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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Mar 09. 2020

우발적 진보 외의 길은 없는 걸까

코로나19사태에서 성숙한 해결을 기대하지 않는 자의 주저리 


팀의 화합에 필수적이라는 저녁 회식이 없어지고 근태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길 법한 재택근무가 횡행하는가 하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는 임금 보전형 단축근무제까지 등장했다. 이 무슨 망할 노릇인가! 똬씨!!!


...라고 얘기하기엔 결과물과 생산성에 큰 차이가 없는 분위기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우발적 진보'에 대한 이야기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누구 눈치가 보여서, 혹은 하던 대로 안했을 때 발생할 문제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서 유지했던 업무상 관습들이 본의 아니게 조정 혹은 폐기됐다. 그 뒤로 속속 "아, 그래도 되는구나"라는 소박한 깨달음이 도착하고 있다.


역시 폐허가 된 땅에서 문명을 새로 건설하는 것이 쉬운 모양이다. 무언가 바꾸고 싶다면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끔 심폐소생할 게 아니라 숨을 멎게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수동적으로 기다릴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시적' 나쁜 놈이 돼야 하는 것이다. 끝장이 날 때까지. 


히어로물에서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선의'로 지구를 파괴하려는 빌런들이 자주 나오는데, 세상이 이러니까 이들에게 점점 설득 당한다. 물론 기존 서사에서 이런 류의 빌런이 성공적으로 새 세상을 만드는 결론은 드물다, 아니 아예 없지 않나. 이야기의 끝은 항상 인간에 대한 희망과 성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반성으로 마무리돼 왔다.


그래, 한줌의 '성숙'이라도 있으면 굳이 더 나은 조건을 위한 세상의 절멸을 기대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목격하는 것은 오랜 투쟁 끝에 마련한 민주적 절차가 무시되는 장면을 '사이다'라며 환영하는 것(이재명 지사의 대선지지율)이거나 전문가들이 의미가 없는 정치적 주문에 불과하다는 요구를 빨갱이 이슈와 섞는 것(중국인 입국금지 논란)이다. 


상황이 안 좋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대통령 하야 청원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에서는, 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니라 통일신라 후기 고대인가 싶기도 하다. 대통령이 무슨 미륵불인가. 넘어지기만 해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며 놀았던 10년 전이랑 바뀐 게 없다. 물론 마스크 관련 정책은 메시지 관리에서부터 실패했고 당장 오늘 조간에서 읽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낙관론도 너무나 이른 감이 있다. 그래도 방역 정책 전반의 진행은 그렇게 무능력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는 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자는 요구가 대통령 하야 주장보다는 훨씬 가치가 높다. 


적어도 한국이라는 땅은 우리가 믿고 싶었던 것처럼 이성적인 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닌 듯 싶다. 최소한
민주주의적 삶의 태도는 아직 체화하려면 한참 남아 보인다. 시발 툭하면 무슨 사이다 타령. 사이다가 체기를 내리는데 알고보면 효과적인 식품이 아니듯이, 수많은 희생 위에서 벽돌처럼 하나씩 쌓아올린 민주적 절차를 위대한 개인이 빗자루 쓸 듯 싹 밀어버리는 태도는 근본적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

 

이 국면에 '시민의식'이라 분류되는 어떤 활동들, 예를 들어 대구 지역에 자원이 몰리는 상황은 '온정'적인 인간적 특질의 발화이지 특별히 '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이성적인 자원 집중은, 한정된 자원이 확진자 치료와 접촉자 통제에 쓰여야 하니까 자원을 대구에 집중하자, 는 식으로 설명돼야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간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칭찬과 중국인 입국 반대 필요성이 나란히 같은 면에 실리는 일등 신문의 태도를 보면 그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정부의 방역대책은 투명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전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성과를 올리고 있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다만 그러니까 마스크를 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마스크 관련 메시지 관리는 실패했고, 언제 어디서 구멍이 뚫릴 지 예측할 수 없는 방역상황에서 낙관론 남발은 매우 성급하다. 우리에겐 마을 단위에서나 유효할 정책수단인 단순한 온정을 넘어서 국가 수준에서 작동할 규모의 민주주의적 교육, 팩트와 우선순위를 가리는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나부터. 


+ 우발적 진보의 눈부신 쾌거 중 하나는 손씻기인 것 같다. 손이 건조할 정도로 비누칠이며 손소독제를 사용하다보니 이맘 때면 으레 걸리던 가벼운 감기도 안 걸리고 있다. 내가 그동안 손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얼마나 많이 섭취했는지에 대한 방증이자 화장실에서 손 안 닦고 나오던 많은 이들의 계몽이다. 

+ 사진은 조합원들을 위한 마스크 확보에 쩔쩔매다 주문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 스탈의 마스크. 아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능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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