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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로 May 20. 2024

돈이 없는 게 그리 서러웠다.

자립하면서 가장 부족하게 된 것, 돈.

내 꿈은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즐겁게 사는 것.
글 쓰고 그림 그리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내가 입이 닳도록 했던 말. 돈이 없어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것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어른들이 세상물정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나무라기도 하셨던 말.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막상 홀로 선 세상은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어린 나는 정말 세상을 모르는 게 맞았다.


자립하고 나선 사실 돈이 꽤 있었다. 시설에서 모아 왔던 돈과 자립지원금 등. 당장 살아가기엔 벅차지 않을 정도의 돈이었지만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가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아등바등 살아야 했다. ‘숨 쉬는 거 말곤 다 돈이라는 말이 맞는구나’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보며 언제까지 내가 이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집세와 관리비, 가스비 등 세상이 무서워서 집에 처박혀만 있어도 나갈 돈은 계속 나갔다.

공황발작 때문에 밖에 나가 돈을 벌기는 무섭고, 그렇다고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는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라는 출처모를 확신이 들었다. 매일 병적으로 잔고를 확인하고 울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독사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좋은 기회로 서울에 올라온 후엔 여러 지원을 받아 최소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돈이 있어 괜찮았지만, 그래도 계속 겁이 났다. 나가는 돈은 있는데 모이는 돈은 없는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 무언가를 하려면 돈이 꼭 필요한데, 나는 내 지출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또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교회에서 몇 명이 모여 저녁 식사 한 끼라도 한다 치면 내게 있어서 제법 큰돈이 나가곤 했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다들 부유한가 생각하기도 했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끽하면 술자리에 불려 나갔다. 나도 그 시간을 즐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돈이 나가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고등학교에서 일방적인 따돌림을 당한 이후로 처음 사귄 친구들이 너무 소중해서 술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까 봐 힘들어도 무리해서 나가곤 했다.


학교를 다니는 즐거움도 잠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충동이 심하게 올라왔다. 어른들에겐 그저 우울하고 길이 맞지 않는 거 같다 둘러댔다. 휴학을 결정하고 입원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가장 먼저 일을 구했다. 쉬는 게 중요한 거 안다. 그래도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가 없는데. 어떤 게 우선인지 자꾸 헷갈렸다. 부모님이 삶을 뒷받침해주는 친구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자꾸 위를 바라보게 되었다. 애인은 비교하면 끝도 없다 조언해 주었지만, 영영 가질 수 없을 거 같은, 가져본 적도 없는 재정적인 평온함이 너무 부러웠다.

가끔 조증이 올 때면 이렇게 두려워하며 쉬는 게 무슨 대수인가 생각했다.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인턴십에 신청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나는 힘이 있을 때 일을 벌여놔야 우울해도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런 불안정함이 도움이 될 때가 있긴 하구나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글로 풀겠지만 나는 우울증 말고도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일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를 거 같아서 일찍 일을 시작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늘 일머리가 있다는 칭찬을 받았다는 거? 공부머리는 없어도 일은 눈치 빠르게 해내는 내가 처음으로 기특하게 느껴졌다.


죽지 않으니 어떻게든 세상이 살아지긴 하더라. 그래도 불안함에 떨고 있는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도, 삶의 이유를 모르겠다 느껴지는 사람도. 그저 평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도. 우리 서로를 위해 조금 더 살아내자.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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