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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Aug 07. 2022

지적인 나치에 대한 매혹, 이제 안녕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 전환을 지켜보며 카를슈미트에 대한 애정을 끊어내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지적인 나치'였던 칼 슈미트의 책 '정치신학'의 첫 문장이다. 슈미트는 현실의 규범을 무효화할 수 있는 어떤 예외상태가 존재하는데, 이때 강한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등장해 혼란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는 정치적 비겁함보다는 규범을 파괴하는 독재가 낫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슈미트의 논리를 논파하지 못했다. 아니, 슈미트의 이 반동적 논의에 상당히 빠져들었다. 슈미트시대의 사회적 혼란이 무정부상태 같은 것이었다면, 내 세계의 혼란은 책임지지 않는 어줍잖은 인간들이설치는 것이다. 하루 하루가 빠듯한 데다가 급한 성격의 내 입장에선 끝이 보이지 않는 토론과 협상, 설득이 싫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스스로가 모자란 사람이란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상대가 마침 토론자료나 정보도 없이 자기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대책 없는 자애로움만 강조하면 분노가 치밀기 시작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 많다? 네가 책임질래?

   

그래서 나는 주니어 시절부터 "네 생각은 어떠니?","어디 한번 지켜보자"라는 지시가 항상 맘에 안들었다. 저인망 그물을 어디까지 펼쳐야 하나? 정확히 어떤 부분을 지켜 보자는 거지? 내 기준에서 이런 지시는 업무 효율성에 엄청난 장애물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예술가가 아닌 하루살이(하루단위의 뉴스) 기자에 불과한데, 지켜볼 시간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나에게 지시를 한 분들은 내 생각을 진정 존중하거나 지켜보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일단 내 생각을 이렇다. 가능성은 일케 절케 있으니까 그 가능성마다 일케 절케 취재해"하고 일단 등을 떠밀고 "보탤 말? 반론?"하고 물은 뒤 (보통 없다는 반응이다), "하다가 반증, 반론거리 생기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는 식으로 지시를 한다. 최소한 가설로 시작하지, 모든 걸 펼쳐놓고 귀납적 결론에 이르는 방식에 경기를 하는 편이다. 어딘지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 같은 나의 결단주의적 태도는 '미묘하게 다른 것'에 대해 관심이 많은 팀원에게는 상처가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팀원들 스스로 탐색하고 고민할 기회를 더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자책도 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어. 빨리 하고 집에 가야지. 

 

그러다 최근 국민의힘의 혼란 상태를 보며 드디어 슈미트의 미몽에서 깨어났다.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권자가 '결단적 독재자'가 아니라 그저 '예외상태를 이용할 줄만 아는 멍청이'라면? 물론 히틀러라는 역사를 통해 일찌감치 알 수 있었던 부분이지만 역시 몸으로 깨치는 진리가 정수인 것. 휴가철이라 부족한 팀원에 개난리통인 국민의힘 반장으로 일하다보니 슈미트 논파의 근거가 여기있구나, 절로 공부가 된다. 얼쑤.

 

국민의힘은 이준석 당대표의 징계 이후 지도부 리더십 공백,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 등의 현 정치적 조건을 '비상상황'이라고 규정하고 비상대책위 체제 성립을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반론과 잡음들은 비상! 비상! 소리지르면서 제압하고 있다. 비대위 체제 수립을 위해 정당의 법이라고 할 수 있는 당규 개정까지 합리화하고 있다. '예외'니까 바꾸자는 것. 예외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지. 

 

문제는 현 국민의힘 지도부가 결단적 독재자가 되기 위한 기본적 조건을 모두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단적 독재자는 전설이나 강호에는 등장할 수 있지만, 이 복잡다단한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인간형이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이 안되니 대안도 논의되지 않고 일단 현재의 규범(당헌당규)을 파괴하잖다. 당헌당규를 운운하는 쪽을 완전히 압살할 정치력도 없어서, 미미하긴 하지만 반론이 계속 이어진다. 그저 '체리따봉' 메신저 저편에서 어른거리는 절대자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겠거니 하는 인식만 공감대를 얻었을 뿐이다.(그나저나 체리따봉 이모티콘은 요즘 기자들 텔레그램에서 인기아이템)


그리하여, 히틀러의 수권법 성립을 정당화했던 법률이론가 슈미트의 논의는 나의 세계에서도 다시 한번 틀렸다. 사실 유신헌법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외상황은 수년 동안(각각 아마도 12년, 8년) 지속됐고, 폭력적인 결말일지언정 누군가 끊어내지 않았다면 예외는 영구적으로 지속됐을 것이다. 일종의 영구적 비상사태랄까.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 전환에서 '정당 민주주의' 훼손을 우려하는 논의가 파괴력을 갖고 소비되진 않지만,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 상황의 문제를 적확하게 짚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원들이 선출한 대표가 축출되는 데 겨우 소수의 상임위와 전국위의 결정이라니. 그것도 주류 세력의 의지가 관철된. 백번 양보해서 (참고로 나는 이준석의 정치노선에 불만이 진정 많은 사람이다) 비대위 체제를 꾸린다면, 적어도 윤통 지지율 하락에 대한 냉정한 분석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기사에 슈미트 드립을 할 수 없으니 브런치(라고 쓰고 일기라고 읽는다)에라도 정리해야지. 


+ 오늘자로 송고한 기사지만 작성시점은 지난 금요일. 오늘 다시 보니 오타가 있다. 몇 번을 퇴고해도 자기 기사의 오타는 안 보이는 게 국룰이줴... 휴가철이라 팀원은 숭숭 없고 국힘은 난리통이라 결국 저질체력인 나는 인후통에 시달리는 중. 약쟁이인가. 이러고 산다. 기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3672293?si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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