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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Aug 25. 2021

낭만이 사라진 시대

10년 전 출입처를 다시 나가는 요즘, 예전 인연들을 다시 만나 늘어놓는 레파토리가 있다.


"낭만이 다 사라줘쒀!"


그래, 낭만이 다 사라졌다. 그러니까 어떤 낭만이냐면 촌스럽고 비효율적이고 야만적이지만 그래서인지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행태들. 대표적으로 당 최고위원회의에 언론사 기자들이 빽빽하게 들어 앉아서 똑같은 내용을 속기하는 짓 같은 것. 그 때만 해도 네 귀로 들으나 내 귀로 들어나 어차피 똑같은 말을 왜 우리가 다같이 앉아서 바보같이 받아치고 있냐며 말진(팀에서 가장 막내)들끼리 하소연을 하곤 했다. 대표로 한 명만 고생하고 공유하면 안될까? 당연히 아무도 그러진 못했고 반쯤 정신이 나가서 다다다다 타자 소리를 방 안 가득 채웠다.


그래도 타자가 느린 기자는 옆에 앉은 기자의 모니터를 보면서 빈 공간을 채우고, 우르르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에 몇 분이라도 서로 노닥거리고, 먼저 들어온 의원들과는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그랬었다. 기자들끼리도 가까웠고, 보좌진들이랑은 같이 서럽고, 의원한테는 선배라고 부르며 친한 척을 했었다. 새벽 2시까지 술을 퍼먹는 일도 잦았다. 이상하게 그땐 예순 넘은 의원들도 체력이 좋았지.


세월이 지나 반장이 되서 다시 국회를 출입하려고 보니, 효율적으로 풀단이 돌아가고(10년 전에 꿈꿨던 그 시스템!) 회의 때마다 뻗치기(어떤 결론이 나올 때까지 회의장 문 앞에서든 어디든 기다리는 것)하는 짓도 안하는 분위기다. 캠프마다 공지사항은 수백명이 넘는 단톡방에 툭툭 쉽게 뿌릴 수 있고 누가 무슨 말을 했나 찾아볼라치면 벌써 유튜브에 업로드가 돼있다. 꼭 이런 것들은 나의 시절이 지나가길 기다렸다는 듯이 생겨나더라.

10년 전쯤 볼살이 통통한 내 모습. 저때만 해도 말진인가 잡진인가 현장마다 따라다녔다. 자료화면을 뒤지던 업계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 보내줌.

문제는 어울려 놀? 타사 기자들이랑도 데면데면하고 의원이나 보좌진 등 취재원 중에서도 "그러니까 알고 싶은 게 뭡니까? 자, 답을 줬으니 이제 안녕" 하는 분위기의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밖에 없는 곳인데 꼭 그렇게 드라이하게 해야 합니까?


여기에 페이스북이라는 만인의 창구가 생겨서 후배들은 의원한테 전화취재를 하기 전에 그들의 담벼락을 먼저 살피고, 그걸 나한테 쭉 긁어 보고한다. 음, 그러니까 일단 나한테 다 읽어보라고 이렇게 던져놓는 거냑! 라고 버럭 하기 전에 이런 식의 정보나 의견 전달이 일상화된 게 참으로 어색하다. 담벼락에 써갈기기 전에 그 주인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생각의 어디까지를 공개했는지 알고 싶은 게 많은데 "왜 이렇게 썼대?"하고 후배들한테 물어보면 질문의 의도가 뭐냐며 동그랗게 뜬 눈을 마주해야 한다. 아마 후배는 외치고 싶겠지. "선배놈아, 쓴 그대로지, 네가 알고 싶은 게 뭐야?"


정치기사에서 갈등을 다룰 때는 주인공이 있는 짧은 소설을 쓴다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이준석 대표면, 여기에 맞서는 빌런이 윤석열이고, 이 대표를 돕는 일부 초선 A,B,C가 있고 또 윤석열 꼬붕 E,F,G가 있는데~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쓰면 읽는 사람도 전선이 어디 그어져 있는지 알기 쉽고 결국 가독성이 높아진다는 취지다. 당연히 등장인물들의 성격, 외모, 말하는 스타일, 그의 철학까지 잘 이해해야 결과가 잘 나온다. 그 사람들이 직접 목젖에서부터 올리는 소리를 듣고 가끔 취해서 진상일 때의 모습도 보고 주먹이 나가기 직전까지 토론을 해봐야 등장인물을 소설 속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에 효율성을 추구하는 세태의 영향, 작은 실수도 SNS를 통해 순식간에 유통되는 미디어 환경 등등의 영향일까.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좋든 싫든 상대의 민낯을 볼 기회는 많이 사라져 버렸다.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기계들은 징그럽게 발전했고 여기에 친화력이 있는 후배들은 취재 내용을 녹음하고 보고할 때도 '녹취를 풀어드릴게요'라고 말한다. 나야 "새꺄, 그걸 내가 언제 보고 앉아 있냐 그냥 야먀(고갱이, 핵심을 뜻하는 업계 용어)만 말해"라고 다그치지지만 새삼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기계에 비해 나의 본능과 기억력이 '당연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시 한번, 후배는 속으로 외치고 싶겠지. "선배놈아, 이렇게 해야 토시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다고"



5년 전쯤 사건팀 엠티에서 대략 개판인 모습. 비주얼로는 30년 전 대학엠티 같다. 무슨 기타동아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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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이가 든 건지 세상이 빠르게 변한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참 적응이 어렵다. 뭐랄까, 그냥 낭만이 다 사라진 것 같다. 사람이 잘 안보인다. 어쩌면 나의 아쉬움은 반동적인데, 국회선진화법이 생겨서 몸싸움 하나 없이 피케팅 하는 의원들 모습이 참 맥 없이 느껴질 때 그렇다. 어, 이 사람은 근력이 좋군. 오, 이 양반이 이렇게 겁이 없는 사람이었어? 아주 쓰잘데기 없는 인상들이지만 폭력 속에서는 사람들의 면면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폭력이 없다니. 폭력이!


2011년인가,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국회 날치기 통과에 항의한다며 가방 속에서 최루탄을 꺼내 터뜨린 의원과 흥분해 있던 공기를 기억한다.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김선동 의원이 의장석에서 입 안까지 최루가루로 하얗게 범벅이 된채 결연히! 서있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100미터쯤 떨어져 있던 내가 콜록댈 정도였는데, 당시 김 의원은 입을 벌릴 때마다 최루가루를 용가리처럼 입에서 내뿜으면서도 모아이 석상처럼 꼿꼿했다. 석상처럼 그는 덩치도 좋았다. 뭐 이따위 무용담이 난무하던 시대가 불과 10년 전이다. 왜 나는 이 (요즘 기준에서) 야만의 시대가 그리운 걸까. 왜 그 시절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갑자기 나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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