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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May 18. 2022

미욱한 엄마는 오늘도 늦습니다.

언론사에서 보통 야근이라고 부르는 작업은 출입처 대신 회사에 출근해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 며칠을 늙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소설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밤 사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대기 개념이고 우리 회사의 경우 시간 단위로 공급해야 하는 5분짜리 단신을 챙기는 작업을 한다.


야근 날 사건이 터지면 그저 재수가 없는 건데, 내가 야근일 때 벌어졌던 가장 큰 일은 용산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졌던 대참사였다. 당시 철거민들과 경찰의 대치 상황이 길어지던 상황에서 사건팀 후배가 "특공대가 투입됐습니다"고 첫 보고를 하자 내가 "새꺄, 검은색 옷 입으면 다 특공대냐"하고 일갈했던 기억이. 진짜 특공대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철거민의 투쟁에 진짜 특공대를 투입시켰고 결과적으로 수 명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로 나의 야근에서는 특이 사항이 별로 없었다. 지난 주 우리 딸이 함께 야근을 서기 전까지는. 아빠가 수술로 입원하고 엄마는 보호자로 병원에 함께 가게 되면서 주 양육자 공백 상태를 맞은 데 따른 것이다. 6시에 엄마와 함께 회사에 온 내 딸은 나름 긴장도 하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보도국을 돌아다니면서 간식을 잔뜩 얻었다. 대신 나는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인간이 되어 미욱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하고 다녔다. 그리고 설하는 11시가 다 되서야 회사에 도착한 남편을 따라 집에 갔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겠지.


그 다음 날은 밤 늦게 끝나는 일이 있어서 자란다 선생님을 불렀다. 주위 친구들이 강추했던 보육 프로그램인데, 나는 그저 고운 얼굴에 백팩을 맨 대학생 샘에게 설하가 요구?하는 놀이를 해주면 된다며 잘 부탁한다고만 했다. 당초 10시에는 집에 가려 했지만 11시가 거의 다돼 집에 도착했다. 거의 침을 흘릴 기세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웃돈;;을 지불했고, 샘은 "더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라며 즐거운 얼굴로 돌아갔다. 설하는 평소 엄마가 싫은 내색을 하던 각종 놀이 제안에 어른이 순순히? 응하는 걸 철저히 즐긴 모양이었다.


어찌저찌 출혈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연속 11시 넘어 달렸던 설하는 결국 몸에 탈이 났다. 몸살감기가 걸려서 일주일 가까이 고생 중이다. 내 잘못 아냐, 난 최선을 다했어 도리도리 해도 자꾸 죄책감이 든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부족한 게 많은 엄마인가.

 

야근 바로 직전에는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을 하나도 몰라서 딸래미 혼자 주말에 못 노는 건가 속상한 일도 있었다. 설하가 누구랑 누구랑 같이 누구네 집에 놀러갔대~라고 부러워 하는데 다음엔 우리 집에 초대하자! 라고만 했다. 미안, 설하야. 걔네 엄마들 연락처를 확보해야 가능한 일이다. 마침 그 주말에 설하랑 놀이터에 갔다가 동네 사는 학교 친구를 만나서 옳다거니, 하고 친구분을 곱게 모셔 집으로 왔다. 그 엄마는 느닷없이 생긴 자유시간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드디어 엄마 친구 자식이 아닌 자기 친구랑 놀게 된 설하가 미친듯이 신나하는 걸 보니 역시 또 뭔가 잘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오늘도 늦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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