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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Jul 04. 2019

상황은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

노동조합의 일과 기억의 왕 푸네스

기억이 그를 함몰 시킬 때까지 그의 이름은 이레네오 푸네스였다. 사고 이후 완벽한 기억을 갖게 된 그는 기억을 어떻게든 카테고라이징하고 축약시키고 없애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개념조차 그에게는 정리된 게 아니었다. 모든 사과는 모양과 맛, 크기가 다르니까 하나 하나가 모두 다른, 고유한 사과가 되는 식이다.


보르헤스의 '기억의 왕 푸네스'가 불면증에 대한 은유라는 설명도 있지만, 나에게는 일반화와 개념화 그리고 도식이 아니면 사고는 물론 이 모든 지구 위의 생활이 불가능한 인간에 대한 얘기로 와 닿는다. 더욱이 노동조합 상임 사무국장으로 와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일반화를 최대한 거부해야 하는 나의 업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참으로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괜히 왔어.

 

모든 기억을 담는 언어와 사고 체계가 불가능하듯이, 그래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푸네스가 결국 이른 죽음을 맞았듯이, 조합원과 회사의 갈등에서 개개인의 상황과 조건을 해결의 과정에서 모두 반영하는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게 상황에 대한 개념화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황의 '고유함'을 담지한 부분을 포기했다고 실망하거나 분노하게 된다. 나는 이런 감정들을 대면하는 데 아직 익숙치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어쩌라고. 답이 없다. 이른 죽음은 불가피한가.

왠지 오늘도 탈탈 털린 내 사진 #핑크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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