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인형놀이

취향안맞아요.

by jina S Kim


안맞아도 안맞아도! 어쩜 이렇게 안맞아!


투덜대며 집을 나섰다.


8시-

적어도 7시반까지는 도착해야 표를 받고 여유롭게 입장할 수 있었다.

간만에 토요일 저녁 외출다운 외출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협주 연주.

마음은 이미 날개를 펼치며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허공을 떠돌고 있었고, 오른발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가며 신나게 밟고 있었다.


표를 내밀고 맨 윗줄 칸과 열을 암기하듯 외우며 내가 앉을 자리를 찾느라 분주했다.

D 17- 11

빈 좌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양 옆 여자 커플- 사이 덩그러니 남아있던 빈좌석.

R석 10만원 자리치고는 너무 비좁아보이고 초라해보였다.

지휘자가 흔드는 손짓을 따라 많은 연주자들이 각자 또는 함께 격렬하고도 부드럽게 흐늘거리는 모습에 이내 혼자라는 생각을 잊고 그 아름다운 소리와 진동에 나의 귀와 마음을 열었다.

2시간 내내 온 마음을 빼앗기고 싶었다.

좀 더 자세히 빠져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흘기기도 하고 크게 떠보기도 하며 그렇게 눈보다는 귀로, 귀보다는 마음으로 듣기를 원했고,

집중력을 흐트리지 않기위해 나 나름 혼신의 힘을 다했다.

연주회를 보는 자세가 그러하듯 주어진 나의 삶을 대하는 모습 또한 그러길 바랬다.

그 자리에 있다면 무엇이 되었든, 대할 때 최대한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하는것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라 여기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인생처럼 음악도 좀 모르면 어떤가. 무료하고 지루하면 어떤가.

그럴수록 더 집중하고 싶었다.

마음을 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믿기때문이다.




여기 저기 커플들이 쏟아져 나오고, 가족 단위 혹은 친구 2~3명 짝을 지어 모였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축되기도 했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클래식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여기까지 흘러온것은 아니였지만 개인적으로 첼로의 부드러운 중저음과 때에 따라 줄을 튕겨주는 소리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바이올린의 긁히는 듯한 소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내 마음을 적셔 줄 단비가 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 주어 흡족했다.




무리에 속해있어야 대단한것처럼 느껴지는 10대,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즈음 마지막 어느 때부터인가 혼자인게 편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활 모두를 공유하고 심지어 화장실 갈때도 2~3명이 짝지어 다니기도 했다.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 집 앞 놀이터에서 몇시간씩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 몰래 전화로 몇시간씩 수다를 떨곤 했다.

친구들과 소설이나 만화를 그리고, 비밀 노트에 편지를 쓰고 돌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공항에서 친구들의 마중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을 때만 해도 긴 시간을 혼자 해야한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도 친구들과 편지와 통화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당시엔 디지털 카메라도 이메일도 흔하지 않은 때라 찍은 사진을 한달에 한번 꼭 인화했고, 편지 보내고 우체통에서 반가운 친구의 글씨를 읽는데 꼬박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친구들이 보고 싶어 1년에 한번 방학땐 꼭 집으로 돌아오기위해 엄마를 졸라댔다. 낯선 땅에 제법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번 맛을 들여보니- 혼자만의 놀이가 참으로 좋았다.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걸어다니는것도, 버스를 타거나 쇼핑을 하는것도... 심지어 혼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커피숍에 앉아 몇시간씩 시간을 보내는 것도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해방된 느낌이랄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여러 생각들을 마음에 담고 기억하는 것을 참 소중히 여겼다.

나라는 인형을 가지고 혼자 노는것이 참 달달하다고나 할까.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도서관에 모여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일주일에 꼭 1~2번씩은 혼자 시간 보내는것을 잊지 않고 지켰다.

스쿨버스에 올랐다가도 중간에 내려 다른 캠퍼스에서 하염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혼자 잔디에 누워 이어폰에 귀를 맡기고 한가하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지갑에 돈이 없어도 수업시간을 거르고 즉흥적으로 쇼핑몰에 가 상점과 물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도 했고, 강가에 앉아 보내는 시간들도 점 점 늘어났다.



혼자하는 인형놀이가 마냥 좋았다.

내가 주인공이고, 모든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과 시간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나만 너무 사랑하거나.. 아니면 남에 대한 배려심이 없어서 그런건 아니였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친구들을 만날 땐 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지만, 모두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내키지 않을때도 있었고, 모두가 나에게만 맞출 수 없는 노릇인 걸 모르지 않았다.


기다려야 할것들은 늘어나고 장소, 메뉴, 만남과 헤어짐의 시간을 정하고 그날의 테마도 정해야했다.

공부는 1시간도 지루하고 길었지만,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24시간이래도 늘 부족했건만, 그 귀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돌아오는 일도 생겨났다.

내 머리 속에는 모두 좋은 추억으로 잘 간직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불공평한 일들도, 싸우는 일들도 많았다.

내가 찜해 둔 남자를 빼앗기는 일, 무리 안에서 애인이 눈 깜짝할 사이 바뀌기도 했다.

눈이 펑펑 오던 날, 몰래 연애하기 위해 도망나간 친구를 하염없이 찾아다니다 눈밭에 미끄러져 앞니가 부러지기도 했다.

의리를 지키려다 통금 시간을 훌쩍 넘겨 외출 금지를 당할 일도 생겼고, 하기 싫은 변명들을 대신 늘어놓아야할 일들도 생겼다.

앞서 말했듯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고, 내가 오롯이 좋아서 한 일이기에 후회는 없다.




혼자 영화도 당당히 보러 다녔다.

조조 영화가 더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애인이나 친구없이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이 요즘처럼 흔한 풍경은 아니였다.

심야영화를 보러 가면 꼭 남녀커플 옆 끝자리에 앉게 된다.

웬지 모르게 내 돈주고 산 팝콘을 입에 갖다 넣는것도 참으로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특히 커플 중 남자가 내 옆 자리면 더더욱.

웃긴건 이유도 모를 그런 눈치를 보며 영화를 봐도 나름 그 상황이 잼있어서 킥킥거렸다.


누구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꾸밀 필요도 없이 원큐에 원하는 것을 하고 빨리 다음 장소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리보면 나는 마음이 그리 너그럽거나 여유로운 사람은 아닌 듯 싶다.


사람마다 취향이 모두 다른데, 그걸 일부러 맞출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그 사람이 좋아도 특별한 이유를 굳이 납득하지 않으려 함이 더 맞겠지만.

사랑하기에 맞춰줄수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런 이유들로 헤어지는 경우를 수없이 겪었고, 보았다.


사랑하기에 서로가 다름을 존중하는 쪽에

손을 들고 싶을뿐이다.


그 사람이 좋기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의 모든것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20~40년을 따로 살다 취향을 맞추는 그 노력의 실행이 과연 얼마나 갈지, 무뎌지게 되고 포기하게 되면.. 서로에게 그 실망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남자가 열렬한 야구팬인데, 여자는 야구의 '야'자도 들어 본적 없다.

그냥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룰을 익히는데만 해도 몇개월이 걸렸고, 병살이 뭔지에 대한 설명을 10번은 들었다.

그것도 남자가 3번째부터는 슬슬 짜증 섞인 설명으로 대충대충, 몰라도 그냥 보라고 한다.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고 있다.

남자의 친구가 친절히 1번 설명해주니 잘만 알아듣겠던데!!!


여자는 미술관람, 연주회, 뮤지컬을 즐기는데, 남자는 가기만 하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관람이 끝나고 나면 할말이 없다.

뭘 봤어야 이야기를 나누지.

항상 돌아오는 차 안은 어색한 기운만 돈다.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할때

여자는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해서 함께 나누어 먹었으면 하는데, 남자는 메뉴 공유를 하지 않고 여자것만 묻고는 바로 웨이터를 불러 각자 먹을것만 주문한다.

그리고, 그 중 제일 먹고 싶었던 걸 여자가 먹어 은근히 빈정이 상한다.

여자 남자는 이럴 때 숨이 막힌다.


그런데, 헤어지기엔 그 사람이 좋다


그냥 각자 좋아하는 걸 하면서 서로 예민할 필요 없이 단서를 붙여주면 어떨까.

함께 하지 못해 서운하다가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양보해줄 수 있는것.

이번 연주회를 혼자 다녀오면서-

함께하지 않아도, 의외로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해줄수 있는 방법은 너무 많다는 걸 느꼈다.



연주회가 끝나고 난 후의 감상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끊기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되어 나를 깨웠다.

뭔가 부족한 산소를 충분히 보충하고 촉촉히 젖은 듯, 머리가 맑아지고 다시금 예전에 즐겨듣던 음악을 꺼내 들으며 추억을 곱씹어보는 기회도 마련해주었다.

표를 선물한 남자의 즐겁게 보았냐는 물음에 날이 섞인 듯 대답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둘이 함께 했더라도 받은 느낌과 감정, 감동은 각자의 것이기에-


혼자였던 것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감사함을 느끼고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

가만히 앉아서 오기를 바란다고 받을 수 있는것이 아닌것처럼,


오로지 혼자 느껴야 할 내 안에 샘솟는 6 센스와 감동, 감정의 물결 역시 그 자리로 함께가 아니여도 얼마든지 혼자서 손수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좋아서 했던 혼자만의 인형 놀이가 얼마나 유익했는지, 현재 역시 얼마나 유익한지.

또 다시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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