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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an May 05. 2018

행간에 쓰는 글

잃어버린 서울의 여름(5)_프랑스워킹홀리데이를 추억하며

이제 한국에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나간다. 

가끔은 아직 그곳에 있는 이들과 우리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래도 돌아온 이곳에서 다시 또 떠나기 위해 나는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래도 떠나온 그곳을 잊지 않으려고 지난 일년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써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여기저기 난무한다. 


오늘과 같은 날, 날이 좋은 오늘과 같은 나른한 오후의 한 날, 

나는 괜히 소비의 욕심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들고,

혼자서 맥주를 무작정 많이 들이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잘하는 짓인지 하는 생각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을 알면서도 지루한 질문이며 풀리지 않는 질문인 것이다. 그러한 질문의 소용돌이에 애써 무심한 척하면서 나를 즐겁게 하고 여유롭게 할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삶이 계속되고 있음이 신기하고도 야속하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권태롭도록 안타까워하다가도 다행이기도 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 무엇을 위해, 무엇이 되고 싶어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주어진 오늘을 살고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살다간 오늘을 내가 사는데 나는 왜 또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고민하고, 원망하고, 다시 생각하고, 기대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프랑스에서의 일년이 나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그것이 서울에서의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은 마구 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그곳을 떠나오기 아쉬워하며 바라보았던 파리의 야경, 돌아올 서울에서 다시 마주해야 할 얼굴들, 대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를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던 시간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앞으로도 말할 수 없을 나의 과거가 반영된 선택과 행동의 모든 양상들. 


삶은 '나'만 나의 자유만을 생각하게 하기에는 꽤나 복잡한 것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쳐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던 그곳에서 잠이 오지 않던 마지막 며칠 동안의 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천천히 떠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녀(La tour Effiel)를 바라보면서, 서울로 돌아가면 처음 만났던 그리고 매일 보았던 그 파리를 그리워하리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던 것이다. 


돌아오기 직전에 들었던 아버지의 사고 소식은 나를 보이지 않는 혼란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은 것 같았다. 

그가 그저 그렇게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았음을 감사하면서도, 내가 더 이상 낭만적으로만 파리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던 것이다. 내가 선택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남은 한 달의 여유는, 그렇게 

파리의 거리를 멍청하게 걷고, 보이는 교회, 성당마다 무작정 발길을 들여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것으로 마무리지어졌다. 


내게 아직, 파리 그 곳의 향기가 남아 있다면 좋겠다. 나를 만나는 사람, 나를 만날 사람들이 나에게서 파리가 느껴진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파리가 단순히 모두가 사랑하는 도시라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지독하게 외롭고도 거칠게 일하며 사랑하며 살았던 나의 시간이 나에게 오롯이 새겨져 남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내가 왜 파리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누구든 그 질문을 내게 던진다면 나는 멍청한 표정을 하고 한동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치 대수롭지 않고도 뻔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겠지, 왜냐하면 그것을 다 표현할 재주가 내겐 없는 것이다. 


오늘 울었기때문에, 오늘 사무치게 그리워했기 때문에 내일은 그리고 당분간은 또다시 괜찮을 것을 안다. 

지금 유독 파리의 덜컹거리는 지하철이 무척 그리운 것은 그곳이 나의 비밀, 혼자 울었던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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