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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로 May 13. 2024

죽지 않으려 노력한 기억.

막 피어난 꽃처럼 보내야 했을 스무 살을, 나는 발버둥 치며 보냈다.

자립준비청년의 고독사. 놓았던 글을 다시 붙잡게 된 이유.


내가 막 자립을 시작한 때부터 2024년이 된 지금까지, 고독사한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조금 깊게 파본다면 보육원 안의 많은 아이들이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응답한 뉴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립하게 된 청년들을 흔히 열여덟 어른이라 부르곤 한다. 열여덟. 단어만 봐도 어리다. 퇴소 후 5년 동안은 그나마 보호받으며 살 수 있지만, 5년이 지나면 최후의 울타리마저 없어지게 된다. 이제 막 퇴소한 청년들은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금방 끊어질 동아줄을 붙잡은 기분으로 불안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매일이 불안했다. 고독사 한 청년들의 뉴스를 접하고, 칩거하고 있던 나의 상황과 그들의 삶을 비교해 봤다. 다른 게 없다 생각하니 점점 잘 살아낼 자신이 없어졌다. 마치 인생 결말을 미리 보기 한 것처럼 힘이 빠졌다. '열심히 하면 돼! 용기 내서 도전할 거야!' 하던 생각들은 금방 어디로 가버렸는지. 내가 보육원에서 퇴소했단 사실을 누가 아는 것도 아닌데 자꾸 집 안으로 몸을 숨기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가 뭐라도 경험하고 새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나는 조금 더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어느 날,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서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문득 호흡이 이상함을 느꼈다.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거 같았다.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 우울증을 오래 앓고 있던 터라 병원에 들락날락거리며 들은 게 많은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거 지금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구나. 30분이 넘도록 아픈 가슴을 붙잡고 울다가 문득 숨이 편해졌다는 걸 느끼자마자 정신과로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짧은 검사 몇 개를 받길 권유하셨고 결과지와 내 이야기를 종합해 보시더니 예상한 대로 공황발작이라 진단하셨다.


공황발작은 숨이 답답해지고,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스러운 병이다. 나도 머리로는 괜찮다는 걸 알았다. 근데 막상 죽음 비슷한 것을 가까이 마주하니 더 이상 고독사가 남 일 같지 않았다. 


'당장 내일 눈을 뜨지 않으면 어떡하지?' 

보육원에선 늘 답답하고 죽고 싶었는데, 진짜 죽으리라 생각하기 시작하니 두려웠다. 무엇보다 아직 어려 보육원에 살고 있는 동생이 많이 생각났다. '내가 죽으면 동생은 누가 돌보아주지? (실제로 내가 돌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게 걱정되더라.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그리고 당장 죽는다면, 내가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아무도 모를 텐데' 오늘 연락이 두절된다 해도 아무도 모르다가 세 달쯤 뒤에 발견될 거 같았다. 


무엇보다 스무 살에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니 슬퍼졌다. 나 아직 어린데!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를 탓하고 하나님을 탓하다 불현듯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충동적으로 노트북을 벌컥 열어젖히고, 블로그를 개설했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과 우울함으로 가득 찬 생각들을 강박적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꿈을 떠올린 건 아니었고, 죽었을 때 아무도 내 스무 살을 기억해주지 않을까 봐. 일단 쓰게 되더라. 아, 죽으면 홀로 남겨질 동생이 불쌍하기도 했다. 언니를 추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면 슬퍼하겠지.


거의 3-4달 칩거했으니, 일기인지 은둔 보고서인지 모를 글들은 항상 같은 내용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뭐라도 남겨야 했다. 밥을 뭘 먹었다느니 잠을 얼마나 오래 잤다느니 하는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글들은 자서전이 되었고, 홀로서기로 다짐한 스무 살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조그마한 외침이었다.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어 했고, 그래서 보육원에서 나왔으면서. 막상 퇴소하고 나니 일단 살아야 한다는 불안함에 잠식당해 가장 먼저 놓은 게 꿈이었다. 그래도 삶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니 본능적으로 뭔가 써 내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글을 무진장 사랑하긴 했나 보다 싶다.) 

당장 나에겐 꿈이고 나발이고 아무도 모르게 '원인불명 고독사'로 죽고 싶진 않단 사실이 중요했다.


막 피어난 꽃처럼 보내야 했을 스무 살을, 나는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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