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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Nov 28. 2024

추운 겨울에 딱 생각나는 친정엄마표 보양식 2가지


 새벽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올해 첫눈인데 이렇게 소복하게 오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어릴 적 눈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온 세상이 하얘지면 다른 나라로 여행 온 기분이 든다. 동네가 순간 삿포로가 된다. 길에 쌓이는 건 물론이고 나뭇가지 위에 하나하나 수북이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동화 속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일 좋은 건 뽀드득뽀드득 내며 소리 나는 발걸음. 소리도 좋은데 내 발자국 모양 그대로 도장이 찍히니 아무도 안 간 길 위에 걷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눈 오는 걸 좋아하던 어린 소녀였다.


 마흔이 아주 코앞인 나이가 되어 보니 눈이 오자 생각나는 게 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줄 보양 음료. 바로 '인삼꿀 우유'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거였다. 엄마는 이렇게 겨울이 올 즈음. 날씨가 쌀쌀해지고 눈이 올 때면 직접 인삼꿀 우유를 만드셨다. 강화도에서 미리 사둔 인삼을 꺼내서 손질하고 잘게 썰어 꿀에 재우셨다. 그러고는 우유와 함께 믹서기에 윙윙 갈아 마시라고 주셨다. 그때의 어린 나는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마시길 거부했지만 우리 엄마의 잔소리를 꺾을 수 없었다. 꿀을 넣어 달기도 한데 인삼 특유의 향과 씁쓸한 맛을 내는 이상한 우유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믹서기를 일부로 조금만 가셨는데 이유는 우유를 마시고 남은 인삼덩어리들을 직접 씹어먹게 하셨다. 그게 제일 싫은 포인트였다. 우유는 어찌어찌 코 막고 먹으면 된다지만 인삼덩어리를 먹을 땐 생인삼을 먹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후방추돌 사고 이후 후유증인지 몸살 난 것처럼 일어나기 힘들었다. 몸이 매우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누워있는데 엄마가 전화 왔다. 김장김치를 담가서 맛보라고 한통 갔다 주신다는 전화였다. 사실 쉬고 싶어서 엄마가 오는 것이 반갑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를 누가 말리랴. 알겠다고 했다. 아빠가 커다랗고 무거운 김치통 한 개를 가져오셨다. 엄마 손에도 봉지가 여러 개 들고 계셨다.


나 : "엄마 봉지에 든 건 뭐야?"

엄마 : "삼계탕 거리~애들 잘 먹잖아. "


 엄마에게 아프다고도 말 안 했는데. 텔레파시라도 통한 건가. 몸이 너무 안 좋으니 보양식 생각이 절로 났는데 타이밍이 딱이었다. 엄마에게 몸이 안 좋아서 조금 누워있겠다고 했다. 몸이 안 좋은데 친정부모님이 오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엄마의 폭풍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왜 맨날 몸이 안 좋으냐는 둥.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아니냐는 둥. 강의한다고 바빠서 그런 거면 강의하지 말라는 둥. 걱정되는 말투가 아닌 날이 선 말투로 계속 이야기하셨다. 엄마가 걱정할게 뻔하니까 얘기하지 않았던 교통사고 이야기를 결국 꺼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일이고 지난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오늘만 조금 쉬면 된다고 얘기했다. 이제 잔소리 안 하고 쉬라고 하시려나 했는데 아빠까지 나서서 폭풍 질문이 시작되셨다. 사고는 언제 났고 어쩌다가 난 거고 그래서 지금 보험회사는 뭐라고 하냐는 둥 블라블라.


 걱정이 되어서 그러신 거지만 너무 힘들어서 말에 대답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쉬고 싶었다고 얘기하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제야 엄마도 아빠도 말씀을 그만하셨다. 잠이 쏟아지기에 잠깐 잠이 들었다. 더 깊이 자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친정부모님도 계시니 깊은 잠은 들지 않았다. 더 자고 싶다는 마음으로 누워있는데 엄마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엄마 : "너희 엄마는 엄마, 아빠도 왔는데 계속 누워 있냐~ 그렇지?"

아이들 : "그러게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계신데. 엄마한테 가서 깨울까요?"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으니 누워있을 수가 없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가 요리하는 냄새. 무슨 음식인지 알고 맡으니 냄새만 맡아도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엄마 : "이럴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지. 어서 한 그릇 먹어. "



 엄마와 아빠는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다며 세 그릇만 담으셨다. 커다란 닭 2마리를 사 오셔서 냄비 2개에 나눠 끓여서 한 그릇에 닭다리 한 개씩 담으셨다. 분명 입맛도 없고 누워만 있고 싶었는데 기운이라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국물을 한입 마셨다. '맞아. 이 맛이지.' 엄나무, 뽕나무, 황기 등 각종 전통약재가 듬뿍 들어가 있고 양파와 통마늘을 수북이 넣어 달콤한 국물 맛. 그리고 인삼까지 많이 넣어 사포닌향도 느껴지는 그런 국물 맛. 그리고 뼈를 골라낼 필요 없이 푹 익어 뼈가 저절로 분리되어 있고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살코기의 맛. 아이들도 맛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아이들 : "역시 외할머니표 삼계탕은 정말 최고야! 다른 데서는 절대 이 맛이 안 난다니까."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많이 먹으라고 하신다. 열심히 먹다 보니 커다란 인삼이 보인다. 어릴 적에는 인삼이 보이면 항상 아빠를 드리곤 했다. 지금은 기운을 차리고 싶으니 손가락 두 개정도의 두꺼운 인삼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인삼 맛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만큼 힘을 얻고 싶었다. 그렇게 큰 인삼을 먹고 국물까지 싹싹 비워 먹고 나니 역시 몸에 열기가 돈다. 나는 인삼이 몸에 잘 받나 보다. 그 길로 엄마와 함께 찜질방에 가서 땀을 푹 냈다. 기운이 빠지고 자꾸 졸음이 와서 오래 하진 못했지만 뜨끈하게 몸을 지지니 좋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참 삼계탕을 챙겨 먹었다. 인삼의 효과를 보고 나니 어릴 적 엄마표 인삼꿀 우유가 다시 생각난다. 엄마한테 인삼꿀에 재놓은 걸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려다 쿠팡을 검색해 본다.

 다행히 꿀에 재어 놓은 인삼이 판다. 당장 사서 우유와 갈아 마신다. 어릴 적 인상 찌푸리며 마시기 싫었던 꼬마는 그걸 챙겨 먹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몸이 좋아지는 우유라며 한번 마셔보라고 권한다. 한 입 먹더니 역시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 한 입만 마셔. 그러다 나중에 너희도 엄마처럼 챙겨 먹을 날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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