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에 한 번 꼭 써내던 유서를 이번엔 조금 미루어 적게 되었다. 내 몫을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생겼어서 벅찼던 거 같다. 쉴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이 생기면 물 흘려보내듯 아무것도 안 하기 일쑤였고,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약을 먹고 잠에 드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사실 내게 과분하도록 좋은 일들도 많았다. 항상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고, 교회만 가면 외로움을 느끼던 내게 작은 공동체도 생겼다. 신앙의 회복을 위해 일단 신청하고 봤던 아웃리치도 금전적 어려움 없이 갈 수 있게 되었고 인턴십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돈도 조금씩 벌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가 보기엔 많이 갖춰진 이런 환경에서 왜 죽음을 생각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제도, 오늘도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약을 우르르 쏟아내어 한번에 먹어버릴까 생각했고, 옷장 깊이 넣어둔 커터칼을 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아빠 기일엔 내가 대신 죽었어야 한다는 죄책감이 몸을 짓눌렀고 어렸을 적보다 가족의 부재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유치부 아이들을 보며 부모님이 얼마나 아이의 세상에 큰 존재인지 차츰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세상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떠한 목적 없이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의 자리는 비어 있다는 생각.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서툰 것일까.
나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역시 나는 행복할 수 없다는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다.
이만큼 고통스러웠음 이제 나아질 법도 한데, 내 하나님은 세상의 더 큰 고통을 해결하시느라 내가 보이시지 않는 걸까? 이렇게 죽어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은 얼마나 추하고 연약할까. 그럼에도 살아내는 시간이 지옥 같다면 죽어버리는 게 나을까? 끝없으나 해결되지 못할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오늘도 약을 먹고 잠에 들어야겠다.
오늘은 꼭 눈 뜨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