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할아버지 제사는 일요일 밤 9시였다. 시댁에 간 건 제사 시작 30분 전이었다.
처음부터 늦게 갈 생각은 없었다. 일요일 제사니까 금요일 밤에 시댁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시장 가서 장도 봐야 하고 음식도 준비해야 하니 당연히 미리 가야겠지 했다. 하지만 일찍 안 가도 되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가 토요일 오전에 합기도 승급 심사가 있었다. 전 주에 시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렸기에 알고 계시겠지? 라고 생각하며 심사 끝나고 준비해서 시댁 갈 때 연락드리려고 했다. 아직 전화를 드리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신랑에게 전화가 오셨다. 제사에 남편만 오라셨다. 일요일 밤늦게 제사를 지내니 다음날 아이들 학교 가기 힘들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싸!) 조용히 '네 그렇게 할게요.'하고 싶었다. 아니면 '전화 한 통 없어서 서운하신건가?' 싶었다. 정말 안 가면 서운해하실 게 뻔하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사가 끝나고 출발할 때 전화를 드렸다. 그 전날에 (은경선생님 강의 듣고 글쓰기 동기들과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잠을 설친 탓에 피곤했다. 피곤해도 할 건 해야지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갈 채비를 하고 메가커피집에서 '메가리카노'(정신 바짝 차리기 위해)를 시키며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나: "어머님, 저랑 애들 지금 가려고요."
어머님: "으잉? 아니야. 지금 오지 마. (제사 쓸 때 필요한) 전 백화점에서 사려고 했는데, 네가 오면 못 사. 아버님 눈치 보여서 전 만들어야 돼. 내일 와."
결혼한 지 11년 차인데 제사 준비로 전을 한 번도 산 적이 없기에 의아했다. 항상 어머님이 손수 장 봐서 만드셨다. 요알못인 나는 큰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도왔다. 그런데 제사 당일날 오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사를 1년에 4번 하는 시댁과 제사 관련하여 마찰이 없던 건 아니었다. 설날, 추석,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제사. 제사가 더 많은 집도 있지만 4번도 꽤 많다고 생각했다.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의 부담은 됐다. 결혼 후에 제대로 제사 준비를 한 적이 많이 없었다. 첫째의 임신과 입덧에 출산에 모유수유에 또 반복해서 둘째를 키우느라 많이 도와드리지 못했다. 손도 느리고 전도 잘 부치지 못하는 요알못 며느리라 큰 도움도 되지 않으셨겠지.
그런데 제사 준비로 힘들어하는 어머님을 보며, 아버님은 나에게 제사 준비를 '주체적으로' 해보라고 하신 적이 있다. 제사 준비 하는 동안 아버님, 어머님은 애들 데리고 나가 계시고 아가씨와 내가 해보라는 것이다. 제사도 우리 집에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도 하셨다. 요알못인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솔직하게 얘기했다. 할 수 있는 건 하고 살 건 사서 하겠다고. 어머님 없이 우리끼리 하는 건 아직 무리라고.
한 번은 다음 해부터 시할머니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하셔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음 해 시할머니 제사 때 연락도 없다고 하여 서운해하신 적이 있다. 너무 억울했다. 분명히 다음 해부터 안 한다고 하셔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제사 관련하여 불편해진 마음은 작은 불씨를 키웠었다. 왜 대한민국 며느리는 얼굴도 모르는 시부모님의 부모님의 제사까지 지내야 하는 건가.라는 나쁜 마음의 불씨였다. 드라마 <며느라기>에서는 결혼 후 시댁행사를 겪으며 좌충우돌하는 초보부부의 얘기가 나온다. 제사준비에 남편이 도와주려다 한소리만 듣고 형님은 오지도 않아 며느리 혼자 하루종일 고생한다.
요즘은 제사 지내는 집이 많이 줄어들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며느리에게 잘못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제사'라는 게 법원에서 사실혼을 판단할 때 제사에 참여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를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집안 행사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 관점이 2000년대, 2010년대 초반까지도 많이 적용했다. 그런데 이 제사 문제로 스트레스가 생기니,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부모님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된다. 부부간 갈등, 고부간 갈등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다.
제사상 차리는 조상의 친손주인 남편은 제사 날짜조차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며느리는 그 날짜를 잊고 살면 안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이번엔 제사음식을 하나도 하지 않아 몸으로 고생스럽지 않았지만 제사상 문화가 있는 한 계속 이런 마음이 유지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