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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Aug 18. 2021

재택근무가 워킹맘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그리하여 우울증이다. 그저 우울증일 뿐이다. 이 조건에서 프로작을 찾지 않는다면 뭔가 기의 흐름이 일반인과 다른 사람일 것이다. 워킹맘이 재택근무까지 하다보면, 한국에서 자녀를 둔 일하는 엄마가 얼마나 열악한 조건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하게 된다. 벌써 8월도 절반이 넘어가고, 이렇게 버틴 시간이 벌써 한달이 다됐다.


대선판 정당팀 야당반장으로 끌려온지 3개월째인데 그 중 절반이 재택근무였다. 그나마 초반에는 국회 소통관(언론사마다 부스가 있고 기자들은 바글거리며 기자회견에 하루에도 몇번씩 열리는 공간)이 열려 있어서 팀원들 얼굴도 보고 조지기도 하고 격려도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의원 취재를 위해 "제가 그럼 지금 의원실로 갈게요!"하면서 바로 옆 건물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근무 시간 동안은 육아와 차단! 축 차단!

 

그러다 지난 달 델타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부스가 접근 금지가 됐고, 딱히 머물 곳이 없는 기자들은 재택근무를 하게됐다.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휴대폰을 잘 챙기고 메신저를 주시하며. 집안에 7살 여아가 딸린 나를 포함해서! 나를! 나를!


나의 하루 일과를 보자면, 일단 일어나서 커피를 만들어 온 뒤 조간을 확인한다. 타사에 물 먹은 게 있는지(나는 모르는 중요한 팩트를 다른 공장에서 보도한 게 있는지)를 살피고 오늘 일정이 뭔지 스크린 한다. 나름대로 혼자라 행복한 시간. 그 다음에 애를 깨워서 콘프레이크를 우유에 말아주거나 계란프라이를 부쳐준 뒤 후다닥 돌아와서 팀원들에게 할 일을 분장한다. 동시에 유치원 가방을 싸고 "설하야! 이 닦아야지! 옷 왜 그거 입었어!" 고래고래.


이 시간 동안 남의편은 그야말로 '처'잔다. 심지어 코를 곤다. 반쯤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있다. 도톰한 베개를 들어 질식사를 시키고 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히지만, 어젯밤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그의 노동이 나와 딸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힘겹게 떠올리며 욕망을 억누른다. 아아, 이제 곧 등원 시간.

 

선캡을 쓰고 총총 집앞 대로까지 딸의 손을 잡고 걷는다. 설하는 재잘재잘 떠들고 여러 가지 놀이를 제안하지만, 빨리 가서 오전 보고를 올려야 하는 내 입장에선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 처자던 남의편은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주섬주섬 일어나 함께 등원길에 나선다. 엄마아빠가 공히 자신의 유치원 가는 길을 배웅해주길 바라는 딸의 요구. 음소거한 채 셋이 걷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행복할 장면도 없을 듯.

 

호다닥 들어와서 보고를 올리고, 부장과 통화를 하고 오늘은 또 국가와 민족이 어떤 위기에 처했나...는 아니고 왜 이런 소모적인 쌈박질을 하고 있는 건지 싶은 국민의힘 갈등을 후배들과 얘기한다. 다행히 세 명의 청년들은 내 말이면 수긍도 엄청 잘하고 싫은 소리 한번 내뱉지 않은 착한 팀원들이다. 그래도 2,30대 젊은이들이라 꼰대에 파쇼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나는 자기검열 속에 이들을 대하려 노력한다. 이들이 쓴 기사를 데스킹하는 일이 내 업무 중 하나이다 보니, 왜때문에 내가 제일 늦게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점심약속은 정치부 기자에게 주요 일과 중 하나다. 그나마 저녁약속이 싹 사라진 시대긴 한데, 종로 우리집에서 현장인 여의도까지 점심시간마다 오가려니 시간이 빠듯하다. 오고 가는 길에는 정치인이 출연한 방송들을 팟캐스트로 듣는다. 이토록 메마른 드라이브라니! 어제 점약자리에선 그간 쌓였던 업무 플러스 육아 스트레스가 폭발해 폭탄을 순식간에 3잔 말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본격적인 내일자 기사 준비가 시작된다. 내가 주로 취재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팀원들이 보고를 이어가는 시간인 동시에, 요즘처럼 쌈박질이 많은 시기에는 내내 현장이 존재해서 따라가기가 바쁜 시간이다. 4시 반이 넘어가면 팀원들한테는 야 빨리빨리해, 이건 뭐야 저건 왜 그렇게됐어, 열심히 채근하지만 "넵!" "죄송합니다"하는 예의바른 청년들은 결국 6시가 되서야 기사를 넘긴다. 그래 다들 가라. 나는...나는...기사를 데스크하고 이래저래 하다보면 7시가 넘어간다. 시발, 어제는 우리공장 저녁방송에 나온 멘트를 처리하다가 10시가 넘어버렸다. 이것도 내손으로...팀원들아, 너희는 행복하게 지내렴.

 

엄마 이제 퇴근이야! 하고 딸한테 가면 이제 공부시간이다. 워킹맘은 할머니,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돌발상황을 최대한 통제해보고자 하는데, 대신 조부모님은 결코 손녀를 학습 가지고 압박하지 않는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즐거웠던 설하는 퇴근한 엄마를 보면 반가우면서도 곧 시작될 학습시간이 싫어서 묘한 표정을 짓는다. 다행히 저녁까지는 할머니한테 얻어 먹었구나.

 

씻자. 응, 공놀이 한번 하고. 응, 이것만 더 하고 씻는거야. 자 이제 다 씻었으니 자자. 저녁은 굶었고 아직 씻지도 못한 엄마는 딸을 재우다 더러운 상태로 그냥 잠이 들든가, 무서운 정신력으로 다시 몸을 일으켜 씻으러 간다. 이 시간까지 보통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남의편께서는 들어오지 않는다. 시발, 애는 나 혼자 낳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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