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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an May 10. 2018

5_불안의 조각_탐색의 시간

잃어버린 서울의 여름(6)_프랑스워킹홀리데이

내일이면 이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된다. 서울에서 앓았던 작은 병이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라도 찬 바람이 스치면 을씨년스러운 생각이 더 컸다. 마음이 금세 약해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툴루즈(Toulouse)시내를 무작정 걸었다. 잠깐 걸었을 뿐인대도 피곤했다. 


엘렌(Hélène)은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녀가 출근하는 Pôle Emploi라는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을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일자리를 구하러 오거나, 실업수당, 혹은 간단한 구직교육을 문의하러 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 그녀는 늘 오후 12시에서 1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와 요리를 했다. 대부분은 이미 조리가 된 음식을 데워먹는 식이었다. 


그다지 오랜시간 이곳에 있던 것도 아닌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나 자신에 대한 강한 존재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방인으로의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사실 나와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 사이에 있다보니, 나의 외향이 이 곳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오리엔탈(oriéntale)적인 느낌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학원을 다니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방문했다. 서울에서 다녔던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 Française), 카톨릭대학교 부설 어학원(Institut Catholique)에도 문의했다. 대부분이 너무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일종의 무력감을 느꼈다. 갑작스레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늘 무언가를 멈추지 않고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와서인지, 스스로에게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것인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하는 일어나지도 않은 어리석은 상상을 했다. 어쨌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렌과 세바스티앙은 프랑스 부활절(Pâcque)를 맞아 툴루즈 외박에 위치한 부모님 댁으로 갔다. 그녀가 부모님에게 나를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막상 초대받지 못해 혼자 집에 남겨되었다. 나는 남은 시간동안 온전히 혼자였다. 대신 다시 목격한 자신(moi même)이 있었다. 




무수히 느꼈던 무기력감, 우울감이 한동안 나를 휩싸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끊임없이 그것들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물었다. 가해자와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저 참는 것이, 이 시간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희미하게 유지되는 이러한 종류의 의심과 불안감은 내 삶에 특별히 불행한 사건이 없었음에도 계속되었던 것이다.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되새겨보면 언제나 평범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 선명하더라도 과거, 어딘가 일부분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기억'을 되새김질 해보면서 나에게 부당한 침묵이 요구된다고 생각했고, 더 자유롭게 발언하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했다. 내가 오직 주어진 상황에 대부분 순응하며 대처했다고 자평하며

피해자를 자처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옳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는 물음을 계속해서 던져왔던 것이다. 지나치게 혹은 다행히도 '자기탐색의 시간'에 무척 몰입된 결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해자는 내 자신이 되었고, 가해자는 실제 내 안에서 더욱 커가고 있었다. 


나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 점점 더 큰 감정의 소모로 다가오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 이미 자리잡은 나를 해치는 감정에 모든 책임을 묻고 싶지 않아, 여전히 답답하고 억압된다고 느낀 공간에서 벗어나기로 했고, 벗어났던 것이다. 심리적, 정신적 벗어남을 시도한 이래로, 최초로 물리적인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그곳이 어쩌다보니(하지만 이 '어쩌다보니'도 실상 내포한 이유가 다양한 것은 알고 있었다) 프랑스가 된 것이었다. 


그것이 사실 나에게 온전한 독립을 주었는지 생각했다. 언제나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아니 미리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가늠해 그 정도까지만 행동해왔다. 지금은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미루어왔던 것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그저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해내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난 가을 로마에 트레비 분수에 노트르담 성당의 동전을 던지며 '원하는 것 모두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찬찬히 그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17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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