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물이 유행하면서 우두머리가 있는 좀비, 뛰는 좀비, 뱀파이어처럼 낮에는 자는 좀비 등 나름대로 다양한 좀비들이 등장했다. 워킹데드로 태교를 할 정도로 좀비물에 심취한 내 입장에서는, 모든 사고와 감각이 죽은 채 그저 고기를 뜯고 싶은 본능만 남은 좀비만이 장르의 룰에 따르는 좀비 중의 좀비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그저 사파 좀비. 정파가 아닌 사파 것들 중에 그래도 설득력 있는 좀비가 나오는 것은 '28일 후' 정도.
높이뛰기 선수였던 이 양반은 좀비가 된 뒤에도 계속 높이뛰기를 시도 하다 생존자들이 모여있던 쇼핑몰 옥상에 진입한다. 그 다음에 본격 아수라장 시작...
그러다 사파 라인, 망좀비를 떠올리게 된 지난 여름휴가. 일년에 한 번 있는 긴 휴가를 무려 목포 시댁에 갔는데, 남의편이 자기 집 도착하자마자 아프기 시작했다. (읭?) 그래서 나는 '시댁에서 남의편 병수발'이라는 복합적 고난을 감내해야 했다. 귀한 아들이 아프다는 슬픔에 짓눌린 시댁에서 나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설하를 데리고 놀러가기도 뭐해서 내내 함께 갇혀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부분은 시어머니로부터 30분 단위로 "훈이(남의편 이름) oo 먹여야 되는 거 아니니?", "훈이 oo 주면 좋아할까?" 질문공세에 시달리며 성인 남성의 섭생을 2박 3일 동안 함께 고민해야(하는 척) 했다는 점이다.
아, 이 장면은. (장르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별로였지만 그래도 즐겁게 봤던) 어떤 일본 좀비물에서 보던 건데. 생전에 매여있던 습속을 버리지 못하고 좀비가 되서도 살아있을 때 하던 행동을 되풀이하던 영화가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수라상 수준의 식탁 앞에서도 계속 부족하다며 전전긍긍하며 하루 종일 주방을 떠나지 못했다. 그녀가 하는 말씀의 90%는 먹는 행위와 관련한 것, 10%는 더 잘 차려주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었다. 견디다 못한 내가 질문세례와 주방 머물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어머님이 준비한 음식 재료의 목록을 바탕으로 2박 3일 간 식단 계획을 짜봤지만, 질문과 권유 그리고 주방에서의 서성댐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이틀째 밤 시부모님과의 술자리에서 "어머님, 미칠 것 같아요. 먹는 얘기 그만"하고 빽 할 정도.
그녀의 일생 대부분에서 두 아들들을 위해 가장 공을 들였던 게 먹이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당신 자신이 초등학교 교사라 직업도 있으셨고 운동도 좋아하셔서 취미도 그 나이대 맞지 않게 다양한 편이시지만, '아들의 입에 무엇이 들어가는가'는 시어머니를 구성하는 그 모든 정체성과 상념의 핵심이었다. 당신 입장에서 "해준 게 없음에도" 훌륭하게 자란 아들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시어머님은, 아파서 기운이 없는 아들이 예전 만큼의 식욕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충분히 맛있고 다채로운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다. 아니라고, 아니라고요! 라고 몇 번을 외쳐보고 훈이야! 지금 당장 너무 맛있다고 어서 말씀드려! 라고 몇 번을 반복해도 시어머님의 불안함과 서성댐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 영화의 좀비처럼.
나의 소중한 여름휴가...라고 울먹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좀비가 되면 어떤 행동을 계속 하고 있을까 생각해봤다. 허공에 계속 자판을 치고 있을까, 비율을 조정하며 소맥을 말고 있을까, 물티슈로 바닥을 닦고 있을까...하다가 미간을 찌푸린 채 성질을 내는 상태로 좀비의 삶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어머님처럼 누군가를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주름진 뇌 어느 귀퉁이에도 남아있을 것 같지 않다. 아아아, 그나저나 '아이엠히어로'는 좀비장르에 맞지 않는 좀비였다고...