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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로 May 13. 2024

스무 살, 자립준비청년이 되다.

홀로서기엔 아직 이른 나이, 나는 자립했다.

1월의 마지막 날. 아직 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에 나는 자립준비청년이 되었다.


단어가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덧붙여보자면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그룹홈, 가정위탁시설 등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청년들을 말한다. 


만 18세, 20살. 아직 홀로서기엔 이른 나이. 그렇게 나는 10년을 살던 보육원에서 나와 혼자 살아가게 되었다. 사실 원한다면 보호연장이 가능했고, 내가 살던 시설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연장하는 것을 권장하긴 했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우울증을 앓았고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네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기나 할 거 같아? 선택받은 사람들이나 작가가 되는 거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들은 내가 현실을 보지 못한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마음이 상했다. 나는 정말 글을 쓰고 싶었는데.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보고 싶었는데. 

당연히 안될 것이라 장담한다는 선생님들이 너무 미웠고 사실 조금은 충동적으로 시설을 퇴소하겠다 말했다.


"저 퇴소할게요.
시설에서 더 못 살겠어요."


선생님들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갑자기 말이 되냐며 화를 내셨다. 나중엔 나를 어르고 달래기도 했지만, 20살의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설령 정말 내 인생이 망하더라도 선생님들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 굳은 의지를 말릴 수 없다 생각한 선생님들은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지 경험이나 해보라며 퇴소 절차를 밟아주셨다.


무작정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하다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혼자 자취방을 계약하고 짐들을 풀어놓자니 항상 또래들로 북적거리던 보육원과 다르게 고요한 내 방이 생겼다는 게, 내 물건들로만 가득 찬 '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감격스러움에 젖은 것도 잠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설에서 자립에 대해 교육할 땐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하나도 듣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 일이 되었다. 보호자가 없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그래도 아무렴 어때. 내 인생이고 내가 책임지는 거지! 

당찬 포부만 본다면 지냈으려니 생각하겠지만, 그렇다면 나는 내가 자립하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지 않았을 같다. 내가 나를 책임진다던 다짐과는 다르게 가장 먼저 내려놓은 것이 나를 챙기는 일이었다. 3달간 칩거생활을 하게 되었다. 공간이 생기니 나갈 이유가 없었고, 출발을 위해 연고가 없는 곳으로 내려왔으면서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침대만이 친구가 되었다.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퇴소 후에 나처럼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도 분명 많겠지, 그러나 그 당시는 고독사 한 자립준비청년의 기사가 나와 조금씩 자립준비청년들의 문제들이 사회에 떠오르고 있던 시기였다. 당연히 나도 그 기사를 접했다. 남 일 같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당찬 포부는 어디로 가고 집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내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나도 고독사 하면 어떡하지'


문득 두려움이 밀려왔고, 부끄럽지만 내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다. 그게 전부다. 멋진 글을 읽어서, 존경하던 작가님을 만나서도 아닌 그냥 고독사하면 아무도 내 삶에 대해서 모를 거 같아서 다시 글을 썼다.


성공한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는 멋지다.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배울 점이 많다. 그러나 숨어 들어가 버린 앞길이 막막한 나와 같은 자립준비청년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모두가 성공한 건 아닐 텐데, 나만 빼고 모두가 잘 정착한 것은 아닐 텐데. 


조금은 엉성하지만 자립하고자 노력하는 나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매 년 보호종료기간이 되어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자립준비청년은 많다. 여전히 고독사하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뉴스기사는 쓰이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잘 살아가보고자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을 모아 서툴러도 글을 써내려 보고자 한다.


나와 같은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길, 그리고 자립준비청년들의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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