀한 고인쇄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 청주의 고인쇄 박물관과 자매결연 맺은 덕에 한국 측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디오라마(diorama)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으며 일본관보다도 규모가 크고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받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하루에 두 번, 관람객을 대상으로 약 15분간 그 당시 인쇄하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구텐베르크가 발명했던 기계에 대한 설명과 출판 과정을 설명하고 실제로 중세시대에 양피지를 이용해 인쇄하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한다. 뮤지엄 밖으로 나오면 개인적으로 인쇄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활판인쇄공방이 바로 옆에 있다. 코끝을 스치는 인쇄 냄새와 종이 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박물관으로 걸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텐베르크를 주제로 한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문화권의 활자 모양 벤치에 않아 고풍스러운 도시 마인츠를 더 느껴본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충만한 느낌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타이포그래피: 파주에서 만난 윌리엄 모리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가면 ‘한길 책 박물관’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윌리엄 모리스가 그의 생애를 바쳐서 만든, 켐스콧 프레스(Kelmscott Press)가 간행한 책 총 53종, 66권을 모두 만나 볼 수 있었다. (현재는 윌리엄 모리스가 만든 일부 책을 상설전시로 만날 수 있다) 덕분에 런던까지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책 전권을 만났던 것. 이 책 중에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로 잘 알려진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초서 저작집>이 있다. 이 책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성지순례의 마지막 책이다.
헤이리 예술마을에 도착하면 게이트 1쪽으로 들어와 먼저 북하우스를 찾아야 한다. 북하우스는 세로로 된 나무로 건물 마감이 되어있어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예전에 이곳 1층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책 몇 권이 상설전시된 적도 있었다. 책이 쌓인 비탈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이 건축의 꼭대기에는 모리스의 책 공방 이름을 딴 켐스콧이라는 카페도 있었다. 북하우스만으로도 윌리엄 모리스의 흔적이 가득했다. 몇 년 뒤 반갑게도 북하우스 바로 옆에 ‘한길 책 박물관’이 설립됐다.
북하우스를 나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빨간 대문의 책 박물관 입구가 있다. 이곳은 윌리엄 모리스의 책뿐만 아니라 18세기에서 19세기 유럽에서 출간된 아름다운 고서들과 일러스트 잡지, 판화 희귀 자료 2만여 종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뮤지엄의 맨 위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관람을 하면 윌리엄 모리스의 책을 비롯한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의 성경,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의 <돈키호테>, 라퐁텐(Jean de la Fontaine) <우화집>, 영국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판화 등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영국 삽화가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의 <살로메(Salome)>도 참 반가웠다. 벽 쪽으로는 크게 확대해 놓은 모리스의 책들을 확대해서 아름다운 벽지처럼 구성해 놓았다. 또한, 모리스가 디자인 한 세 가지 서체도 만날 수 있는데, 먼저 로만체 기반의 ‘골든체’와 중세풍 서적이 돋보일 수 있게 디자인된 고딕체 기반의 ‘트로이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서 저작집>을 위해 따로 특별히 제작한 ‘초서체’이다. 이 세 글자의 머리글자를 한 글자씩 액자로 만들고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1893년, 모리스는 ‘최고의 책’이라는 글에서 이상적인 책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15세기부터 이미 아름다운 글자디자인과 조판만으로 어떤 장식도 첨가하지 않은 예술작품으로의 책이 만들어졌었다고 설명하면서,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시대의 조악해진 책 제작 문화를 비판했다. 또한, 그는 책을 디자인할 때 지침이 되는 타이포그래피의 기준 몇 가지를 세웠다. 첫째, 간단명료하고 읽기 편해야 한다. 둘째, 좋은 글꼴을 써야 한다. 셋째, 지면과 글자의 크기에 따라 여백을 알맞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쉽게 읽기 위해서는 첫째, 올바르게 조판해야 한다. 둘째, 글자 간격을 적게 주어야 한다. 셋째, 단어와 단어가 확실히 보이는 한도에서 최소한의 간격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기에 이미 타이포그래피의 기준을 만들었고, 그 지침은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과 얀 치홀트(Jan Tschichold) 등에게로 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윌리엄 모리스의 전집을 직접 살펴보면서 놀란 점은 얼핏 장식이 많아서 화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심플하게 잘 정리된 느낌이었다. 판면은 황금비율로 고전적 비례를 적용했고, 테두리 장식 역시 정갈하게 정리되어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감동적일 만큼 놀란 것은 손톱만큼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인쇄의 품질에는 깜짝 놀랐다. 이는 왜 모리스의 책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부르는지 설명할 필요 없이 직접 보면 바로 알게 되는 것이었다.
파주에서도 충분히 모리스의 책에서 감동을 받았지만, <초서 저작집>이 처음 만들어진 곳을 찾아가려면 영국 런던의 해머스미스(Hammersmith)라는 곳에 있는 켐스콧 출판사로 가야 한다. 진정한 그랜드 슬램을 꿈꾸며, 더불어 모리스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지은 레드 하우스와 그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마을로 알려진 켐스콧 장원(Kelmscott manor)까지 갈 그날을 기약해 본다.


*이 글은 2017년 1월 타이포그래피 매거진 『the T』  제9호 혁신호에 <<문자, 활자, 타이포그래피>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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