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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Jan 08. 2023

선물

우리 모두 살아남을 존재들 10

  집에 와보니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조카가 입원하게 되어, 엄마와 잠시 떨어지게 된 첫째 조카이다. 교회에서 형, 누나들과 신나게 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후, 외출한 나를 계속 찾는다고 전화가 몇 번 왔었는데,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이모!”하고 달려와 나를 맞이한다.

 

 손을 씻기고 내 방으로 데려가니, 장난감을 꺼내달라 재촉한다. 놀이 텐트, 장난감 캠핑용품, 파라솔을 가리키길래 모두 꺼내주자 아주 신이 났다. 문득 예전에 방문을 조용히 노크하더니, 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그때 다 지켜보고 있었다.) “이 방엔 재미있는 게 많아.” 속삭이며 물건을 뒤적였던 조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바닥에 이불과 베개를 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캠핑할 거야.”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자, 부지런히 파라솔 식탁 위에 소꿉놀이용 음식을 차린다. 자기가 밥을 차렸으니 이모는 와서 고기를 구우라고 한다. 기꺼이 도와 드렸다. 장난감 전화기로 어딘가 전화하더니, 이 5살짜리가 “사장입니다. 와서 일 좀 도와요.”라고 깜찍하게 말한다. 말도 안 되게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꼭 안고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싶지만, 비단 오늘만이 아닌, 매일매일 그러고 싶지만, 그런 마음을 꾹꾹 눌러 참는다. 어렸을 때 이웃이나, 가족 등의 어른이 그저 예쁘다고 나를 만졌을 때 좋았던 마음보단, 놀라거나 당황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런 불편함이 가시지 않고, 마음에 오래 남았던 적이 있어서 조카의 마음엔 그런 부스러기가 안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모지만, 조심하려고 애쓴다.

 

 저녁에 아이가 좋아하는 소스 많은 돈가스와 우동, 김밥을 배불리 먹고 양치까지 깨끗이 했다. 아이는 밥을 먹다가 몇 번 울먹였다. 우리 집은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노을빛이 거실 안으로 가득 들어와 마음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칠 때가 있다. 아이의 마음이 그랬나.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울렁거렸나 보다. 언니에게 영상 통화를 거니, 대뜸 “엄마. 동생이랑 엄마 있는 병원에 가도 돼요?” 하더니 눈물을 글썽인다. 손으로 눈물 자국을 쓱쓱 닦더니, “엄마. 이것 좀 봐요.”하며 오늘 낮에 만들기 했던 것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올해 언니가 조리원에 있을 때는 전화하면서 엉엉 울었는데, 그사이에 한 뼘 자랐다고 자기가 울면 엄마가 슬프다는 걸 아는 걸까. 엄마도 지금 동생이 아파서 슬프다는 걸 아는 걸까. 기특하긴 하지만, 그런 마음은 조금 늦게 알았으면 좋겠는데.


 전화가 끝난 후, 잠깐 짬이 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 옆에서 놀고 싶다고 하길래, 그럼, 이모는 글을 쓸 테니 너는 놀아라, 하고 놀잇감을 방으로 옮겨주었다.

 

“이모가 정말 중요한 거 하고 있어. 그러니까 잠깐만, 아주 잠깐만 너 혼자 놀고 있어. 알았지? 대신 도움이 필요하면 이모한테 말해.”

“뭐 하는데? 오래 걸려?”

“글쓰기”

“학교 숙제야?”

“....”

 

그래서 조카는 옆에서 놀이, 이모는 ‘학교 숙제’를 하기로 했다. 굳게 약속했지만, 소꿉놀이 음식을 접시에 담아 “손님이 필요한데.”,라고 말하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조카를 무시하는 건 여간 괴롭다. 결국 조카는 이모의 허락으로 어린이들의 용감한 공룡 구조대 친구들, ‘고고다이노’를 딱 두 편 시청하기로 했다... 굿 다이노... 정말 좋은 공룡이다...

 

 내일은 조카와 함께 엄마와 둘째 조카가 있는 병원에 가기로 약속했다. 맛있는 걸 사서 문안 가야겠다. 비록 병실에서지만, 집에 있을 때처럼 조카가 엄마와 웃으며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달달한 음료수와 케이크를 사야지. 밝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엄마와 떨어져 있었기에 쓴 맛 나는 슬픔이 아이의 마음에 맺혀있을지도 모른다. 달콤한 음식과 사랑하는 엄마와 동생을 보며 쌉쌀한 슬픔이 모두 씻겨져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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