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술과 관련해 취재원에게 들었던 인상적인 문장 중 하나는 "팀장의 중요한 임무 하나는 자신의 팀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느냐를 냉정히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면한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무엇인지, 투입될 팀원들의 능력과 열정이 충분한지, 능력은 되는데 제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지 등을 계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당연한 얘기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팀의 능력치와 조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일단 (나를 포함해서) 나약한 월급쟁이 팀원들에게 능력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동시에 사기를 꺾지 않는 수준의 '쪼기'를 시전하려면, 그야말로 팔색조 같은 인격을 갖춰야 한다. 90년대 생이니 MZ세대니 하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자발성을 기대하는 건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나부터...생략.
쪼는 행위 대신 경쟁심 유발과 자기애 자극 같은 걸 통해 자발성을 환기할 수도 있다. 효과는 있는 것 같지만왠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인신공격과 멘탈 부수기, 가스라이팅 면에서 갈고 닦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혹시나 저런 수단을 쓰기 시작했다가 스스로 폭주할까봐 염려된다. 나는 착하게 사는 걸 지향한다.
여하튼. 가혹한 덕장, 같은 어딘가 불가능한 명제에 도전하면서 팀의 최대치 능력을 계산해 냈다면, 그 다음은 이 능력으로 직면한 과업을 수행해낼 수 있을가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 역사의 패배한 전투 대부분에서 지휘관들은 이걸 제대로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복기 때마다 소환돼 영원히 욕을 먹는 무타구치 렌야 장군이 대표적이다. 그는 1944년 임팔 전투에서 무더위와 장마, 정글, 산맥이라는 악조건을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훈시만 내리다가 3만 명의 병사를 증발시켰다. 정신승리는 인류 탄생 이래로 돌이킬 수 없는 병신 짓이다.
중간 관리자로서 나를 돌아보는 동시에 더 윗선의 의사결정자들에 대한 원망이 갈수록 쌓인다. 엄격한 덕장 추구자는 안 보이고 무타구치 렌야 같은 윗사람만 보인다. 나의 민완기자 시절처럼 "옥처럼 부서지라"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너의 시간과 열정을 갈아서 도전 "해 보라(강요는 아님)"는 지시만 있다. 애초에 엄격하게 계산된 지시가 아니었으니, 실패해도 설계자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자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된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며 학습되면,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는 조직원이 된다.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데, 나도 지치고 힘들어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다.
다들 이렇게 지시받고 지시하고 실패하고 체념하고 뭐 그렇게들 살고 있나? 남들도 함께 이렇게 불행하다면 위로가 될 것 같다. 더불어 '엄격한 덕장' 지향질도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피곤하다.
아, 무타구치 렌야 장군의 병사 3만 명이 타지에서 개죽음을 당한 뒤 진창에서 고통스러워 하던 2만여 명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밑에서 항명을 하고 퇴각을 주장한 사토 중장 덕분이었다. 사토 중장은 본국으로 소환당해 벌을 받았고 무타구치 렌야 장군은 끝까지 임팔 전투에서 지가 잘했다고 우겼을 뿐 아니라 패전 뒤에도 천수를 누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