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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비평> 디자인으로 세상을 성찰하다:

성찰적 디자인의 개념과 전개 _ 2015년 7월


시작하며
   이 글은 오늘날 디자인 분야는 물론 문화 전반을 통해 회자되는 낯익은 수사들 즉, 감성, 다양성, 타자, 생태, 생명, 웰빙, 공존, 몸, 여성, 어울림, 보살핌, 치유, 테라피, 힐링 등을 아우르는 소위 ‘부드러운 담론’의 미학적 뿌리는 어디에 닿아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늘날엔 ‘부드러운 담론’과 ‘디자인’의 만남이 슬로건이 되기도 한다. ‘세상을 치유하는 나눔 디자인’, ‘착한 디자인, 세상을 치유하다’, ‘마음을 치유하는 디자인의 힘’ 등과 같은 말들은 이미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정말 디자인으로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황되어 보였던, 디자인이 치유한다는 말은 이제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를 비롯하여 1990년대 한국에서 디자인 대학을 다닌 학생들은 정신없이 밀려오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기 바빴다. 개념과 원리보다는 디지털 기술을 통한 깔끔한 마감능력이 중요했다. 사회에 나와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사회의 요구가 얼마나 불일치하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촉박한 마감시간과 야근으로 이어지는 디자이너의 삶은 디자인의 본질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심을 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보탠다면, 이후 외국에서의 타향살이는 문화충격으로 연결되었다. 의사소통에 서투른 동양인, 여자, 이방인이라는 ‘타자’로서의 삶은 말하기보다 집중해서 경청해야 하는 습관을 낳았고, 나아가 ‘내면의 소리’까지 듣게 했다. 그리고 ‘판단중지’의 상황과 함께 ‘일로서의 디자인’과 ‘삶으로서의 디자인’의 경계에 서서 ‘디자인된 세상’을 다시 보게 하였다.
   그때부터 내 삶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디자인은 무엇인가? 왜 디자인하는가? 어디까지가 디자인인가? 누구를 위해 디자인하는가? 디자인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인가? 막혔던 곳이 터지듯 질문은 계속되었다. 디자인으로 치유가 가능한가?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된 디자인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진실한 디자인, 윤리적인 디자인, 평등한 디자인을 꿈꿀 수 있을까?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절대 확실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먼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음에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를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서 세웠던 그의 방법이자 저서인 <성찰>에서처럼 필자 역시 ‘디자인’ 그 자체부터 의심해야 했다.
   ‘성찰’은 자기 적용이다. ‘치유’라는 말은 객체, 즉 대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면, 성찰은 주체, 즉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근대 서양 철학은 이러한 ‘성찰적 변증법’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는 ‘이성에 의한 성찰’로 계몽주의를 이끌었다.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복원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내적인 성찰’ - 낭만주의적 성찰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감성, 꿈, 무의식, 사랑, 주관, 비합리성, 상상력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데카르트식 성찰과는 또 다른 성찰 -이었다. 성찰은 영어로는 Self-examination, Reflection, Introspection 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성찰하다’는 타동사로 반드시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하면 ‘성찰’은 어떠한 ‘인식’이 아니라 ‘~에 대하여’ 성찰한다는, 인식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성찰’은 대상에 대한 깨달음, 각성, 자기반성을 통해서 얻어지는 ‘태도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며, 비로소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책임감 있는’과 같은 단어와 연대 가능하게 된다.      




성찰적 근대화에서 성찰적 디자인으로
   서양 근대 철학의 계보를 살펴보면 ‘단단한 패러다임’(계몽주의, 산업혁명, 기계론, 모더니즘 등의 고정적이고 남성적인 패러다임) 이후에는 ‘부드러운 패러다임’(낭만주의, 신비주의, 자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등의 유동적이고 여성적인 패러다임)이 나타나는 순환적 혹은 변증법적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서양 근대철학은 데카르트에서 하버마스에 이르는 이성주의 철학과 초기 낭만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니체, 데리다로 이어지는 반이성주의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의 대립적 계보는 20세기의 모더니즘적 성찰, 포스트 모더니즘적 성찰로 이어진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사회학에서 대두된 ‘성찰적 근대화 이론’은 패러다임의 이분법적 구도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성찰적 근대화 이론’은 ‘제3의 길’을 제시한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와 ‘위험사회’를 예고한 독일의 울리히 벡(Ulrich Beck), ‘해석학적 성찰’을 제시한 미국의 사회학자 스콧 래쉬(Scott Lash)에 의해 주장된 이론으로 객관적 인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지식 이론이다. 특히 소모적 논쟁에 대한 이론적 저항이며, 서구 근대의 ‘급진적 자기반성’으로 특히 ‘실천’에 주목한 변화라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스콧 래쉬는 기든스와 벡의 이론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두 개의 근대성’이 존재함을 승인하지 않고 하나의 근대성의 진화와 분화만을 보고자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패러다임이 하나가 아니라 둘, 곧 ‘과학적 근대성’과 ‘미학적 근대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과학적 근대성’이 ‘패러다임의 자기반성’으로 이해된다면 ‘미학적 근대성’은 ‘근대성 자체가 스스로를 비판의 도정에 진입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콧 래쉬는 성찰을 데카르트에서 칸트, 하버마스에 이르는 ‘인지적 성찰’과 보들레르에서 니체, 푸코, 데리다로 이어지는 ‘미학적 성찰’로 구분하였다. 과학의 합리나 기술의 발전을 일으키는 ‘인지적 성찰’도 중요하고,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미학적 성찰’도 중요하다. 그러나 래쉬는 오늘날 그것들을 넘어선 우리, 공동체, 인종, 전통, 습관, 상징, 행동, 문화, 윤리, 공동체, 보살핌, 보살핌의 윤리, 실질적 선을 의식한 ‘해석학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세계 내 존재들이 ‘위험 환경’ 속에서 서로를 어떻게 ‘보살피는가’ 하는 문제를 가장 핵심으로 설명한다. 기든스와 벡의 ‘성찰적 근대화론’의 기본적인 토대인 ‘인지적인 것’을 래쉬는 ‘문화적인 것’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사의 순환적 패러다임 속에서 계몽과 낭만, 모던과 포스트 모던을 넘어서는 새로운 국면의 디자인 담론으로 ‘성찰적 디자인’의 가능성을 논하는 이 글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 된다.

성찰적 근대화』, 앤소니 기든스, 울리히 벡, 스콧 레쉬, 한울, 1998, 228p.

     ‘성찰적 디자인’은 필자가 새롭게 명명한 개념어로 '성찰적 디자인'은 낭만주의적 성찰을 계승하고,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성찰을 통합하고, 스콧 래시의 ‘미학적 성찰’을 넘어 ‘해석학적 성찰’의 의미에 근거한 디자인을 말한다. 나아가 인간과 세상을 치유하고 서로 소통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대안적 디자인’을 말한다.

먼저 나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와 공동체, 전통과 문화, 윤리와 보살핌으로 발전하는 디자인이다. 또한 도덕이나 윤리적 문제와 내적 반성, 공존과 상생의 의미를 늘 깨어서 숙고하는 디자인이자 균형감각을 가지고 치우침 없이 늘 깨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디자인이다. 이러한 관용과 이해, 소통을 실천하는 디자인을 필자는 이른바 ‘성찰적 디자인’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성찰적 디자인의 두 가지 방법
   성찰은 ‘개인적인 성찰’에서 ‘같이 사는 사회에 대한 성찰적인 태도’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하지만 공허한 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찰적 디자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찰적 디자인의 방법은 두 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안을 향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스스로 성찰하는 디자인’과 밖을 향하고 주변을 함께 보는 ‘더불어 성찰하는 디자인’이다.
   먼저 ‘스스로 성찰하는 디자인’의 방법은 같은 창작이라는 면에서 문학가 조정래의 ‘성찰적 글쓰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소설 창작 나와 세계가 만나는 길』(조정래, 한국문화사, 2000)이라는 책에서 자신에게서 문제의식을 길어내는 세 과정을 "관찰, 통찰, 성찰"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나와 세계의 일차적 관계를 직시하는 것이 ‘관찰’이고, 거기에서 인과적 관련성을 생각해 보는 것이 ‘통찰’이라면, 그를 통해서 아름다운 삶을 실천해 나가기 위한 구체적 발걸음이 ‘성찰’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발걸음이 바로 ‘더불어 성찰’의 태도이다. “직시하는 것만이 세계와 내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직시함은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끝까지’ 보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세밀하게 끝까지 보다 보면 거기에서 큰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관찰이다. 생각의 작용은 통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통찰은 어떤 일이나 사물의 앞, 뒤 관계를 한꺼번에 살핀다는 뜻이다. 성찰은 마음속에서 자기를 재발견하고, 자기의 삶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성찰은 실제적 눈으로 바라 ‘보는’ 것이 아니고, 머리로 생각해 ‘보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이 현상, 즉 나의 체험이고 머리로 보는 것은 그 현상의 뒤에 있는 뜻이라면, 마음으로 보는 것은 나의 솔직한 깨달음이다. 성찰은 마음으로 이루어 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삶에서 깨달음을 가질 때 자기가 행복한 길을 찾아갈 수 있다. 깨달음이란 나의 가장 솔직한 내면을 만나는 것이고, 구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디자인사학자 엘렌 럽튼(Ellen Lupton)과 애보트 밀러(Abbott Miller)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리포트>에서,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에 나오는 ‘광기’와 ‘의학’ 대신에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새롭게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다음은 이런 방식처럼, 위의 조정래의 글에서  ‘글쓰기’, ‘나’, ‘길’, ‘자취’라는 단어 대신 ‘디자인’이란 단어를 대입해서 읽은 것이다.
   “(디자인)의 참된 가치를 찾는 방법 중에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삶에서 (디자인)을 발견하고 (디자인)을 이해하며, 나아가 (디자인)을 깨닫는 것, 또한 동시에 세계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디자인)이 살아야 할 세계를 마음에서 구성해 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아름다운 (디자인)을 실제적 삶에 작용하여 내 삶을 반성하고, 내 삶을 성찰함으로써 세계와 더 아름답게 소통하는 그런 실제적 삶의 (디자인)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아름다운 (디자인)을 남기는 것까지…….”  
   다시 정리하면 관찰(직시)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디자인도 장기적인 전망이 있을 리 없다는 말이 된다. 다소 추상적이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어쩌면 이러한 과정이 성장 중심과 국부론의 맥락에서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어서 생략되거나 잃어버린 현재의 디자인계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두 번째 ‘더불어 성찰하는 디자인’의 방법은 ‘스스로 성찰하는’의 방법과 반대로 향한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인문학으로서의 디자인’이 ‘더불어 성찰하는 디자인’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고 정리되는 보편학이다. 인문학에서 나타난 해법은 디자인과 세상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재해석을 새로의 의미를 만드는데 필요한 지혜를 준다. 어느 학문도 예외일순 없겠지만 디자인이야말로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유기적인 학문이다. 문학, 역사, 철학, 예술, 과학, 경제, 환경 등 여러 관련분야와 긴밀하게 작용하고 연결되면서 발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디자인된 인공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대로 된 인간의 이해가 바탕이 된 디자인 환경은 인간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현대 디자인은 더 이상 개개의 생산품 혹은 2, 3차원적인 생산체계를 만들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비물질적, 정신적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점점 더 많이 관여하게 되었고, 직무수행, 네트워크, 소소한 일상에서 지구적 환경문제까지 확장되었다. 전체를 보고 더불어 성찰하지 않고서는 디자인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 역시 타 분야의 영역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디자인 전반의 모든 프로세스에서 인문학적 사유와 깊이를 더해서 전제를 조망하는 힘을 기르며, 인간 사이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세상과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더불어 성찰하는 디자인’의 방법이다.  
 



성찰적 디자인의 전개
   ‘성찰적 디자인’은 새롭게 대두된 담론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이미 의식 있는 선배 디자이너들에게서 계승되어 왔다. 이를 실천해 온 일련의 디자이너들은 소위 부르주아 상업주의와 속류 공리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직시하면서 성찰적 정신을 비판적으로 이어 왔다. 다음은 ‘성찰적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포착 가능한 사례들을 계보학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1)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디자인 1850~1920
   혼재된 양상으로 나타난 19세기는 도시 환경과 공해의 문제들 또한 심각한 시대였다. 계몽주의적 합리주의는 물질적 번영과 근대과학의 진보를 가져다주었지만, 또 다른 부정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이 시기에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디자인의 반성적 의미를 일깨워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미술공예운동’은 ‘성찰적 디자인’의 시작이다. 모리스가 생활환경을 종합적으로 디자인하고자 했던 배경에는 당시의 정신 공간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있었다. 그는 빅토리아식 절충주의에 대항하여 인간의 이성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주의, 낭만주의, 고딕적 유토피아를 대안으로 내세우면서 일상으로서의 예술을 강조하였다.  
   모리스의 사상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신념과 의식적이며 사고하는 인간이라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으며, 생활 모든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적 투쟁이다. ‘만인이 나눌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한 모리스는 제작자에게나 사용자에게나 행복을 느끼게 하는, 민중을 위해, 그리고 민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활예술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근본이라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 ‘예술’은 일상생활에서 격리된 것이 아니라 ‘삶 자체’였고, 매일의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노동과 그 노동의 산물이었다. 그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가치 있는 것들이 예술의 주제와 대상이 되었다.
   그가 역사 속에서 더욱 빛나는 이유는 말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했다는 데 있다. 신혼집인 레드하우스부터 시작하여 가구며 소품, 벽지 디자인, 스테인드글라스, 타일 디자인 등을 공동 작업으로 동료들과 함께 하였고, 여성의 영역으로 생각되곤 하는 자수와 태피스트리를 손수 제작하는 등의 페미니스트적인 면모까지 보여주었다.(고영란, 「페미니즘적 인식 망을 통해 본 디자인 역사에 관한 담론」,『인문과학연구집』, 한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3) 모리스는 마르크스와는 다른 아나키스트적 사회주의 사상으로 정치에도 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토피아적 꿈을 직접 시와 소설로 써서 민중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다할 때까지 다양한 출판 활동과 열정적인 강의를 통하여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성찰적 사상가’였고, 디자인으로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성찰적 디자이너의 아버지’였다.
   
2)  새로운 세상을 위한 디자인 1920~1950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디자인으로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러시아 구성주의’를, 북미 쪽에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유기적 디자인’을 들 수 있다. 먼저, ‘러시아 구성주의’는 이데올로기로 새로운 세상을 위한 디자인을 하였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구시대적인 전통,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고 이를 뛰어넘어 새로운 예술관을 형성하려는 사조가 발생하였다. 특히 러시아 구성주의는 대부분 소위 아방가르드 예술가에 의해서 주도되었으며, 현실적인 안위에 머무르며 타성에 젖어 가는 사회적 풍토를 깨뜨리고자 일어난 사회적 운동이었다. 과거 예술형식을 부정한 점에서 전위적이었고, 소재를 합리적으로 구성하고자 했던 점에서 유물론적이었으며, 혁명의 전파라는 명확한 목적을 지향한 점에서 선전적이었다. 특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자 전통적인 계급사회에 대한 각성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기본정신은 미학적 개념의 재정립과 새로운 역사와의 만남에 있었다. 문화예술의 전 장르를 통해 공동 작업으로 진행시키는 운동적 개념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어 서구의 다른 실험적 태도보다 파급효과는 오히려 더 컸다. 형식이나 내용, 색채 및 재료, 공간감, 그리고 다이내믹한 실험주의로 나중에 기하학적 추상이나 미니멀리즘, 키네틱 아트를 파생시키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그 표현과 형식에서는 합리적이고 기계적이었고, 모더니즘의 정수로 1920년대에 건축, 조각, 회화뿐만 아니라 무대예술, 상업디자인 등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데 스틸과 바우하우스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구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술은 아틀리에에서나 하는 개인적인 작업이 아니라 대량생산과 산업과 연관되어야 하는 사회적, 정치적인 것이었다. ‘거리를 캔버스로’라는 구호처럼 예술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라는 분명한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예술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하였고, 혁명가들은 모두 예술가가 되어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기본 정신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가슴으로 하는 뜨거운 성찰적 디자인’로 기억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라이트 의 ‘유기적 디자인’은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유명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경구가 유럽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주의로 받아들여진 것에 반해, 북미에서는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에서 라이트로 계승되며, 부분과 전체가 조화로워야 한다는 유기적인 기능주의로 발전된다. 라이트는 1894년 연설에서 처음으로 ‘유기적(Organic)’이라는 말을 썼다. ‘자연을 관찰하라, 자연을 사랑하라, 자연과 가까이하라, 자연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더 유명한 그는, 당시 미국의 속된 기계문명을 반대하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대안으로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의 자연과 밀착된 건축을 추구한 디자이너였다. 낭만적인 정신과 혁신, 합리적 이성의 거장 라이트가 70년에 걸쳐 설파한 ‘유기적 건축’의 이상이란 인간의 지적인 정신세계를 통해서 걸러진 자연과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이었다. 그가 미국 중부의 대평원에 주택을 지으면서 대지 위의 수평선을 강조해 입면을 단순화하고 자연의 무늬를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창을 가진 ‘프레이리 하우스(Prairie House)’를 건축한 것은 자연 친화적이고 유기적인 그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라이트가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세상을 위한 디자인은 다른 곳에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원래부터 거기에 계속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디자인’을 말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전체와 부분의 조화를 이루듯이 땅과 환경 그리고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것, 그래서 마치 일체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건축물이 그 자체로 단지 부동하는 상자 같이 닫힌 공간이 아니라 실내와 외부 환경이 서로 넘나드는 열려 있는 공간이 되도록 디자인하였다. 대표작으로 애리조나의 ‘탈리에신(Taliesin)’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생태건축이자 유기적 디자인이다.
   대자연 속에서 건축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그의 성찰적 태도와 신념은 니체가, 자연을 직시하는 낭만주의가 치유라고 했던 관점과도 통한다. 근래에 회자되는 웰빙이나 부드러움의 미학,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동양의 일원론적 자연관까지 모두 아우르는 유기적 건축은 한 세기 전에 말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늘날에도 직접적으로 적용 가능한 성찰적 디자인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3) 현실 세계를 위한 디자인 1950~1970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중심의 디자인은 미국으로 그 주도권을 넘기게 된다. 이데올로기적인 디자인을 지향했던 유럽과는 달리 미국의 산업디자인은 국가와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 소비를 유인하는 수단으로 도구화되었고, ‘굿 디자인은 굿 비즈니스이다’라는 명목으로 상업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전후 베이비 붐 시대를 지나서 1960~70년대가 되면 지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청년 인구가 많은 시대가 되었고, 이 시대의 주체였던 청년들은 더 이상 야만적인 지구적 전쟁은 없어야 된다는 것에 한마음이 되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성찰적 디자이너로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을 들을 수 있다.
   디자인계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그는 ‘반디자인’과 또 다른 비판의 목소리로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강조했다. 라이트의 제자이기도 했던 파파넥은 1960년대부터는 장애인이나 난민 등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위한 디자인을 통해 ‘성찰적 디자인’을 몸소 실천하였다. 1964년부터 독립적인 디자인 컨설팅 업체를 경영했을 뿐 아니라 폭넓은 강연 활동을 벌였으며 ‘필요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Need)’이라는 선구적인 개념을 발전시켰다. 1971년에는 이를 집대성한 <현실 세계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한국어 번역본 <인간을 위한 디자인>, 현용순·조재경 옮김, 미진사)을 출간했다.

   이후 21개 언어로 발간되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디자인 관련 저서 중의 하나가 되었다. 파파넥은 상업주의에 대한 디자인의 추종과 사회적 책임의식의 결여를 통렬히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써 형태와 생산이라는 전통적인 관심사에 앞서 물건의 사용목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디자인 접근방식을 제안했다. 또한 소비지향적인 일회성의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생태적 균형을 생각하고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 진정한 디자인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디자이너란 디자인을 하기 앞서 스스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디자이너가 항상 자신이 만든 제품이 파생시킬 결과를 염두에 두고, 제품의 재료와 제작 방법은 물론 사후의 폐기 문제나 재활용 가능성 등 모든 것을 심각하게 고려’ 해야 하며, ‘디자이너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은 디자인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소비 시대에 디자인이 ‘도구화’ 되는 것을 비판하고 디자이너들이 소비를 부추기고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데 앞장서는 것에 대하여 디자인계 스스로 자성의 시간을 가지고 성찰해야 한다고 외친다. 잘못 조작하면 위험을 초래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수많은 실수, 판단력 부족 혹은 그 부족함조차 모르는 상황들을 실례를 통해 보여주면서 겉보기에 화려하고 멋진 것을 만드는 노력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특히 소외된 계층의 생활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발상과 연구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그는 ‘행동하는 디자이너’가 될 것을 촉구하면서 디자이너를 ‘디자인의 윤리적인 양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파파넥은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넓히기 위하여 인류학과 생물학, 심리학, 미학, 사회학, 역사학 등의 끊임없는 학문적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고 실천하였다. 단순히 디자인만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으며, 연결되어 있는 모든 영역의 교류와 각각의 시대정신을 반영해서 디자인으로 풀어나가는 것이야말로 그의 방법이자 ‘더불어 성찰하는 디자인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을 포함해 그는 인간이 자연과 상호 공존하는 미래 디자인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을 치유하는 ‘성찰적 디자인 전도사’로 불릴 수 있으며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밖에도 이미 잘 알려진 사례로 멀리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Q드럼 물통 (Q-Drum)’이라든가 전쟁지역과 오염된 지역에서의 식수 공급을 위한 베스터 가드 프란센의 ‘생명 빨대(Life straw)’같은 경우가 파파넥을 계승하고, 진정 ‘현실 세계 위한’ 대표적인 성찰적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4) 거짓을 말하지 않는 디자인 1970~1990
    1980년대 이후 소비 자본주의와 디지털이라는 환경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디자인계는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어 냈다. 디자인은 이제 마케팅의 꽃이 되었고 자본주의의 선봉에서 굿 비즈니스로 가는 필수불가결한 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제 디자이너는 상품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고 소비를 자극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생계를 위한 무기로 삼고 있는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브루스 그리어슨(Bruce Grierson)은 ‘그래픽 선동’이라는 글에서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조나단 반브룩(Jonathan Banbrook)을 커뮤니케이터이자 철학자이고 비평가의 대열에 올려놓고 있다. 반브룩은 진실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회, 그는 디자인을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광고와 서체를 디자인하면서 상업적이고,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업을 고발하는 운동으로 디자인을 통한 사회의 ‘개혁’과 ‘성찰’을 시도한다. 그는 1964년  ‘중요한 일 먼저(First Things First) 디자인 선언’을 2003년 부활시켰고, 세계가 소비주의로 만연하고 다양한 문화가 사라지는 데 디자이너가 일조하는 하위집단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반성하며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하는 운동을 촉발시켰다. 선도적인 문화운동 저널인 <애드버스터즈(Adbusters)>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같은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소비 행태를 각성할 수 있게 했고 기업들의 속임수와 위장을 벗겨내는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브룩이 활동하고 있는 <애드버스터즈>는 199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300여 명의 사회운동가, 디자이너, 사진가, 문인들이 참여하는 대안적 시각문화 운동단체이다. 이들은 광고, 브랜드 마케팅의 상품 이데올로기가 문화 권력으로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야유와 시위, 비평과 저항의 디자인 행동을 규합하면서 시각문화의 생산자인 디자이너들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자문하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을 알리는 반(反) 광고 저널인 <애드버스터즈>를 발행하고 있다. 이 잡지의 편집인인 칼레 라슨(Kalle Lasn)은 오늘날 디자인의 역사적 비극을 소명 의식을 이루는 거대담론(Grand Narratives)에 대한 무관심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비극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3년 <디자인 네트>에 실린 반브룩 관련 기사에서 그는 “모더니즘의 시각 언어는 원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의 건설에 사용될 것이라 기대되었지만, 그 반대로 자본주의의 표준 언어가 되었다. 나는 공산주의의 유토피아도 믿지 않지만 자본주의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는 휴머니티의 문제를 다루는 또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디자인을 하는 이유다. 나는 학교에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다’라고 배웠다. 이 말은 당신은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인데 이것은 멍청하고 낡아빠진 관념이다. 우리 디자이너들은 가장 먼저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훌륭한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한다.(조나단 반브룩, <반브룩의 학생 질문에 대한 답변>,『월간 디자인네트』, 월간 「디자인네트」, 2003년 3월호)
   이러한 반브룩의 일련의 작업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디자이너가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성행하는 상업적인 소비주의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 있는 디자인 작업을 통해서 사회 문제에 참여적이고 창조적으로 개입을 할 수 있다는 ‘성찰적 디자인’의 가능성이다.    
 
5) 진정한 소통을 도와주는 디자인 1990~2000
   크시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는 지난 10여 년이 넘게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멕시코, 폴란드, 스페인, 스위스 그리고 미국에서 ‘공공 투사작업(Public Projections)’ - 건물표면과 기념비 등에 대규모 슬라이드와 비디오를 투사하는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에 노숙자와 이민자 출신 교환수들을 위하여 일련의 ‘유목적 기구(Nomadic Instruments)’를 개발했는데, 이는 생존과 의사소통과 권한과 치료를 위한 기구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아방가르드의 이론과 역사’, ‘예술, 정체성과 사회’, ‘디자인, 기술과 윤리’, ‘역기억(Counter-Memory)의 예술’, ‘인터라거티브 디자인(Interrogative Design)’ 등의 주제를 가지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순회강연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 ‘인터라거티브 디자인’은 소외된 인간의 문제를 제기하는 디자인으로, 대립과 충돌을 피하고 비판적인 담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회가 항상 자각하면서 인간 본성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이해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그는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소통을 돕는데 이 인터라거티브 디자인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보디츠코가 이끌었던 MIT 미디어랩의 인터라거티브 디자인 그룹은 히로시마 프로젝트(2000)의 일환으로 커뮤니케이션 보조 장치 디스아머(Dis-Armor)를 디자인하였는데, 이것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히로시마에서 시행된 디스아머의 실험 사례로, 실험 대상이 된 한 여학생은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전혀 없었던 가정환경에서 부모의 이혼 후 홀아버지 아래서 자라면서 남성기피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실험은 그 여학생이 디스아머를 착용하고 아버지 연배의 다른 남성 대담자와 이 기계를 통해 직접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여학생은 남성 대담자들과 차분히 자신의 문제를 서로 나누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등에 장착된 모니터에 나타난 여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 여학생은 그동안 말하지 못한 감정을 쏟아내게 되었고 성장 과정 속에서 자리 잡은 가슴 깊은 상처들에 대해 치유받을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아버지의 입장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서로 간의 대화의 단절로 인한 소통장애를 첨단과학을 사용하여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이 이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보디츠코 교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진정한 평화의 상태가 무엇인지, 민주주의의 존속을 위해 자행되는 세계 곳곳에서의 살벌한 충돌에 대해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러한 문제를 공공의 것으로 드러나게 하여 평화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또는 철학적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디자인이다. 그는 세계 평화와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 첨단과학과 디자인이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의 실험은 디자인이 어떠한 의도로 과학과 만나고, 인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도록 성찰했느냐에 따라 윌리엄 모리스가 그토록 경멸하였던 기계도 충분히 감성을 다루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인터라거티브 디자인은 첨단과학과 원시부터 내려오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본성과 계몽주의적 사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첨단과학과의 조우는 과거 회귀적 성향인 낭만주의의 한계를 극복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인터라거티브 디자인의 겉모습은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진정한 기능은 부드럽고 따뜻한 성찰적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6) 다시 생각하고 다시 사용하는 디자인 2000~
     ‘노 스타일, 노 디자인(No Style, No Design)’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디자인 그룹 드로흐(Droog Design)는 일상 속에서 자그마한 의식의 반전을 꾀하는 디자인으로 고정관념과 상업화된 우리의 인식적 각성을 촉구한다. 그들은 ‘디자인은 주변 세상과의 열린 대화’여야 한다고 역설하며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라고 촉구한다. 1993년 2월 28일, 암스테르담의 ‘팔라디조(Paradiso)’라는 작은 락클럽에서 ‘오후에 하는 평범한 짓거리(Een middag gewoon doen)’라는 디자인 전시가 열렸다. 그들은 오늘의 대중적 디자인 경향과는 다소 상이한 조형적 해석과 그 표현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또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디자인 전문분야뿐 아니라 보편적 수용자에게까지도 시대적, 지역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적잖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드로흐 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보면 크게 ‘경험 디자인’과 ‘재활용 디자인’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경험 디자인’과 관련하여 드로흐의 멤버인 레니 라마커스(Renny Ramakers)는 ‘경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경험의 개념은 단순한 재미보다 훨씬 폭넓다. 경험에는 많은 편차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사랑과 탄생, 죽음과 같이 깊은 것일 수도 있고 잠시 우울해지거나 기분이 풀리거나 즐거운 감정을 자아낼 수도 있다. 한 가지 경험은 짧게 끝나기도 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단순히 웃으면서 넘어가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만한 대량 ‘경험화’는 치밀함이 떨어지게 되면서 모호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사물에서 경험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흥미롭다.”(Renny Ramakers, 『Droog Design in context: Less + More』, 디자인로커스, 2004)
   두 번째로는 주목할 만한 드로흐 디자인의 특징으로 ‘재(Re-) 활용 디자인’을 들 수 있다. 여기서 ‘Re-’는 ‘다시’라는 의미로 이미 세상에 알려진 재료와 사물로부터 시작하면서, 그 새로움의 시각을 기존 개념의 재사고와 기존 사물을 ‘Re-정의’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잘 알려진 한 묶음의 낡은 천으로 만들어진 누더기 의자(Rag Chair)나 스무 개의 허름한 낡은 서랍들을 수집해서 만든 서랍장, ‘당신은 추억을 버려둘 수 없다 (Chest of Drawer ‘You can't lay down your memories’)은 소외되고 버려진 사물들을 자신의 뜻에 맞게 ‘Re-’, 즉 다시 만든다는 드로흐의 생각이 만든 대표적인 디자인이다. 그들에게는 상업적인 시스템과 젊고 새로워야 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풍조가 빚어낸 제품의 과잉 공급으로 인한 진부화, 의도적 폐기와 같은 산업사회의 모순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사회를 통해 쓸데없이 반복되는 물질문명의 패턴과 과잉에 대한 책임의 회피에 대해 더 이상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시점에서 드로흐 디자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련의 디자인 행위 그 자체가 이미 시대에 대한 저항이자 디자인을 비평하는 활동이며, 좀 더 똑바로 디자인을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디자인 문화 현상에 관한 해답은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진지하고도 예리하게 통찰하고 성찰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 우리에게 인간과 사물, 그리고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되돌아볼 계기를 제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문학적 성찰과 철학은 그들의 에너지이자 내공이라 할 수 있다. 투철한 철학으로 무장된 드로흐 디자인은 첫 번째 전시회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 긴 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만들고 있다. 분명 드로흐 디자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깨어있는 디자인의 담론과 철학’ 임을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전의 여러 유산 중에서도 제대로 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 만큼, 의식 주체로서 디자이너의 사고 능력과 그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디자인은 더 많은 물건을 만들거나, 더 많은 재료를 사용하거나,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게 아니다. 디자인은 현존하는 물건과 이미지, 공간과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확장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일이다. 20여 년간 방치된 채 흉물로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의 화물전용 고가 철도를 21세기의 센트럴 파크로 재탄생시킨 ‘뉴욕 하이라인 생태공원’이라든가, 과거의 정수장 구조물을 재활용하여 환경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한강의 ‘선유도 공원’, 버려진 물탱크와 가압장 시설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윤동주 기념관’ 같은 경우가 ‘다시 생각하고, 다시 사용하는 성찰적 디자인’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마치며
   지금까지 ‘성찰적 디자인’이 대안적 디자인 담론으로서 가능한지에 대하여 개념과 방법, 그리고 사례를 살펴보았다. 21세기 디자인은 인간을 향한 성찰, 사회를 위한 공존, 타자를 위한 관용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유럽의 68 혁명을 기점으로 근대와 탈근대라는 이분법적으로 치닫는 소모적 논쟁을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장을 열어준 ‘성찰적 근대화 이론’은 ‘위험사회’를 극복하고자 하는 전 인류적 공존을 위한 대안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특히 ‘성찰적 근대화 이론’에서 미국의 사회학자 스콧 래쉬의 ‘해석학적 성찰성’은 ‘인지적 성찰성’과 ‘미학적 성찰성’을 넘어서 공동체, 전통, 침묵, 문화, 보살핌의 윤리, 실질적 선, 습속 규범 등을 제시한다. 이 이론은 ‘성찰적 디자인’의 문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하며 가장 근접한 이론적 배경이 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디자인은 계몽적 관점의 이분법이 아닌 낭만주의적 의미를 포함한 ‘관용과 이해’, ‘치유와 소통’의 디자인이다. ‘성찰적 디자인’은 모더니즘도, 포스트모더니즘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이너와 사용자, 환경 모두가 상생을 꾀함으로써 행복해지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성찰적 디자인’의 공론화와 실천은 공존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디자인의 제 위치를 찾는 ‘대안적 문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성찰적 디자인’은 새롭게 대두된 것이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주류 담론의 근원적 에너지로 그 맥을 이어왔다. 먼저, 19세기 이후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윌리엄 모리스의 성찰적 디자인의 시작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러시아 구성주의’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건축을 디자인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유기적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진정한 세상을 위한 성찰적 디자인을 실천한 빅터 파파넥에서 출발하여 이후 상업자본주의와 디지털 시대의 거짓을 말하지 않는 디자인의 ‘애드버스터즈’를 고찰했다.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라거티브 디자인’과 다시 생각하고 다시 사용하는 디자인인 ‘드로흐 디자인’등을 예시로 엮어 각 시대에 맞는 디자인의 성찰적 국면을 드러내 보았다.  
   오늘날은 ‘파워 엘리트’보다 ‘성찰적 지식인’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성찰적 디자인’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결국 거시적인 역사적 관점과 디자인 지식, 디자인 교육, 그리고 그러한 것들의 실천적 기반을 형성하는 디자인계의 인식이다. 인간이 새롭게 창출한 디자인이 사용되면서 다시 인간을 에워싸는 환경이 되어 인간에게 되돌아가는 순환적인 흐름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디자인하기에 앞서 각자의 위치에서 한 번 더 ‘성찰’하고 디자인과 관련된 타 영역을 다룰 수 있는 지식도 지속적으로 넓혀야 할 것이다.
   물론 서구의 철학과 역사적 관점에서만 디자인을 조망한 이 글의 개념틀이 한국적 상황에 맞지 않는 한계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서구화 과정 중’이라는 엄연한 사실과 함께 ‘소통’이라는 문제를 고려해 볼 때, 서구의 발화법을 모르고서 우리의 문제를 ‘객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연구는 ‘타산지석’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즉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이분법적 구도를 인식하고 성찰적 근대화의 입장에서 근대화의 편협성을 극복할 수 있다면, 자생적 근대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나라 근대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렇듯 통합적인 사고틀을 가지고 디자인에 임한다면 디자인이란 직업이 기획의 하부구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 자체를 주도할 수 있는 적극적 입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찰적 디자인’은 앞으로의 디자인을 규정하는 사고의 틀이자 태도로서 현재는 물론 미래의 지속가능한 디자인 담론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심도 있게 연구되고 또한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15년 7월 디자인비평집 『디자인평론 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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