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색도 다양하게 나와 있고, 겉 부분이 코팅되어 있어서 차가운 철의 느낌이 덜 합니다.
철사를 자르기 위해 니퍼를 사용하는데, 특별한 도구의 사용은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고 아이들도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클림트를 "금빛화가"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에게 어떠한 주제, 혹은 명화나 작가에 관한 수업을 할 때에는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 작품과 작가가 갖고 있는 큰 특징 하나를 기억에 심어 주는 것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 수업에서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단어 하나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고 기억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수업에서의 키워드를
금빛이라고 정했습니다.
같은 재료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도 결과물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나옵니다. 그것들을 교사가 잘 지도해 주고, 개인 고유의 특징이 잘 드러 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꼬인 나무의 모양도 어떤 아이는 촘촘하게, 어떤 아이는 자유롭게 펼쳐진 모양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정형화 되게 지도하지 말고, 우리의 얼굴, 성격, 생각, 느낌이 다 다른 것처럼 작품도 서로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도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특성 그 자체를 칭찬해 주고 느낌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출생-사망: 1862.7.14 ~ 1918.2.6
국적: 오스트리아
활동분야: 회화
출생지: 오스트리아 바움가르텐
오스트리아의 화가.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결성했다.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고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났다. 보헤미아에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금세공사이며 판화가였지만 그리 성공하지는 못해 클림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우울했다. 14세 때인 1876년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회화와 수공예적인 장식 교육을 받았다. 1883년 졸업 후에는 그의 동생 에른스트(Ernst)와 동료 학생인 프란츠 마치(Franz Matsch)와 함께 공방을 차려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그는 1880년대 말경 빈에 새로 들어선 국립극장과 미술사박물관에 장식화를 그려 건축 장식미술의 대가로 자리를 굳혔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