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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Jul 28. 2023

무해한 공간, 무해한 사람

사람들 사람들 10

  토요일 격주로 미술 수업을 참여했던 나날이 있었다. 본래도 수업 가는 걸 좋아하는데 다습해진 공기와 볕바른 강의실 덕분에 마음이 더 흐뭇해진 때였다.     


 나는 내가 다니던 강의실이 참 좋았다. 살짝 열린 문을 밀고 들어설 때 처음으로 마주하는 건 매일 그림을 그렸던 나날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선생님과 메이트들이었다. 나를 보면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어릴 땐 열의가 있는 학생처럼 보이고 싶고, 이쁨 받고 싶은 마음에 맨 앞자리를 고수했는데 그때는 맨 뒷자리 창가 쪽에 앉았다. 사람들 틈에 앉으면 긴장하는 편이라 더는 그걸 억지로 견디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끔 바람에 아늘거리는 커튼이나 창문 밖 자그럽지않은 도시 소음이 들리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내가 그전까지 봐왔던 강의실 풍경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그 공간에 있으면 왜 이리 마음이 포실해졌을까. 웃는 얼굴로 수업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잡으며 생각해 보았다. 분명 비슷하게 생긴 강의실인데 어떤 곳에선 삭막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어떤 곳에선 편안함과 연대감을 느끼는 건지.      


 문밖에서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에 잘 모른다. 무엇에 열을 내고, 또 무엇에 기뻐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부턴 그 어떤 비교의식이나 욕심 같은 해로운 것들을 문밖에 놓고 와야 한다는 걸 안다. 개인에 따라, 그게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노력했었다.      


 그런 사람들, 그런 노력을 하려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해함이 있다. 그로 가득한 강의실에서 우리의 마음은 좀 더 포실해지며 외롭지 않은 것이었다.                          

 여러 작가들의 그림을 함께 살펴보고 작품 구성 방법을 시도하는 것도 색다르고 재미있었다. 처음이라 서툰 솜씨로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것도 있어서 조급해질 때도 있지만 작품을 보기 좋게 놓고 함께 완상했다. 똑같은 자료를 참고했는데도 이채로운 데가 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선생님께 지난주 동안 궁금했던 부분이나 선생님이 가져온 작품책을 보면서 대화했다. 그분들과 가까워지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기필코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네 작품도 의미 있고, 내 작품도 의미 있어. 그런 눈빛으로 서로의 작품을 바라봐주는 사람들. 썩 가깝지 않아도 이미 한 명 한 명 기중하게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 가치로운 관계였으니까.

     

  초여름에 접어든, 기분 좋게 미지근한 공기로 찬 놀이터에서 어스름해질 때까지 친구와 놀고 가는 기분으로, 걱정 없이 산뜻하고, 배는 좀 고프고. 그런 어린 날의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올해 그 공간과 그 사람들을 알게 되어 마음이 물렁해진 순간을 만끽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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