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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Oct 10. 2021

대선 취재 소회,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누가 이기든, 미래는 없다 


다시 돌아온 국회는 예전보다 상태가 더 나빠져 있다. 미디어 환경은 말의 절대량을 급격하게 늘려놨고, 선명성을 요구하는 진영 간 적대적 환경은 한 치의 유연성도 허용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짖게 만들었다.   


여야의 1위 대권주자들은 '프레데터 대 에일리언'의 K-여의도 버전을 연출하고 있다. 한쪽은 아무리 좋게 봐도 미심쩍은 구석을 제거할 수 없는 토건비리의 최종 심급이고 한쪽은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철학이 부재한 검찰주의자에 불과하다. 당시 영화 홍보의 슬로건처럼 "누가 이기든, 미래는 없다" 이민가방 싸야하나. 


여기서 내 포지션은 야당 반장, 그러니까 윤석열과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가 본선에 오른 국민의힘 대선판을 책임지는 자리다. 학사에 불과한 짧은 가방끈이지만 그래도 사회학도였고, 정치부를 (상대적으로) 오래 출입한 내 입장에서는 소명으로써 정치를 이해하고 정당정치를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후보에 개인적으로 마음이 쓰인다. 실제로 정당을 출입하면서 후보들과 직접, 자주 만나는 많은 기자들이 유승민과 원희룡 후보를 실력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유 후보는 배신자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패한 세력은 자기편 안에서 분을 풀어야 하는데, 배신자의 머리가죽 정도는 선반에 남겨야 하는 것처럼 군다. 탈당했던 과거도 유 후보에게는 불리해 보인다. 우리처럼 양 정당이 극단적으로 갈려 있는 나라에선, 당을 옮기는 것이 매국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양당체제에서 당을 옮기고도 성공한 정치인으로 남은 사람은 처칠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원 후보는 뭐랄까. 정치인에게 기대되는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 같다. 노무현처럼 다 잃는 선택지를 고르고서도 살아남은 승부사가 아니라, 유리한 길만 좇은 정치인이라는 서사가 그의 낮은 지지율 배경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 보기에 원 후보는 그냥 '끌리지가' 않는다. 이건 연습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팔자랄까. 정치인이란 나무까지 홀려서 자신을 껍질을 내놓게 만들 정도로, 자신의 이상을 상대에게 설득시켜야 하는 사람이다. 나의 동료가 원 후보를 가리켜 '날라리들 틈에서 잘 노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모범생 같다'고 평가하는 걸 두고 와, 왠지 비슷한 너낌이라며 낄낄댄 적이 있다.

  

두 명의 괜찮은 후보가 고전하는 사이, 실제 지지율에서 선전하는 쪽은 문재인 정부에 시원하게 반항했던 이력을 가진 신예거나(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상을 참 좋아한다)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한 발짝 움직이기도 어려운 한국의 조건임에도 핵보유를 주장하는 선동가(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니지 대부분 유권자는 선명한 걸 좋아한다)다. 아, 그러고 보니 영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전문가 평점이 바닥이었지만 흥행 면에서 성공했다. 


클릭수로 대중의 니즈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기자 입장에선, 이들 후보가 내놓는 정책의 깊이보다 항문 침 논란 같은 기사를 계속 써야 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만 깊어진다. 분명 사람들은 버트의 시대처럼 '돼지 같은 대중'도 아니고 르봉의 분석처럼 '휩쓸리는 군중'도 아니건만, 실제 하는 정치 현실과 피드백들은 의욕을 연일 잃게 한다. 


최근엔 '페미니즘에서 패밀리즘'이라는 설명을 단 홍 후보의 여성정책을 두고 "여성의 정체성을 가족 안에 한계 짓는다'는 지적을 담은 기사를 썼다가 2030 무야홍 지지자들에게 포격을 당했다. 내 팀의 한 '남자' 후배가 성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와 성범죄 무고죄 수사유예 지침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을 등치 시킨 유 후보의 공약을 비판하자 "이 여기자야, 기사 똑바로 써"라는 류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슬픈 것은, 이처럼 예상되는 폄훼의 시도들을 의식해 나름대로 기사의 수위조절을 했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좋은 점을 필사적으로 찾아보자면, 요즘 기사 쓰는 게 어렵지는 않다는 점이다. 손바닥 임금 왕 글씨에 120시간 노동,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같은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은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는 기사거리다. 그냥 내가 이 업계에서 굴러 먹고 평소에 공부해놨던? 수준만 갖고서도 기사 작성이 가능하다. 결국 또 슬픈 얘기다. 오늘은 손바닥 왕자와 천공스님 논란으로 기독교계의 표를 걱정한 윤 후보가 순복음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불렀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쯤 되면 슬픔을 넘어 점입가경이라는 말밖에는 안 나온다. 굳이 보태자면, 우리나라 기독교계는 그런 주술 논란 때문에 윤 후보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기복신앙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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