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나 Oct 19. 2020

아직도 여적여 발언이 가능할 줄은.

너무 당황해서 스쳐 보낸 지난 술자리의 어떤 순간에 대한 반성

무슨 역할을 맡거나 어떤 조건이 달라질 때마다 회사 최초, 국 최초, 부 최초, 그러니까 최초, 최초, '최초의 여자'가 되어 버리는 사회생활을 2006년 이래 이어 오고 있다. 소박한 목표는 '다음 여자'들이 내 자리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어떤 속박이든지 매이지 않게 내 능력껏 지평을 다져 놓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참고 가끔은 지르고 아주 드물게 삿대질을 한다.


부딪힐 일은 정말 많다. 최근에는 그 유명한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 프레임이 회사 선배들과의  술상 위에 올랐는데, 낄까 말까 마음속에서 여러 번 고민하다 말았다.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 하고 넘겼지만 주말 사이 딸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마음의 짐이 돼가고 있다. 미안하다 설하야, 내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줘야 되는데, 문제제기는 항상 벅차더라고.  


자신의 젠더의식을 지적받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적여 프레임은 공개 사용?이 금지된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내심이 어쨌든,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여적여 이슈가 아무렇지도 않게 았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넘어가는 상황에 당황하기도 해서, 문제제기 타임을 놓치기도 했다. 그들은 아마 기억 못 할 혹은 떠올릴 필요가 없는 사소한 이야기일 것. 후, 나 혼자 여태까지 비슷한 상황만 접하면 그때 기억이 떠올라 부들부들이다.


한 때는 이 세상 모든 총알이여 한 번 쏟아져 봐라, 내장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무릎을 꿇지 않겠다며 비장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었다. 남(의)편을 내조해야 하는 아내이거나 임신과 육아에 매인 엄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능력을 넘어선 위악도 서슴지 않았었다. 그랬다, 그랬는데. 다시 한번, 미안하다 설하야.


(점수대로 했다면 거의 대부분이지만) 상당수의 신입사원은 물론이고 공히 인정받는 후배들 중에서 여성들이 속속 나오는 시절이 됐다. 하지만 아직 견디고 싸워야 할 일들은 산더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기서 여적여라니, 여적여라니... 다만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들의 생존 방식이었던 여적여 상황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정신승리 차 새삼 확인한다. 여성들은 연대해야 바꿀 수 있고 남성들이 여성들 몫으로 떼줬던, 그래서 여적여 해야만 했던 그 좁은 영토를 드넓힐 수 있다. 다시 다잡고, 가즈아!  


매거진의 이전글 상황은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