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15
단, (.)
1. 눈 번쩍 떠보니 무수한 점들 가득한 곳이네. (허공에 있는 주인공)
2. 별 아니야. 점.
점. 점. 점.
동떨어진 곳에 하나씩, 하나씩 있는 점.
3. 캐치볼 공처럼 작고 가벼운 점도 있어.
내 목과 등을 무겁게 누르는, 크고 무거운 점도 있어.
4. 누군가 멀리서 보면 나를 그냥 점으로 보고 지나칠 수 있겠지?(공간을 확대했을 때 티끌만 하게 보이는 주인공)
어어어어이! (텍스트를 번지는 듯하게 그리기)
5. 나도 점인 걸까.(검은 색 바탕)
6. 오로지 점과 나밖에 없는 세상인데.
7. 점 주변에 움직이는 모션 그리기. 미세하게 움직이는 점.
8. 난 점이 아니야. 점과 달라.
지금부터 이 점들을 움직일 거야.
8. 등과 목이 땀으로 축축해졌어.
그저 가만히 바라볼 때도 있어.
오랜 시간 그렇게 볼 수도 있지.
9. 점점점 (점점점)
…
-
10. 어?
(옮기고 나서 너는 그 점을 밟으며~ 길이 된다.)
11. (길을 걷다가 또다시 점선을 만들고 그 선들을 이어 붙임.)
12. (공간이 된다.)
13. (공간에 들어서는 나의 뒷모습을 비춘다.)
14. (어떤 곳일까.)
15. (주인공과 점들이 사라진 세상. 흰 배경만 남음.)
단상: 제목에서도 예상하셨다시피, 제목인 '단, 점'은 '단점'을 의미한다. 주제를 단점으로 한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단점은 ~이다.', '단점은 ~한다.' 등의 명제를 만들다가, '단점은 타인으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요인이 된다.'라는 명제를 적었다. 단점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되고 모자란 점'이다. 단점은 누군가에나 있는데 왜 나는 '고립'을 떠올렸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내 경험에서 기인했다. 어렸을 때 지금과 상반되는 왈가닥이었다. 얌전함을 지향하는 사회이다 보니, 누군가의 시선에는 내가 모 나보이고, 산만한 아이로 보였나 보다. 나에게 대하는 것이 뭔가 달라, 어렸을 때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미움받기 겁나는 마음에 부러 거칠게 행동할 때가 많았다. 그때부턴, 난 정말 모난 아이가 되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내 첫 번째 고립이었다.
그리고 글쓰기나 그림을 통해 조금 나아졌으나, 과거에 한 번 정신적으로 단단히 부서진 후, 말을 집중해서 듣거나, 읽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 단점으로 인해 몇몇 사람들은 나를 의아해하곤 했다. 저 사람은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왜 저렇게 더디 읽지. 성실하지 않은 사람인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고, 그 이후부터 이렇게 되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납득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럴 힘도 없었다. 그때는 내가 나를 스스로 고립시켰다.
정말 매일매일 미워했던 단점이었는데. 나를 증오하게 만들었는데. 기묘하게도 이 단점들이 모여 내가 글을 쓰게 하고, 그림책을 만들게 했다. 다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도 있지만,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정신건강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거야? 나는 남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이 야기한 울분이나 우울감이 찾아오면 그것을 글로 승화시켰다. 글 안에서 보이는 나는 희망적이었기에, 나는 좀 더 기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또 나와 비슷한 아픔으로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한 작가님을 동경하게 되어, 조금 무모하지만, 그림책도 만들기 시작했다.
내 단점은 나를 타인에게서 동떨어진, 혼자 덩그러니 놓인 우우한 '점'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 되기도 했다. 길이 모여, 하나의 면, 면이 모여 세상. 그 세상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예전엔 매일매일 미워하던 내 단점이 이젠 마냥 밉지만은 않다. 단점이 없었다면, 겁쟁이인 내가 시도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겠지. 사랑은 못 한다. 그러나 고마워할 수는 있다. 무수한 단점을 이어 도달한 새로운 세상에서 앞으로는 고마워할 날이 더 많았으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