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고픈 11살, 어느 그날-

by jina S Kim

우리가 맘 먹은대로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돈보다 더 귀한게 있는걸 알게 될꺼야

사랑 놀인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거야

그대가 마음 먹은대로

이세상 살아가다보면

슬픔보단 기쁨이 많은 걸 알게 될거야

인생이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중요해

얄미웁게 자기가 맡은 일들을

우리가 맡은 책임을 그대가 해야할일을 사랑해요

어두운 밤 하늘 날으는 밤구름 아침이 되면

다시 하얗게 빛나지 새로웁게

-


평화롭던 저녁 늦은 시간 요리...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신나는 노래.

단순 노동에 조미료같은 역할을 해준다.

듣기에 기분이 한껏 업이 되어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사가 왜 이리 힘이 나고 좋은지-

지친 일상에 설탕 한 스푼 듬뿍 뿌려

웬지 모를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해낼 수 있을것 같은 응원가같이.


11살 먹은 아들은 시끄럽게 조잘대는 6살 먹은 여동생 놀려먹는것도 흥미를 잃었는지, 아님 엄마가 궁금했는지 만들어놓은 반찬도 손으로 집어먹고, 혼자 음미와 평가를 동시에 하다가

보글 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게를 바라보며

뭔가 놀이가 있지 않을까 주위를 맴돌았다.


국자를 들고 왔다리 갔다리하며

엉덩이를 흔들흔들, 흥얼거리는게 우스워보였을까.

엄마하는 행위에 동참하고 싶었는지, 노래 가사를 열어 찬찬히 읽으며 함께 흔들거렸다.


'노래 참 좋지? 가사가 너무 좋아!

한번 자세히 들어봐~ 힘이 될거 같은데!!'

일부러 1번, 2번 반복하며 흥미를 유발과 동시에 아들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흡-너무 옛날 노래인가.

그래도 이문세 노래는 여전히 모두 다 명곡이야, 확실히!!'


뒤돌아 여전히 나의 흥에 한껏 집중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한참을 가사와 노래를 번갈아 보며 따라부르더니 갑자기 '엄마~~~'하며 와락 안겼다.


와글와글 통통, 하얗고 개구진 아들의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

왕-하는 표정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하지만, 단지 그저 귀여운 표정만이 아니란걸 짐작했고, 아들 눈에는 살짝 감동과 슬픔이 스쳤다.



엄마 나는 열심히 하지 않고 있나봐.
노래를 들으니 마음이 아파-
내 마음 속에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은거 같애.
노래를 들으니 마음이 아파-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의 마음 속에는

왜 벌써 슬픔이라는게 자리를 잡고 있을까.

11살이면 알만큼 알 나이가 되었다해도

아직은 우리 모두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를 댄다. 그런 날이 영 영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내 욕심일까.




미국에서 부모의 의견만을 내세워 학교를 옮겨다니는 것만으로도 내 아이는 아마 보이지 않는 관계 안에서 몇번의 전쟁을 치루었을것이다.

한국과 미국- 많은 걸 끌어안고 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겠지..

아들은 상도 많이 받고 영재클래스에 갈만큼 성적도 우수했다. 스윗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이라 외국 선생들과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 스타이기도 했다. 영어만 잘하고 한국어를 못하는 게 싫어서 일부러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며 공부시켰다.

백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3년간 야구를 했고, 골프에도 재능이 있었다.

첼로 연습을 게을리하는 편인데도 신기하게 열심히 하는 아이들도 금방 따라잡아 형편이 힘들어져도 열심히 시켰다.

심히 개구지고 저돌적인 아들 덕에 나는 백인 교장과 선생들에게 많이도 불려다녔다.

문화차이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가끔 트러블메이커로 급부상하는 변화가 생길 때마다 우리 아이를 특별히 여겨주는 백인 선생님들이 계셨다.

소심히 민폐를 끼친것은 아닌가 조심스러워했던 내가 부끄러울만큼 부모인 나보다도 더 내 아이를 스페셜하고 큰 아이가 될거라 믿어주었던 선생님들...참 부모가 무엇인지, 참 교육이 무엇인지를 배웠던 다시 못올 값진 순간이었기도 하다.


모든게 다른 이곳 한국에서의 1년..

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매일 치뤄내야 할 전쟁 속에서 그저 보통으로 잘 견뎌주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히 읽고 쓰기-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어 수업도 곧잘 따라가고 성적도 좋다.

좀 아쉽다면 지금은 영어 사용을 거의 안한다.

일부러 영어로 이야기를 꺼내도 영어로 대답하길 꺼려한다. 금방 까먹기도 했겠지만, 나름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혼자만의 노력인듯 보이기도 한다.

4학년이면 강한 남성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

처음엔 신기해도 다름이 인정되기 힘든 나이가 아니던가.

짐작은 간다.

외국인 학교가 아닌 공립학교를 선택했던것 역시 힘들어도 어찌되었든 한국 사회에 적응을 해야한다는 결론이었기때문이었다.

처음 등교 한 두달 후 아들이 했던 말이 나를 참 슬프게 했다.

'한국은 착한 사람이 바보가 되는 곳이야.'

' 비밀인데...애들이 bad words를 써.

F word, SH word 같은거...싸움도 많이 하고..'

불안하면서 애써 침착하려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묵묵히 지켜보는 것과 더불어 참교육을 경험했던 것처럼 만남의 축복을 기도하는것 뿐.




몇번이고, 가끔 자기 전 대화를 나눌 때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내 듯 눈물을 보일 때가 있었다.

그냥 마음이 답답하고 슬프단다.

그곳을 가끔 그리워하고 있기도 하겠지-

아직 순수하고 마음이 여린 아들은 관계 안에서 상처를 받는것만 같아 가슴이 쓰라리다.

여러 생각들이 맴돈다.

혼란 속 자존감이 흔들리고 있는건 아닌지.

미국으로 돌아가야하는것일까.

돌아간 들 사춘기가 찾아오면 혼란의 연속이 아닐까...

과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그저 스쳐지나가야 할 과정이라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토닥거려주었다.

토실 토실 귀엽장한 아들은 이내 마음이 놓였는지

해맑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진심을 다해 안아주고,
힘들 때 기대어 의지할 버팀목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따뜻함으로 마음이 데워져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그것을 자연스럽게 배움으로써 언젠가 같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모든 순간 혼자 버텨내야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님을..."


학교와 학원을 통해 지식을 채우고,

친구들과의 놀이와 싸움 속 사회성을 키우고,

옳고 그름을 일러 바른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나의 뒤에서 든든히 서 있을

누군가를 여전히 찾아 헤맨다.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안길 수 있는 가슴이 너의 세상에 꼭 존재한다는 걸 알아주길......



내 나이 11살을 돌이켜보았다.

그래, 어린 나이라도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가정에서 익혔던 수많은 것들이 친구라는 소집단 사회에 내버려졌을 때와 다르다는걸 알고 어쩔 줄 몰라 할때 나를 위로해줬던 건 무엇이었을까.


무뚝뚝한 부모님, 언니, 오빠와 함께 있어도 각자 다른 생각과 생활들로 너무 바빠 5~4살 어린 막내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없는 철부지, 세상물정 어두운 귀염둥이 공주일 뿐이었다.

늘 혼자 밖에 나가 풍경을 통해 혼잣말로 나무, 꽃, 빌딩, 구름을 보며 소통했던 기억이 어슴프레 떠오른다.

외국 사람과 펜팔을 하던 언니를 따라 편지쓰기, 글짓기 하길 좋아했고, 그리 놀다 심심하면 서점으로 뛰어가 몇시간이고 새로운 신간을 뒤적거리며 놀았다. 서점은 나의 놀이터였다.

(근데, 왜 공부는 못했지? 갑자기 의문이 든다)

엄마의 말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특해서 집 잃을 일이 없어 안심했다하지만, 잠깐만 보이지 않아도 동네방네 찾아다니는 친구 몇의 엄마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몇시간이고 나가 있어도 아무도 찾지 않는것이

나 조차 인식하지 못할 외로움과 슬픔을 품게 하지 않았을까.

늘 그래왔던 너무도 당연함처럼.

그렇게 스며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곳에서 가게를 하시던 엄마는 언제든 손 닿는 곳에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적막함과 식탁에 놓여있는 푸짐한 간식먹기는 혼자 해결해야했다.

늦게 오는 언니와 오빠의 간식도 몰래 먹고 숫자를 똑같이 나누어 놓는 것도 나에게는 두근두근, 일종의 놀이였다.


늘 바빴던 엄마-

저녁 요리를 끝내면 또 다시 가게를 향해 바빠졌던 엄마의 발걸음과 뒷모습.

늘 엄마의 뒷모습을 끌어안고 엄마 주위를 맴돌며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었던 기억.

엄마가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금방 튀어 나갔던 것도 그나마 엄마와 둘만의 눈짓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을까. 오후 5시가 되면 울리는 두부장수 벨 소리를 그렇게 매일 기다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

사랑과 관심의 순서도 마지막이라 그랬을까-

그 양은 내게 너무나 부족했던 모양이다.

나란 존재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도록 늘 언제나 나를 강조하고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나는 잘난거 하나 없어도 고개만은 빳빳하게 치켜세우고 겉으로 한껏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그것은 나의 외로움과 약한 모습을 들키는데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내 속 마음을 까발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겹쳐 들여다 보면서 추억의 한페이지를 꺼내봄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우리 부부의 부모님들은 맞벌이를 하며 풍요로움을 주셨지만, 글쎄- 온전히 함께 해주진 못해서였을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도 엄마인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하길 원한다.

중요한 유년 시절에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걸까.

신경을 세워 보살핌을 다하고 있다하지만,

간혹 나도 모르는 사이 딴것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어김없이 변화가 일어남을...

그 변화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죄책감이 항상 내 등에 업혀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더 크기 전에 마음껏 안아주고 싶다.

몇년 안에 키가 더 많이 커져 나를 내려다보겠지.

마음껏 뽀뽀해주고 싶어도

징그럽다며 엄마를 밀어 낼 날이 오겠지...

그전에-

우리만 아는 추억을 만들고 싶다.



함께 노래하고 싶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보면 마냥

기쁘기만 하지 못하다고.

너의 마음을 따라 길을 선택하라고.

그 안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중요치 않다고.

행복의 열쇠는 자신이 찾는거라고.

혹시라도 혼자 가야하는 길이 힘들고 슬프다면

언제든 안기라고.

뱃속 연결된 탯줄처럼 너와 나.

언제든 보이지 않는 끈이 서로를 잡아주고 있다고.


아들, 너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부러워.
너의 감정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주니
대견해.
하나 하나 잊지 않고 표현해줘서 기특해.
언제나 말했듯,
넌 특별해.
너란 천사를 엄마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도 늘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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