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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Mar 12. 2019

# 82년생의 과도기적 삶

90년대 생이 온다, 온다니,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새내기 때부터 토익 공부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반, 그들을 속물처럼 보면서 돈 안되는 전공(사회학)에 천착하는 애들이 반이었다. 그러다 한두해가 안가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걱정하는 애들이 대부분이 됐다. 나는 대학 4학년이 되서야 사회학도연하던 허풍을 걷어내고 학점과 토익, 자소서에 쓸 한줄짜리 경력에 집착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인가, 그때 나는 20대치고 너무 바빴다.   


입사를 하고서는 이른바 꼰대문화의 막바지에서, 일을 제외한 나의 삶이라는 걸 감히 언급하기 어려운 조직을 견뎌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월요일 회의 때 "주말엔 뭐했니?"라 묻길래 "피곤해서 잠만 잤어요"하고 답하자 흡족해하던 캡의 표정. 입사 초기 나는 보통의 여자라면 잘 모르는, 그래서 남자동기가 시범을 보여줘야 했다만, 여튼 원산폭격 자세로 혼나기도 했고 수시로 쌍욕도 들었다. 암, 다 그런거지. 이런 분위기를 경멸했지만, 맨 앞에서 깃발들고 피칠갑을 하며 싸울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남들은 모르는 소심한 저항을 하거나, 자위하자면 후일에 도래할 좋은 날의 지평을 다져 놓는 데 만족해야 했다.

 

드디어 두둥 내가 팀장급에서 '당한 것을 되갚아 줄' 권력을 득한 이 시점, 제도나 문화 모든 면에서 꼰대문화를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는 세계가 성큼 다가왔다. 52시간 제도가 있고 휴가 때 너 누구랑 어디가니 물으면 안된다는 것을 고참선배들은 만시지탄이긴 하다만 학습한 상태다. 그리고 이들은 사고방식 면에서 신인류라고 할 수 있는 후배들과 직접 부대낄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 세상이 바뀌었지, 90대생이 온다며, 라고 껄껄 웃을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말이다. 후배들과 부대끼며 때때로 서운해야만 하는 나와는 달리. 


컴퓨터 화면에 띄워 보는 게 힘들어서 굳이 출력물을 만들어 보는 나에게, 언론(산업)은 뉴미디어가 중요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나야 레서피 하나 찾는데 왜 그 긴 영상을 보고 있냐 5분 내로 정리된 글을 읽는 게 낫지 않냐는 입장이지만, 유튜브로 검색을 한다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는 옛것의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유튜브가 티비와 신문을 절멸시켰느냐, 그것도 아니라서 요즘 기자들은 이거 하랴 저거 하랴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는 상황이다. 특히나 나는 기사생산부터 글쓰기까지 기존의 문법에 푹 절어 있는 사람이라, 유튜브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비전을 보여줄 자신이 제로에 가깝다. 


이번에 회사 조직개편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영상과 취재, 구성인력이 모인 팀을 만드는 건데, 여기에 아무 비전도 없는 내가 속하게 되니 다시 한번 이 과도기적 삶에 분노가 인다. 왜 전환기마다 내가 위치하는가. 어느 정도 안정기 쯤에 서 있을 수는 없는가. 도대체 왜! 82년생 앞뒤로 비슷한 압력에 시달리는 동료들끼리 모여 퍽킹 과도기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수한 변화들이 있었고, 거기에 따른 장단점이 있을 텐데, 슬프게도 나의 세대는 단점만 울며불며 껴안고 가야하는 역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이 지껄임은 내가 새로운 팀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서 또 과도기적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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